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2017년 가을, 그리고 시작

by 테일러

2017년 가을, 그리고 시작

2018년,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이던 나는 유럽 아일랜드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돈을 벌지 못했고, 흔히 말하는 '성공한 워홀러'가 되지도 못했다. 하지만 대신 경험을 선택했다.

봉사라는 방법으로 유럽에 머물며 축제가 열리는 계절을 따라 이동했고, 그렇게 16개국을 여행했다.


이것은 그 1년의 기록이다.




동생의 한마디


2017년 가을이었다.



"국내 말고 워홀은 어때? 언니, 영어도 잘하잖아!"


게스트 하우스 스태프로 국내를 여행하며 살겠다던 내 계획에,

서울에서 대학원을 다니던 동생이 던진 한마디였다.


영어로 수업을 듣는 동생과 우연히 대화를 나누다가 들은

그 칭찬이 쓸데없는 용기를 만들어냈다.



29세. 마케팅과 디자인 일을 하며 틈틈이 국내 20개 도시를 혼자 여행 다녔다.

해외 생활에 대한 갈망은 컸지만, 어딘가 나에게는 너무 큰 목표처럼 느껴졌다.



뉴질랜드에서 워킹홀리데이 중인 전 직장 동료와 통화했다.



"돈도 있고, 한 달 정도 미국을 여행했을 정도면 영어도 될 텐데 뭐가 걱정이야?

갈 수 있는 나이도 얼마 안 남았잖아."


그 말에 마음을 다잡았다. 나이가 더 들기 전에 가야 한다고.






떠나야만 했던 이유


그동안의 여행 경험을 떠올려보면,

나는 해외에 장기간 나가면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죽을 뻔한 경험'을 정말 많이 겪었다.

그래서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감도 있었지만, '해외 나가면 또 무슨 일이 생길까' 하는 두려움도 컸다.


뉴질랜드도, 호주도 갈 수 있었지만, 가게 되면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기왕이면 죽기 전에 유럽에 꼭 가보고 싶었다. 말이 2~3년 계획이지, 사실은 최대한 눌러앉아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었다.


'죽기 전에 못 먹어본 음식보다는 보고 싶은 사람들이 더 생각난다'라고들 말하지만,

죽기 전에 못 해본 것들도 해보고 싶었다. 그동안 간직했던 것들을 정리하려 떠나는 거였다.

그렇다고 '지금 죽고 싶다'라는 건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살아갈 뿐이었다.






왜 하필 아일랜드였을까


워킹홀리데이로 갈 수 있는 국가는 많았다.


1순위 아일랜드, 2순위 캐나다, 3순위 뉴질랜드.

세 나라 모두 신청할 생각이었다. 혹시라도 안 될 수도 있으니까.

그중에서도 아일랜드가 1순위였던 이유는 명확했다. 영국 바로 근방에 있다는 것.


학창 시절 해리포터를 좋아했고, 성인이 된 후엔 어느 배우의 영향으로 '뮤지컬'에 빠져 살았다.

영국은 그 모든 것의 본고장이었다.


그래서 아일랜드 워킹 홀리데이 세미나에 다녀왔다. 아일랜드에서는 한국의 카페 문화처럼, 펍이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라고 했다. 기네스 맥주의 탄생지이고, 어느 펍에서나 밴드 음악을 들을 수 있다고. 오스카 와일드, 드라큘라, 걸리버 여행기의 나라. 심장이 뛰었다.


무엇보다 아일랜드가 영어를 쓰는 국가라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언어를 새로 배우지 않아도 되었다. 비수기에는 5~6만 원으로 런던이나 파리를 다녀올 수 있다는 말에 결정은 끝났다. 그때까지 여행으로 미국, 일본, 중국은 다녀왔어도 유럽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버킷리스트인 오로라를 볼 수 있는 아이슬란드도 가까웠다. 이만하면 아일랜드를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운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아일랜드 워킹홀리데이는 매년 2회, 9월과 4월에 분기별로 300명씩 무작위 추첨으로 뽑았다.

경쟁률은 7대 1에서 8대 1. 상반기 모집에는 2,100명이 접수했다고 했다.



'별 기대하지 말자.'



아일랜드는 워킹홀리데이 비자가 아닌 학생비자로도 거주할 수 있는 곳이었기에, 안 되면 학생 비자로라도 가려고 했다. 학생 비자가 있어도 워홀 근무 가능 시간만큼 일할 수 있고, 학비도 생각보다 저렴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니 일단은 워홀 신청서를 넣었다. 접수 기간, 첫날을 피해 둘째 날 아침에 메일로 보냈다. 사람들이 몰리지 않는 타이밍을 노린 거였다. 그리고 기다렸다. 두근대는 마음 안고 빌었다.



'저, 유럽 여행이 정말 가고 싶어요.'


신의 뜻이라면 선발되겠지..






믿을 수 없었던 순간


메일함을 열었을 때, 눈을 의심했다.

선발 메일이 와 있었다. 우선 심사 대상인 300명에 당첨된 것이다.

손이 떨렸다. 심장이 뛰었다.


나는 이제껏 살면서 운빨로 당첨된 적이 거의 없었다. 백화점 경품 추첨은커녕,

누구나 다 당첨되는 그런 추첨에서도 당첨 운이 없던 내가 7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한 번에 선발되었다.


사실 겁이 많았다. 갈까 말까 재고 따지기도 했고, 아직 준비가 덜 된 것 같아 시기적으로 미뤄야 할지

고민도 많이 했다. 그런데 이렇게 추첨에 한 번에 당첨되고 나니 딱 한 가지 생각만 들었다.



'진짜 가야만 하는 무언가가 있나 보다.'


하늘이 이렇게 도와주는데 가야지.






과연 잘한 일일까


고민은 여전히 계속되었다. 하지만 이미 선택한 길이었다.

7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으니, 이제는 앞만 보기로 했다.

후회 없는 도전이었다는 생각이 들 만큼 즐기면서 잘 보내다 올 생각이었다.


아일랜드 워홀 생활 후, 뉴질랜드 워킹홀리데이도 1년 정도 도전하고 올 계획이었다.

국내 여행지는 웬만한 곳은 다 가봤다. 이제는 유럽 차례였다.

생전 처음 가보는 아일랜드를 시작으로 유럽을 여행하게 된다니, 기대가 되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여정이 내 인생을 얼마나 바꿔놓을지..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