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이륙

D-day, but 30시간

by 테일러


2018년 5월 4일


절대 오지 않을 것 같았던 그날이 왔다.

내 인생 가장 큰 도전, 아일랜드 워홀을 떠나는 날.



"엄마, 나 진짜 가는 거야?"


밤새 짐을 쌀 때까지만 해도 별생각이 없었다.

엄마가 공항까지 데려다주시는 길에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인천대교를 지나 공항으로 가는 길에

이륙하는 비행기를 보는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저걸 타고 이제 이 땅에서 멀리 떠나는구나..'


덜컥 겁이 났다.



"으헝헝헝... 엄마, 나 진짜 가는 거야?

나 가지 말까? 나 어떻게 해?"



내 걱정에 밤잠 못 이루셨다는 외할머니와 달리,

엄마는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너는 고생도 좀 해봐야 해."


점점 인천 공항이 가까워지자 실감이 나서 기분이 이상해졌다.



'내가 왜 이런 결정을 했었지?...'


차라리 컨디션이 더 피곤한 상태가 좋았을까?

엄청 피곤했다면 그 피곤함에 이런 생각도 사치였을 것이다.






마지막 인사


공항 앞에서 엄마, 할머니와 마지막으로 사진을 찍었다.



"잘 다녀와."

"응, 엄마. 할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사랑합니다" 라는 말을 꺼내지는 못했다.

말하면 정말 울 것 같았다.


공항에 날 떨궈주고 가신 두 분을 뒤로하고, 터덜터덜 탑승 수속을 향해 걸었다. 캐리어를 끌고 가는 내 뒷모습을 두 분은 얼마나 오래 바라보셨을까.


짐은 24인치와 20인치 캐리어 두 개. 28인치로 구매했다가 규격에 안 맞을 것 같아서 다시 샀다.

각각 20kg, 18kg. 합치면 중량 초과지만,

다행히 작은 캐리어는 기내에 들고 탈 수 있었다.


짐 정리에만 3일 밤이 걸렸다.

캐리어 두 개에 웬만한 건 다 챙긴 듯했다.

수화물을 부치고 나니 정말 실감이 났다.


'이제는 정말 돌아갈 수 없구나.'



출국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설레기보다는 두려움이 더 컸다.

하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30시간의 시작


출국장을 지나 면세점을 어슬렁거렸다.

한국에서만 마실 수 있을 듯한 땅콩 라테를 샀다.

그런데 외국인들이 더 좋아하는 게 땅콩이었다.

푸드코트도 돌아다녔다. 한식도 한동안 못 먹을 테니까.



첫 비행기는 대한항공. 인천에서 샤먼까지.

이코노미석이라 불편했지만, 다행히 옆자리에 아무도 앉지 않아 편하게 갈 수 있었다.


이륙을 기다리며 3분도 채 안 남은 시간, 폰을 해지하기 직전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잘 지내세요. 잘 갔다 올게요."

그냥 그런 말들..


정작 하고 싶었던 "사랑해요", "보고 싶을 거예요"

같은 말은 차마 보내지 못했다.

왠지 상대에게 짐을 떠안기는 것 같았다.



비행기가 이륙했다.

창밖에는 점점 멀어지는 인천이 보였다.






기내에서


기내식은 돼지고기와 소고기 중 선택 가능했다. 고민 없이 돼지고기를 선택했다. 맛은 그럭저럭이었다. 내 입맛엔 사이드 메뉴로 나온 연어와 리치가 더 맛있었다. 경유지에서 장시간 대기하면서 먹으려고 빵도 두 개 챙겼다.


좌석 시트에서는 최신 영화들이 나왔다. 좋아하는 영화 <위대한 쇼맨>을 보며 마음을 다시 다잡았다. 꿈에 대한 이야기라서, 지금 보기에도 적당한 타이밍이었다.


그 사이 창밖을 보니 하얀 구름이 펼쳐져 있었다.

너무 아름다웠다.


더블린에서는 비가 자주 내려서 화창한 날을

보기가 힘들다고 들었다. 그래서 더 오래 눈에 담았다.





'이 구름을 두 번 더 볼 수 있다니.'

그 생각을 하니 조금은 설레기도 했다.






샤먼 공항, 그리고 12시간


샤먼 공항에 도착했다.

시간은 한국보다 한 시간 늦은 오후 2시였다.


창밖은 뿌연 황사로 가득했다.

공항 밖으로 나갈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인천에서 샤먼, 샤먼에서 암스테르담,

암스테르담에서 더블린까지는 총 30시간.

저가 항공편으로 비행기를 2회 환승해야 했다.

샤먼에서의 대기 시간은 12시간이었다.


샤먼 공항은 김포공항보다도 작았다.

갈 수 있는 곳이라곤 KFC와 카페 정도였다.

배가 고팠지만 아멕스 카드만 결제된다고 했다.

그래서 패스.


수화물이 연결 편이었다면

공항 밖이라도 돌아다닐 텐데, 그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중국은 페이스북도, 인스타그램도 막아서

블로그만 했다. 다행히 카카오톡은 살아있었다.


공항 의자에 앉아 12시간을 보냈다.

사람들이 오가는 걸 멍하니 바라보기도 하고,

짧게 잠들기도 하고, 또 깨기도 했다.


시간은 정말 천천히 흘렀다.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간 것 같았지만

시계를 보면 겨우 30분밖에 지나 있지 않았다.

비행기에서 챙긴 빵을 조금씩 뜯어먹으며 버텼다.


공항 의자는 불편했다.

팔걸이 때문에 눕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자야 했다.

암스테르담까지 12시간을 또 가야 하니까.


'이게 30시간의 시작이구나.'


그때는 몰랐다.

이 30시간의 여정이 앞으로 1년 동안 겪을 수많은 도전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작은 도전


나는 해보지 않은

새로운 일에 두려움이 많은 편이었다.


그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작은 도전이라도 성취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작게는, 더블린까지 무사히 가기.


비행기를 많이 타니 좋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빨리 도착하고 싶었다.


'귀국할 때는 꼭 최소 시간, 최소 환승으로 예매해야지..'


그렇게 다짐하며, 긴 여정을 시작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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