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의 준비 기록
선발 메일을 받고 나서부터는 시간이 없었다. 최종 통과를 위한 구비 서류 준비가 시작됐다.
필요한 서류는 생각보다 많았다. 여권, 영문 서류들, 예금잔고 증명서, 범죄경력조회서...
반차를 내고 반나절 만에 준비를 끝냈다.
서류들을 준비하고, 등기로 보냈다.
새해가 밝았다. 설날, 가족들 앞에서 조심스럽게 워홀 이야기를 꺼냈다. 친구나 아는 사람 없이 혼자 떠난다고 하니 다들 걱정했다. 자기라면 가고는 싶지만 선뜻 가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곧 이렇게 말했다.
"역시 너답네."
도전하는 모습이 용기 있어 보인다고 했다. 솔직히 두렵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그 또한 어떻게든 될 거라고 믿었다. 지난 20대도 별다른 계획 없이 흘러가는 대로 살았지만, 어쨌든 여기까지 왔으니까.
그날, 서른 살이 된 것을 축하하는 의미로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샀다.
내가 내 케이크를 사서 온 가족과 자축했다.
촛불을 끄면서 생각했다.
'이제 정말 가는구나.'
30대의 첫 새해. 그리고 어쩌면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맞는 새해를 그렇게 맞이했다.
"준비 잘 돼가?"
그 질문을 받을 때마다 대답은 똑같았다.
"도대체 무슨 준비를 해야 할지 모르겠어."
인터넷을 검색하거나 워홀 다녀온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영어 공부 열심히 해둬"라고 하지만, 막상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답은 없었다. 답답함만 쌓였다. 아는 사람도 없는 낯선 아일랜드까지 혼자 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세 가지였다. 자금 모으기, 영어 공부, 그리고 자격증.
우울한 마음 때문에 한동안은 제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다 다시 워킹홀리데이 설명회에 다녀왔다. 그제야 알아차렸다. '목표'와 '계획'이 부재했던 것이었다. 유럽 여행을 하고 싶어서 가는 이유도 컸지만, 세부적인 계획이 없었다. 뭐, 거창한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목표를 정했다.
5개국 이상 여행하기, 한 달에 새로운 사람 5명 만나기, 일주일에 3개 이상은 글로 기록하기.
그리고, 일자리는 조급해하지 말고 지원하기.
출국 5개월 전인 12월 초에 회사를 그만뒀다.
첫 달에는 마지막 국내 여행을 즐겼다. 한 달 정도 놀다 보니 노는 것도 지쳤다.
'이렇게 계속 놀 바에 돈이라도 모아두자.'
현지에서 일을 구하기 전까지 생활할 자금이 있어야
여유롭고 편하게 생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일주일에 3일, 쿠팡 물류센터에서 야간 근무를 시작했다.
오후 7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까지, 거의 매일 연장 근무를 했다.
체감 노동 강도는 200/100. 끊임없이 박스를 포장했다.
설 연휴가 다가오니 5kg짜리 쌀이나 선물 세트 다섯 개는 기본이었다.
박스만 봐도 속이 울렁거릴 정도였다. 힘들게 돈을 벌다 보니 돈의 소중함을 새삼 깨달았다.
사실 나는 귀차니즘이 강한 편이다.
영어 학원 3개월 수강권을 끊어놓고 다섯 번도 채 못 갔다.
집에서 두 시간 거리로 멀기도 했고, 그러다 보니 딱히 영어 공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출국 한 달을 남기고 불안감과 초조함이 밀려왔다.
'지금 안 하면 정말 큰일 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늦은 때라고 하지만, 다행히 5월 4일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아있었다.
워홀에서 살아남으려면 두 가지 중 하나가 필요했다. 원어민과의 대화가 유창하거나, 모아둔 돈이 많거나. 둘 다 준비되면 좋고, 3안으로 자신감은 필수였다. 그래서 영어 학원에서 환불받은 돈으로 전화 영어를 수강했다. 하루 20분씩, 일주일에 5일, 한 달 치. 97,000원이었다.
첫날에는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채로 폭삭 망했다.
'그래도 아직 첫날이니까, 20분짜리를 매일 한 달 꼬박하면 뭐라도 도움 되겠지.'
그땐 뭐라도 해야 할 때였다. 그때라도 늦지 않았다고 다짐했다.
바쁜 와중에도 전화 영어를 했다. 영어 공부를 가장한 영어로 수다 떨기였다.
원래는 교재가 있는 프로그램이었지만, 실전처럼 하고 싶어서 프리토킹으로 변경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자신감이 붙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아일랜드에서 막힘없이 영어로 대화할 수 있었던 건
이 한 달의 전화 영어로 말문을 틔워놓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SCA 스페셜티 커피 자격증도 땄다. 나는 커피가 안 맞는 체질인데, 워홀 가서 일자리를 구할 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였다. 필기는 잘 봤는데, 실기는 아슬아슬하게 통과했다. ICDL 컴퓨터 국제 자격증도 준비했다.
어느덧 출국까지 세 달을 앞두고 있었다. 불안은 여전했지만, 이제는 피하지 않고 계산해 볼 때였다. 갖고 있는 돈과 들어올 돈을 하나씩 적어 내려갔다. 환전해 둔 유로와 적금, 마지막 두 달 치 급여까지 더하니 1,795만원 정도였다.
나갈 돈도 계산했다. 치과 진료비와 항공권, 어학원 비용, 첫 달 숙박비, 비자 비용, 카드값까지 빠져나갈 돈을 모두 합치고 나니 약 640만원. 남는 돈은 대략 1,200만원 정도였다.
여기에 재택 근무로 들어올 고정 수입도 있었다. 매달 58만원 정도. 방은 400유로 선에서 구하고, 이동은 최대한 걸어 다니며 식비와 통신비도 아끼면 열 달 정도는 버틸 수 있는 계산이 나왔다. 빠듯했지만, 완전히 무모한 선택은 아니었다.
숫자를 하나씩 정리하고 나니 막연했던 불안이 조금씩 걷혀갔다.
될지 안 될지 모르는 불안한 미래가 아니라, ‘어떻게든 해볼 수는 있겠다’라는 쪽에 가까워졌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대비는 하고 싶었다.
만일을 생각하면 총알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그리고, 떠나야 할 시간은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