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고문하기

그때의 나를 붙잡고 있는 지금의 나

by 청안

나는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을 때, 전 직장 주변을 가본다. 현실은 언제나 벅차고, 하는 일이 나와 잘 맞는 것 같아도 힘들다. 그런 약한 마음이 들 때는 전 직장 주변을 가보는 게 제일 큰 동기부여다. 나는 이걸 ‘셀프 고문’이라 칭한다. 지금까지 일부러 찾아가 본 건 두 번, 이동하다가 지나친 건 열 번 내외다. 저번에는 1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뒤돌아갔는데, 이번에는 회사 문 앞까지 가봤다.


근무한 기간은 짧았지만, 익숙해진 풍경과 그때의 나를 돌이켜 보면 슬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다. 생각의 흐름은 이렇다.

열심히 살아보려고 했던 나, 어떻게든 참고 적응해보려 했던 나, 협회에서 교육을 받고 새로운 삶을 살아보고 싶던 나, 협회 동기들이 “회사 소개하러 온 사람들의 인상이 너무 안 좋다. 안 좋은 곳 같다. 그 회사는 절대 가지 말라”라고 했음에도 지원했던 나. 입사하자마자 좋지 않은 일을 겪고도, 동기들과 협회 과장님의 "당장 그만두라"는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던 나.


나는 아마 회사 주변 풍경에 정을 많이 줬던 모양이다. 카페, 음식점, 길거리, 도로, 지하철역 입구에 정을 줬다. 평범하게, 정해진 루틴대로 사는 삶에 대한 동경이 밀려올 때가 있다. 그러다 내 길이 아닌 것 같고, ‘나는 대체 얼마나 개척하며 살아야 하지?’ 싶을 때 앞이 깜깜해진다. 나는 뭐가 되고 싶은 걸까?


전 회사 주변이나 앞에 갈 때마다 하나의 감상이 든다.

작다. 끔찍하고 동시에 아련하다.

사무실의 규모뿐만 아니라, 체감되는 공간의 크기가 작다. 문이 무거웠던 것 같은데 너무 가벼워 보인다. 오래돼서 청결하지 않던 화장실도 그대로다. 그 건물은 사람들이 화장실 사용 후 손을 씻지 않았다. 심지어 대변을 보고도 손을 씻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비위가 많이 상했었다. 그래서 항상 겉옷으로 문 손잡이를 감싸서 돌렸다. 엘리베이터는 더 덜컹거린다. 갑자기 추락할 것 같다. 입구는 회사라기보다 상가 건물이다. 내가 왜 그런 곳에서 큰 슬픔을 가졌어야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왜 그런 곳에서 사람들에게 불필요한 슬픔을 많이도 생산해 내는지 모르겠다. 그런 슬픔을 느낄 가치가 없는 곳이다. 그곳에 있는 모두가, 작은 공간을 지키기 위해 수고하고 있다. 상가 건물 한 층 구석에 있는 공간이 그들에겐 세상의 전부다. 그 안에서 각자 만든 왕관으로 왕좌 놀이를 하며 갇혀 지낸다. 진심으로 다들 동아리 활동이라도 하면서 세상의 크기를 실감할 필요가 절실하다.


어느 날은 분노가 올라왔다가, 어느 날은 나를 각성시켜 줘서 대단히 감사하다가, 어느 날은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운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하고 나와서 매듭이 지어지지 않은 기분이라, 계속 되감기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하혈도 해서 산부인과에 갔다. 의사 선생님 앞에서도 계속 울었다. 구역질이 심해 음식을 거의 먹지 못해 간식과 핫초코만 겨우 섭취했다. 내과에서 수액을 맞으며 버티느라 너무 지쳐, 더 이상 벽에 대고 사과를 요구할 힘이 없었다. 위경련도 지속돼서 허리를 펴고 있기가 힘들었다. 언제든 쓰러질 것 같았다. 여러 병원을 다녔다. 길거리든 병원에서든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많이 울었다. 그래서 한동안은 택시를 타고 통근했다. 그게 지금 와서 발목을 잡는다. 관련된 모두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싶었지만, 거절당하면 더 무너질 게 뻔했다. 겉으로는 활발하게 행동하며 살고 있지만, 아직도 치료를 받고 있다. 비용과 시간이 계속 들어간다. 나 같은 사람을 많이 경험하신 박사님조차 저곳이 극단적으로 관리 체계가 부재한 곳이라는 평을 내리셨다. 사과를 받고 싶었던 사람들에게 퇴사 전 사과를 요구했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지금 와서 사과를 들어도 CYA의 색을 띤 텅 빈 말일 것이기에 쓸 데가 없다. 결국 나만 이 고리에 갇힌 것이다. 상담치료에 돈과 시간을 부으면 지워질까? 대체 언제?


과거는 과거로 묻어둬야 하는데, 계속 회귀한다. 언제 이 고리를 완벽히 끊을 수 있을까? 내가 이 기억을 토대로 발전하면 끊어질지, 생각을 안 하려고 노력하면 흐려질지 판단이 안 선다. 퇴사한 지 10개월이 다 되어 가는데도, 나는 여전히 그 시기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어제도 갑자기 그곳이 떠올라서 잠시 울다가 잤다. 내가 그 시절에서 왜 이렇게 못 떠나는 건지, 순수하게 열심히 살아보려던 나를 붙잡는 건지 잘 모르겠다.


시키는 일을 잘하면 되고, 정해진 업무의 범위가 있는 삶을 살면 안정적이고 행복하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스스로 삶을 개척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부담감이 크다. 모든 걸 혼자 이겨내야 한다. 겨우 은둔에서 벗어났는데, 군중 속에서 고립되는 느낌이 가끔 든다. 회사에 취직을 해도 잘 적응하지 못할 것 같다. 이젠 자신감이 없다. 무섭다.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압도적이다. 혼자 버티며 개척하는 게 오히려 자신감 있는 분야다. 하지만 자신감이 있는 것과 동경하는 분야는 조금 다르다.

나도 회사 동기들과 같은 주제로 교류하고 싶다.
사수의 보살핌을 받고 싶다.
내 업무가 정해진 삶을 살고 싶다.
건강한 톱니바퀴로 살고 싶다.


이러면서 오늘은 도비로 진행된 사업 성과공유회에 다녀왔고, 정책 제안 단체 공고를 봐서 문의 전화를 했다. 외롭고 피로한데, 이런 공고를 보면 두근거린다. 나는 진짜 피곤하게 살 사람이다.

그래도 나는, 나보다 더 괴로울 사람을 안다.

누가 제일 괴로울까.

당신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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