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호 논골담길 해설사의 삶!

1. 브런치스토리와 떠나는 구술여행

by 조연섭
묵호 논골담길 해설사의 삶
동해문화원 2022년 동해학 기록연구원 과정 수료생 예비 기록연구원 중 <김미자, 박선화, 김혜순> 3명이 참여 구술한 첫 구술 <묵호 논골담길 해설사의 삶>의 주요 구술을 <브런치스토리와 떠나는 구술여행>에서 공유합니다.

처음 구술 조사와 기록 과제가 정해지고 가장 먼저 고려한 것은 인터뷰가 수월한 주제에 대해 접근을 하자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우리 조는 현 문화관광해설사로 구성되어 있는데 묵호에 근무하면서 등대에서 활동하는 논골담길 스토리텔러 분들을 종종 만났었고 우리와 유사한 해설 활동을 하는 논골담길 해설사 개인의 삶이 궁금했습니다. 어떤 이유로 묵호에 살고 계시고 이 일을 하시게 되었는지 어떻게 해설하는지 등. 조사원 모두가 동해가 고향이고 동해 토박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오랫동안 이곳에 살고 있지만 동해 지역에서도 남부권이 주 생활 거주지였기에 묵호를 잘 알지 못하였습니다.


구술 조사를 하면서 우리가 접해 보지 못한 묵호의 그때 그 시절 이야기를 더불어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리고 논골담길 해설사분들은 대부분 고령이시기에 그분들 기억도 점차 흐릿해져 가시고 말씀을 나눠볼 시간도 많지 않은 제약이 있기에 기록으로 남겨야 하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논골담길 해설사를 만나기에 앞서 논골담길을 기획하신 동해문화원 조연섭 사무국장님을 만나 논골담길에 관한 이야기와 전 현직 활동 해설사분에 대한 자문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섯 분께 사전에 대면과 전화로 인터뷰 신청을 하였고 이 중 응답을 해주신 두 분의 구술자 분들을 뵈었습니다. 인터뷰는 묵호에서 면담이 진행되었고 구술을 정리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구술_ 하나

대상자: 조연섭(논골담길 기획, 문화원 국장)
면담자: 김미자, 박선화, 김혜순
구술자: 조연섭 (2021.10.1/10.7 문화원 2회)
조연섭 사무국장, 아리랑 TV로 해외방송 장면

Q. 논골담길 어떻게 기획하게 되었습니까?

직업관계로 촬영차 묵호를 여러 차례 방문하였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추억 속 묵호는 ‘가난한 사람들의 마지막 기항지’로 덕장마을 주민, 등대 등 묵호는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묵호 인들의 다양한 삶이 담겨 있는 몇 안 되는 생활 이야기가 넘치는 마을이었습니다. 이야기를 전승하며 문화자원으로 기록하는 스토리텔링 과정을 펼쳐 오다가 과정을 원형이 살아있는 마을에 벽화와 이야기로 담으면 좋겠다 싶어서 2010년 문화체육관광부 지원 한국문화원연합회 주관 생활문화전승 국고 공모사업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Q. 어떤 이유로 해설사를 투입하게 되었습니까?

해설 자치를 위한 도전이었습니다. 시작할 때는 관광지도 아니고 해서 <우리 마을은 우리가 해설한다>는 생각으로 주민과 논골담길을 좋아하는 시민을 대상으로 모집해 스토리텔러 과정을 도입했다. 홍성도 교수, 김태수 박사 등 전문가들이 참여해 10주 소규모 과정의 아카데미로 시작하게 됐다. 가장 대표적인 해설사 인물로는 지금은 고인이 된 고 김인복 선생님목사 사모님으로 참여한 박경옥 님, 다양한 재주로 지금도 봉사가 넘치는 김영자 님 등 다수가 고생하셨고 거의 묵호 지역민과 논골담길을 좋아하는 분들이었다. 시작은 자원봉사로 15명으로 시작하여 노인 일자리와 연계해 시니어 클럽 문화 관련 분야 일자리 연계로 20여 명의 어르신 일자리가 만들어지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시간 제약이 없었는데 조를 짜서 현장에 배치하다가 나중에는 관광객도 많아지고 인력에 한계가 있어 인원, 요청에 따라 현장에 대기조를 두었습니다.


Q. 논골담길 에피소드나 인상적인 기억이 있나요?

마을 주민중 한 사람이 페인트를 바닥에 흘린다고 젊은 작가를 야단치길래 주말에 택시 타고 달려가 야단친 K 모씨를 만났다. 저는 마을을 위해 전국에서 찾아온 젊은 작가들이 거의 실비만 받고 봉사하고 있고 <페인트야 지우면 되지만 작가는 떠나면 그만이다.> 라며 의견을 전달하고 앞으로 변화할 묵호를 예상하며 대화로 풀었다. 이후 친하게 지냈던 마을주민 기억과 등대에서 개최한 원더할매합창단, 등대음악회 개최 시 마을 할머니들이 껴안고 요즘은 왜 자주 오지 않느냐 하면서 눈물을 훔치던 기억, 마포문화재단에서 방문했을 때 김인복 해설사님과 마포종점 노래를 열창하고 퀴즈를 드려 생수를 선물했던 일, 정부 홍보방송에 국민 리포터로 출연했던 해설사님의 활동이 가장 기억이 남습니다.


