부자가 함께 걸은 까미노: 길에서 길을 묻다
종일 까미노 걷다 보면 먹는 이야기도 많이 합니다.
지금 제일 먹고 싶은 것은?
오늘 도착해서 먹고 싶은 것은?
여기가 한국이라면 가장 땡기는 음식은?
귀국하면 제일 먼저 먹고 싶은 건?
파전, 막걸리, 도토리묵, 족발, 찌개, 냉면, 막국수, 초계국수 같은 메뉴가 자주 나옵니다. 등산로 입구 메뉴들이 이유가 있구나 싶죠. 구하지도 못할 메뉴를 한참 이야기 하다보면 허탈해지기도 하고, 한편 갈망이 커지기도 합니다. 출장 끝에도 그렇듯, 김치찌개가 많이 먹고 싶었습니다.
저랑 아들은 여행가면 현지 음식 잘 먹지만, 그건 짧은 여행이라 가능했었나 봅니다. 까미노 순례길은 몇주 동안 매일 대충 먹고 힘써 걷다보면 한식 생각이 절로 납니다. 식당 자체가 귀한 촌마을에서야 빵일지라도 팔아만 주면 고맙다 생각하지만, 대도시에 머무는 밤이면 은근 기대도 합니다. 한식집은 없더라도 한식 메뉴를 곁다리로 파는 아시안 식당이라도 있을까 해서요. 아쉬운대로 매콤한 타이 음식도 찾아봤지만 북부 스페인엔 쉽지 않네요.
까미노 프리미티보 중간에 유일한 큰 도시인 루고조차 우동, 초밥 파는 일식집과 중국집만 있었습니다. 일식은 저희 상황에서 도움 안되니, 중식을 먹었습니다.
매콤하진 않지만 동네 짜장면집 같은 느낌이 좋았죠. 고량주 잔술을 팔길래 시켰는데, 중국인 종업원이 놀라더니 주인과 한참 이야기를 합니다. 찾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메뉴엔 있지만 준비가 안된거죠. 이과두주 병을 보여주면서 이거라도 괜찮으면 마시겠냐고 (스페인어로) 물어봅니다. 저희 입장에서야 그게 그거니 당연 좋다고 했죠. 식구끼리 일상주로 드시는거 아닌가 싶은 반 남은 큰 병을 내어주셔서 풍미있게 먹었네요. 나중에 보니 딱 잔술 값만 받으셨어요. 백주에 중국요리를 먹으니 갑자기 한국 지방도시 쯤 온 기분이 들어 좋기도 하면서 쓸쓸하기도 했었어요.
놀랍게도 산티아고엔 한식집이 있었습니다. 빌바오처럼 완전 큰 도시에도 한식집은 없는데 말이죠. 역시 순례자 숫자 세계 8위, 아시아 순례자의 반이 한국인이라 가능한가 봅니다.
한식이 고팠으니 꽤 기대하고 갔던 산티아고 한식집은 여러모로 놀라웠어요.
종업원과 쉐프 모두 한국인이 없음
근데, 음식은 완전 한국 맛 남
반찬에 김치가 안나오는 대신, 김치 효과 나는 매운 오이 무침이 나옴
한국 사람 버글버글 하겠다는 예상과는 달리, 한 두 테이블 빼곤 90%가 외국인 손님
물가 싼 스페인에선 과용한 저녁이었지만, 한국 가면 가장 먹고 싶었던 김치찌개를 먹을 수 있어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결국 김치찌개 욕구는 해소되었으니 귀국 후 첫 메뉴는 구워먹는 고기였어요. 이게 외국에서 간절히 생각나는 메뉴는 아니지요. 긴 여행으로 지친 상태라 지글지글하고 푸짐한 그 느낌이 아늑해서 택했습니다. 결국 고행 중 생각나는 고향의 맛은 '매운 맛'이 아니라 푸근함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