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민족(nation)’ 개념의 모호함과 부적합성
아는 타이완계 미국인 교수의 영어로 진행되는 언어학? 강의를 청강하고 있는데, 얼마 전에 나의 multilingualism 경험에 대해서 발표하게 됐다. 청강이기도 하고 그래서 다른 학생들이 시간 내에 잘 발표하는 것 보고 마지막으로 발표.
나는 민족주의(프레임)에 자유롭다는 점이 확인되지 않은 ‘한국인’ 앞에서는 ‘한국한테 좋은 소리’를 안 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는 걸 (마찬가지로 그런 ‘일본인’ 앞에서 일본한테 좋은 소리 안 함) 나 스스로 인식하고 있는데, 마침 수강생 중에 일본 사람은 있어도 한국 사람은 없어서인지 한국 이야기 하는 데 있어 자유로웠나 보다.
이 계정 글을 볼 본 들이 ’한국인’들이 많다는 걸 인식하고 있어서인지 (심지어 한국어로 쓰는 글.) 자세하게 하나하나 쓰고 싶은 생각은 안 들지만, 이 정도는 써도? 싶은 부분만. 얼마 전 일인데도 넷플릭스에서 <~~우영우>보다가 어떤 장면에 다시금 그 기억이 떠올라서 굳이 이제서야.
다시금 떠오르는 기억 하나는, 원래는 그냥 평탄하게 ‘과거 일본 통치 시절, 한국인들은 한국어를 썼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았다’ 정도로 살짝 언급하려고 생각했었던 걸, 그 자유로운 (=한국인이 없는) 환경에서 말하다보니까 그런지, 굳이 마지막에 “……in Korea” 라고 덧붙여서 “과거 일본 통치 시절, 한국인들은 ‘한국에서’ 한국어를 썼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았다”고 말하게 된 점. 그리고 원래 그러려던 건 아니었는데, 이제와서 되돌아보면 되게 숙연하게 이야기 했던 것 같다.
원래 학술적인 것(논문, 기고 글 작성, 논문 번역, 학술적 통역, 수업 보조) 외에 상업적인 일 (알바)은 안 했는데, 너무 낮밤 가리지 않고 연구실에만 박혀있어왔고, 규칙적으로 밥 잘 챙겨먹은 와중에 나타난 이유를 알 수 없는 체중의 급격한 감소?로 좀 걱정되던 참에 모 백화점 면세 카운터 알바를 일주일에 한 번 하고 있다 (설명이 부족했는데,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이렇게 바람 쇠는 게 건강상? 좋을 것 같아서)
손님은 대부분 해외관광객이기 때문에, 보통은 영어를 쓸 수밖에 없는데, 한국 관광객이 오면 한국어를 쓴다. 별 말 없이 ’순탄하게‘ 면세 금액을 돌려주고 잘가라는 인사 하는 경우도 있지만, 나를 긴장하게 만드는 질문이 자주 돌아오는 것이 사실.
별 말 없으면 가장 양반이지만, 그나마 양반 축에 속하는 것은 바로 앞에 내가 있는데 자기들끼리 ’한국인인가?‘ 이러면서 얘기함. 직접 물어보고는 싶은데 그럼 좀 그런가 싶어서 일부러 다 들리게 큰 소리로 자기 동행인한테 묻는 척 나한테 묻는 것. 이 경우는, 배려로? 무시해도 된다는 선택지를 제공해주기 때문에 나는 무난하게 그 선택지를 고른다.
나를 당황하게 만드는 고질적인 질문은 그걸 대놓고 나한테 물어보는 것인데, 여전히 당황스러운 질문이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답하는지 글로 남기고 싶지는 않다. 나는 <1>에서 말한 발표 때, 이런 질문(=요구)이 왜 나를 당황하게 만드는지, 근대 민족 개념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점을 언급했었다.
근데 또다른 가끔씩 있는 일. 마지막에 나한테 엄지 척 하면서 “와 한국어 진짜 잘하시네요” 이러는 사람. 이런 반응(=공격)은 그나마 나에게 묵비권의 선택지를 제공해주기 때문에, 나는 멋쩍게 웃으며 ’감사하다‘는 말로 ’작별‘ 인사를 한다.
*’한국인 관광객‘은 외지에서 ’한국인 (이라는 이름의 나)‘을 발견하면 반가워 하는 것 같다. 그런데 ’한국인‘이라는 민족 개념은 많은 ‘경험’을 은폐한다. 그것은 ‘우리가 남이가’같은 것이다.
실제로는 ‘한국인’ 사이에는 많은 경계가 있다. 그것은 단적으로 majority와 minority로 설명할 수 있겠고, 살짝 더 구체적으로는, 가장 상위층에 속한 ‘순혈 한국인’이 있으며 그 아래에 조선족, 탈북민, 도상국 관련자 등등이 있겠다.
그런데 그 majority들은 한국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 (과거)은 없던 일인 것마냥, 외지에 나오자마자 ’외로웠는지‘ 갑자기 ’우리가 남이가‘ 하고 어깨동무 걸어 오는 것이다. 그러면 minority는 어떨까? ‘짜씩 그걸 말이라고 해? 쐬주 고!’ 이럴까.
그 엄연한 ‘경계’를 갑자기 일시적으로 퉁치려는 ’선의‘와 ’순수함‘ ’순진함‘은 이해할 수 있고, ‘모두가 나쁜 것은 아니기에’ ’진심으로‘ 잠시나마 충분히 호응해주려고 노력은 하지만, 그럼에도 그 ’호응‘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한 중장년 여성이 캐리어를 끌고 어정쩡 거리더니 (흔치 않게) 일본어로 말을 걸어왔다. ”여기는 뭐하는 곳인가요?“ ”면세 해드리는 곳입니다.“
“그럼 외국인들이 와서 돈 돌려받는 거네요? 중국인들이나 한국인들이 와서 돈 돌려받는 거네요?”
“네, 주로 외국 관광객들이, 구매한 물건을 일본에서 소비하지 않는 조건으로 소비세만큼만 되돌려 받는 겁니다”
“그래도 몰래 소비하겠네요? 중국인들이나 이런 사람들 나쁜 사람들 있~~~”
“원칙적으로는 그러면 안 되지만 그런 경우도 있을 수 있겠죠. 그런 사람은 어디 나라에나 있겠지요”
“저는 여기에서 돈 못 돌려받는 거잖아요? 그거 좀 치사한 거 아닌가요?“
”해외여행 가시면 거기에서 면세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근데 일본에서 면세 받는 게 더 쉬운 거 아닌가요? 일본은 너무 물러터졌어요. 아, 제가 여기에 불만 얘기하려고 그러는 건 아닌데요 ~~~“
개인적으로 나에게는 너무 익숙한 말. ‘일본은 너무 물러터졌다.‘ 일본 우익들이 하는 전형적인 소리다. 나를 대상으로 이런 말을 듣진 않지만(?), 개인적으로 어릴 때부터 이런 사람들이 주변에 있어서 익숙하다. 일본인 학생보다 외국인 유학생에게 장학금 퍼준다 등등.
나는 이런 비슷한 말을 슬슬 한국 쪽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등에서 마주치고 있다(vs 조선족, 중국인). 나의 이 암담함. 그럴 수록 더욱 거리를 두고 싶어진다. (근데 무엇과 거리를 두면 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