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한 달
그사이 2주간 안동과 광주에서 내일로 홍보단 활동을 했다. 선발된 내 또래 청년들과 여행지를 다니며 사진을 찍고, 글을 쓰고, SNS에 공유했다. 그러면서 나 자신에 대해 확실해진 사실이 있었다. 여행과 글쓰기,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고, 더 많은 다양한 경험을 하기를 원한다는 것. 그리고 무수한 잠재력이 있다는 것.
하지만 가끔은 불안했다. '갔다 와서 뭐 해 먹고살지?' 하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했다. 2년 후면 서른둘, 셋이니 일자리를 구하기도 애매한 나이였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많이 소심한 편이다. 겁도 많았다. 그럴 때면 이상하게도 SNS에 워홀 이야기를 더 끄적였다. 주위 사람들이 내가 워홀 간다는 걸 다 알게 만들어서, 쪽팔려서라도 가야 한다고 나 자신을 다잡기 위해서였다.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후회하더라도 차라리 하는 게 좋다. 한 다음에 '내가 그걸 왜 했지?'라며 후회한 적은 거의 없었으니까. 할까 말까 고민될 때는 무조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떤 길을 선택하든 나는 더 발전적으로 성장할 거라 믿었다.
용기가 많이 필요한 해외 생활이지만, 그래도 나는 잘 해낼 거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용기와 가능성에 대한 믿음. 그게 전부였다.
4월 4일이 지났다. 한국에서 보내는 시간이 한 달도 남지 않았다.
기분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오락가락했다.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했다.
일상은 똑같았다. 야간 근무를 하면서 재택근무로 SNS 마케팅과 편집 디자인도 했다.
사람들도 틈틈이 만나러 다니며, 평일엔 매일 20분씩 전화 영어도 했다.
쉬는 날은 없었지만, 기본적으로 일하는 시간과 전화 영어 시간을 제외하면 전부 자유 시간이었다.
약속 있는 날을 빼곤 전부 휴식. 한 달도 채 남지 않아서 휴식보다 약속이 우선이었다.
휴식은 워홀 가서도 할 수 있지만, 사람들은 가면 한동안 볼 수 없으니까.
그 무렵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을 접했다.
좋은 소식은 어학연수 플랫폼에서 아일랜드 워홀 생활기를 연재할 기회가 생긴 것이었다.
나쁜 소식은.. 정말 나쁜 소식이었다.
마케팅 회사에서 관리하던 업체들이 계약을 연장하지 않게 되면서
급여가 20만원 삭감되었다. 워홀 가서도 할 수 있는 일이라 믿었는데, 타격이 컸다.
체중이 계속 빠졌다. 많이 먹는데도. 일하면서 2kg이 빠지더니, 3kg이 더 빠졌다.
오랜만에 찾아뵌 외할머니께서는 "배가 쏙 들어갔다"라고 걱정하셨다.
그러다 어느 날은 자다가 갑자기 극심한 복통에 시달렸다. 난생처음 겪어보는 심한 복통이었다.
그날 출근 전에 체중을 재어보니 2~3kg가 더 빠져 있었다. 몸이 망가져 가는 게 느껴졌다.
어느 날 전화 영어 수업 중에 선생님이 물었다.
"What do you usually do in your free time?(보통 쉬는 시간에는 뭘 하나요?)"
"I sleep. To recharge my energy.(잠을 자요. 에너지를 충전해야 해요.)"
"If you had plenty of free time, what would you want to do?
(만약 넉넉한 여가 시간이 있다면 뭐 하고 싶어요?)"
"I want to sleep more.(더 자고 싶어요)"
선생님은 다른 대답을 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정말 자고 싶었는데..
야간 근무와 사람 만나는 일정이 겹치면서,
하루에 한두 시간밖에 못 자는 날이 계속되었다.
이런 날들을 보내고 버티면서 궁금증이 들었다.
'나는 체력이 좋을까?
아니면 정신력이 강할까?'
아무래도 체력보다는 정신력이 더 강한 쪽 같았다.
감사하게도 약속이 계속 있었다. 한 시간도 못 자고 계속 일하고, 사람들을 만났다.
다들 내가 갈 때가 얼마 안 남았다는 걸 알고 먼저 연락을 주셨다. 주위에 내 생각보다 더 많은 사람이 있다는 것에 새삼 놀랐다. 지인들을 만나서 대화하면, 더 가까워지기도 하고 생각의 폭도 넓어져서 좋았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한번 보자"라고 하면, 나는 이렇게 말했다.
"한 번만 볼 거야? 또 볼 건데?
난 아무 때나 다 시간 되니까, 시간 될 때 전화 줘~" 이랬다.
보고 싶은 마음 반,
상대에게 부담을 주기 싫은 마음 반이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선물을 받았다.
베프에게는 자동 우산을, 할머니와 엄마에게는 돈을 받았다. 선물을 받으니 내심 기분이 좋았다.
사실 불안하기도 하고, 걱정이 더 크다고 고백했더니 베프가 등을 떠밀었다.
"하든 안 하든 후회하는 건 마찬가지야."
확실한 건 어차피 후회할 거, 비행기 안에서 후회하고 싶진 않았다.
토요일. 이제 정말 일주일만을 남기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짐을 싸기 시작했다.
다이소에 들러 압축팩, 편지지,
한국적인 느낌의 기념품들을 샀다.
마음을 후회없이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런 방법의 하나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로
마음을 전하곤 했다. 아일랜드에선 예쁜 편지지를
구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미리 샀다.
출국 바로 전날,
마지막으로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를 보러 갔다.
오래전부터 좋아하던 배우가 출연하는 공연이었다.
2007년, 대학 입학을 앞두고 우연히 그를 봤다.
범상치 않던 패션 감각.
점수에 맞춰 '의상디자인학과'에 입학했지만,
그를 좋아하게 되면서 졸업까지 하게 되었다.
단지 패션 센스만 좋아했던 건 아니었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사는 태도가 멋있었다.
그 후로 힘들 때마다,
중요한 출발을 앞둘 때마다 그를 보러 갔다.
2012년 미국 교환학생을 떠나기 전에도,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공연이 전하는 메시지도
'이룰 수 없어 보이는 꿈이라도 포기하지 말라'였다.
'나도 잘할 수 있을 거야.'
극장을 나서면서 생각했다.
그때의 나는, 출국만을 앞두고 있었다.
피곤하고 두려웠지만, 한편으로는 설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