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성의 형벌

보이지 않기를 바라는 자유인의 고백

by 청안

나는 이상한 사람들을 자주 끌어들인다.
‘이상한 사람’이라 함은, 내가 분명히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내 주변을 맴돌며 신경을 건드리는 이들을 말한다. 남녀 불문이다. 남자는 대개 이성적 관심을, 여자는 우정이나 이성적 감정을 들고 접근한다.

대체로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이며, 내가 어떤 일이 생겨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질투한다. 그러다 반복된 구애 끝에는 공격이 등장한다. 나를 좋아하면서 동시에 증오한다. ‘너는 내 틀에 갇히지 않는구나. 그렇다면 망가져라.’라는 심리 아닐까.


그 공격은 생각보다 강도 높게 이어진다. 부모님은 신체적 보호를 위해 애인을 만들라 조언하셨지만, 누군가를 알아가는 과정 자체가 너무 피곤하다. 무엇보다 예전의 애인이야말로 가장 이상한 사람이었다. 결국 어디를 가든 호신용품을 지니고 다닌다.


최근 심리학을 공부하고 계신 어머니는 내가 ‘자유인’의 전형이라고 하셨다.

자유인이란 온전히 자기 의지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는데, 나는 그저 제멋대로인 게 아닐까 의심했다. 하지만 주변인들은 “너 질투하는 사람 많을걸. 너처럼 행동하고 사는 사람 거의 없어. 다들 겉으론 아닌 척하지만 부러워해.”라 말했다. 나는 단지 5분 뒤 지구가 멸망할 수도 있다고 가정하고 '지금'만 존재한다고 믿으며 살아갈 뿐이다.


이 문제로 경제적, 정신적으로 많은 손해를 봤다. 나는 평범한 외모라고 생각하는데, 그 평범함에도 불쾌한 상황이 계속 생긴다. 차라리 내가 눈에 띄게 아름답다면 이해라도 하겠다. 가끔은 한심하게도, ‘혹시 불임이 공식적으로 판명되면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두지 않겠지? 그럼 나는 안전해질까?’ 같은 괴상한 생각을 하기도 한다.


물론 장점도 있다. 가시성이 높아 신뢰를 빨리 얻는다. 나는 이 성향을 ‘양날의 검’이라 부른다. 얻는 게 많을까, 잃는 게 많을까? 아직까지 버티고 있으니, 아마 장점 51 대 단점 49쯤일 것이다. 최근에도 불편한 일이 또 있었다. 강하게 말하면 더 들러붙고, 무시하면 더 끈질기게 달라붙는다. 이런 일은 오직 가족에게만 이야기한다.


이런 성향을 차라리 이용하며 사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해 보기도 했다. 지금도 시도 중이다. 아마 남은 생 동안 엄청난 에너지가 들겠지. 그래서 나는 가끔 '무존재감'을 동경한다.

“있잖아, 내가 어딜 가도 원치 않는 관심을 받고, 이상한 사람들에게 시달려. 나 어떡하지?”
고민은 가족에게만 털어놓는다. 너무 자아도취적으로 들릴 것 같고, 같은 일을 겪지 않은 사람에게 이해받으려는 건 사치다. 차라리 내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만든 결과라면 억울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일수록 억울함은 끝없이 커진다. 매번 긍정적으로 생각하겠다고 다짐하지만, 이상하게 달라붙는 사람들의 감정이 결국 공격으로 변하는 이 패턴은 여전히 반복된다. 그럴 때마다 나는 간절히 빈다.

“제발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나를 좋아하게 해 주세요.”
아무 소용이 없다. 나는 그저, 안전했으면 좋겠다. 호신용품 없이도 외출할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더 이상, 내 잘못이 아닌 일로 다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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