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보다 귀찮음이 더 싫은 여자
나 남자친구 만들고 싶어
대학생 때 내가 자주 하던 말이다. 20대 초반의 나는 남성이 곁에 있으면 내 외로움이 사라질 거라고 착각했다. 하지만 ‘여자친구’의 역할을 입는 순간, 그 옷이 너무 어색해서 벗어던지고 싶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사실, 누군가의 여자친구라는 타이틀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 여성스럽게 행동하는 것도 귀찮았고, 여성스러움이란 무엇인지조차 희미했다. 의지할 곳을 만들기 위해 만난 남성들은 결국 나를 의지했다.
나는 당신들의 친어머니가 아닙니다. 나도 내 삶이 벅찹니다.
#30대 여성 #비구니
나는 이제 30대 여성이다. 어느 순간부터 이성 관계를 맺는 게 무서워져서, 그 시기를 기점으로 자칭 ‘비구니’로 살고 있다. 모든 접촉에 철벽을 세운다. 세상을 남,녀라는 이분법으로 바라보던 사고가 약화되면서, 성별보다는 생명으로 사람을 대한다. 마음은 편해졌고, 여성으로서의 외로움도 느끼지 않는다. 나는 수행자가 되면 참 잘 견딜 것이다. 지금의 삶과 다르지 않을 테니까. 또래 여성 친구들은 벌써 둘째를 낳았다. 저출산 이야기는 내 지인들에게는 먼 얘기 같다. 나는? 신체가 건강한 30대 초반 여성이 이 정도로 이성에 무관심하다면, 수행자로서의 재능이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 말 듣기 힘들어요
내가 제일 듣기 힘든 말은 “내 여자친구 ○○이.”
라는 말이다. 쑥스럽다기보다, 내가 왜 ‘여자친구’여야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내가 여자라는 인식이 별로 없는데 말이다. 이런 말을 남성들 앞에서 하면 대부분 “모솔이냐?”라고 반응한다. 내가 여자임을 받아들이는 게 힘들다는 뜻인데, 그 미묘한 결을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다.
뭘 원하는 겁니까 대체
내가 바라는 건, 인터넷 게시판에서 본 김민희–홍상수 커플의 상상 대화처럼 말해주는 사람이다.
김: “바다만 보면 질식할 것 같아요.”
다른 남성들: “바다는 탁 트여서 좋잖아요.”
홍: “당신은 육지에서 숨 쉬는 아가미가 있나 봐.”
나는 바다-질식-아가미로 이어지는 이런 류의 대화를 원한다. 내가 ‘여성인 게 인식돼서 어색하다’고 말할 때, “모솔이냐?” 대신 이렇게 말해주는 이성.
모범 답안 :
“나는 당신의 신체를 욕망하기보다, 당신이라는 생명체의 정신과 교류하고 싶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은 결국 번식의 본능에서 비롯되었지만,
내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것은 생물의 차원을 넘어서 생명의 교환에 가깝다.
우리는 연인이라는 이름보다는 서로에게 흔적을 남기는 두 마리의 아름다운 동물로 존재한다.
그것을 당신과 함께 하고 싶다.”
써놓고 보니 나도 어처구니없다. 그래도, 저런 걸 갈구한다.
해치지 않아요, 아마.
가족은 나에게 남자친구를 만들라며 닦달한다. 연하 남성과 맺어지는 수치가 높은 내 특성상, 더 나이가 들면 그들이 나를 안 놀아줄 거란다. 무엇이든 행동하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를 납득시켜야 하는데, 이성 관계에 있어서는 납득 절차가 작동이 안 된다. 그리고 꼭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나를 원하고, 내가 잠시라도 원한 사람들은 내 성격의 실체를 알고 도망갔다. 나는 ‘도망’이라는 단어를 쓴다. 내 얼굴이 비교적 순종적으로 생겨서인지, 다들 나에게 그런 성격을 기대한다. 하지만 내면에는 바주카포가 장전되어 있다. 기대가 깨지는 순간, 그들은 도망간다. 그대들의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오늘도 솔로
요즘도 누군가가 나에게 호감을 갖는 기미가 보이면, 순식간에 철옹성을 쌓는다. 훗날, 격렬한 사랑 한 번 못 해보고 떠나는 걸 후회할까 생각해 보지만, 딱히 후회 리스트에 올라갈 만한 항목은 아니다. 나는 혼자 재미있게 살아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