Q. 현재 논골담길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시고 앞으로 논골담길이 어떠했으면 좋겠는지요?

지금의 논골담길을 보면 문화의 다양성 측면에서는 성장하고 있는 장점도 있지만 원형은 잃어가고 있는 부분이 크다. 논골담길은 골목별 주민 이야기를 발굴해 마을 주민의 삶을 담아 온 곳이다. 언제부턴가 마을주민의 삶인 스토리텔링이 부족한 이미지로 정체성이 다소 떨어지는 공간으로 변화되고 있다. 초기 발굴한 마을 캐릭터 원더할매, 장화, 만복이, 논골 상회 등이 사라지고 있어 안타까울 뿐입니다. 앞으로 논골담길은 젊은 생각들이 모이는 새로운 시각의 새로운 도전이 필요합니다. 예로 들면 전국의 청년 50명을 동해로 초청하는 해커톤 같은 프로그램을 개최 운영하고 결과물을 반영해 총감독 도입 등 전면 새로운 감각의 논골담길 시즌 2 도전이 필요합니다. 시대정신으로 본다면 12년 역사는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논골담길은 이제 아름다운 추억의 기억으로 남기고 싶기도 하다. 왜냐하면 젠트리피케이션(중산층 유입, 원주민 대체 현상) 사례는 비단 이곳만의 사례보다 곳곳에서 발생하는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여야 할 시쯤이기 때문이다. 또한 관의 강한 추진력으로 탄생시킨 묵호덕장 사업 등 각종 공간도 긍정적인 결과다. 앞으로도 지역문화 활성자로서 새로운 가치사슬에 맞는 다양한 문화기반 사회관계자본 구축에 앞장서는 프로그램을 기대한다.


□ 구술_ 둘

대상자: 이춘자(전 등대경로당 회장) 80세
면담자: 김미자 김혜순 박선화
구술자: 이춘자(2021.10.7 묵호동 자택)
이춘자 해설사, 6시 내 고향 출연 장면

Q. 묵호에 어떻게 살게 되셨나요?

원래는 강릉이 집이에요. 우리 집(친정)은 강릉에서 농사를 지으며 세금을 1등 낼 정도로 넉넉하게 살았는데 오빠가 군대에서 상사를 만났는데 사기꾼이었어요. 일본산 엔진 기계로 만든 발동기가 있는 배를 사라고 하였어요. 재산을 팔아 배 3척을 사 주문진항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했는데 그만 사라호 태풍(1959년)으로 항구에 출항을 준비하려고 정박해 있던 배가 떠내려가면서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도 실종되는 등 피해를 보았어요. 또 살던 마을에서 콩 한 가마니씩 두부를 만들다가 연기가 굴뚝으로 빠져야 하는데 아궁이로 나와서 집에서 난 불이 마을로 번졌고 마을 53채의 집 중에 23채가 전소하여 피해 보상을 하며 전 재산을 잃게 되면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어요. 나는 18살 때 언니 동생들과 묵호에 오게 되었어요. 거기서 태풍 보상으로 보조 배를 사서 일을 하다가 그마저도 망했어요. 거기서 고기를 대주는 일을 하던 잘생긴 총각을 만나 결혼을 하여 집을 3번 정도 옮기면서 묵호에 살게 되었습니다.

Q. 스토리텔러를 어떻게 하게 되셨나요?

나는 부녀회장을 10년 하고 경로당 회장을 10년 했어요. 당시 경로당 노인회장을 하고 있었고 그때 문화원 조 국장이 등대에서 음악회도 열고 그랬어요. 당시 고 김인복 씨가 어달동 통장이었는데 조 국장하고 와서 스토리텔러를 모집한다고 해보시라고 해서 나는 가르쳐 주는 대로 하겠다며 참여했죠.

논골담길 스토리텔러 클럽, 사진_조연섭

Q. 활동하시면서 기억나시는 것이 있거나 묵호에 대해 해 주실 수 있는 이야기가 있나요?

묵호는 태백의 무연탄을 일본 사람들이 가져가기 위해 묵호항을 개발했어요. 소나무를 가져다가 바다에 말뚝을 박아 판자를 대고 배가 드나들 수 있는 작은 항구가 만들어졌고 어부들이 목선으로 노를 젓고 또 발동기 배를 제작하여 바다에 나가보니 물 반 고기 반이라 항구 규모가 커지게 되었어요. 고기를 12 두릅을 잡으면 배 선주가 5 두릅을 차지하고 나머지는 내 몫이었고 말뚝을 박아 새끼줄을 쳐서 고기를 널어 팔았어요. 조합도 없고 냉장시설도 없을 때지요. 묵호에 고기가 개락이었고 개도 돈을 물고 다니고 거지도 먹고사는 곳이었어요.


돌 한점 흙 한점 쌓아 올려 따개비 집을 만들고 집은 방 한 칸, 부엌 한 칸 , 연탄구멍만 있음 되었어요. 그러다가 태풍으로 지붕이 날아간 집은 나라에서 슬레이트를 지원해 주고 했어요. 대부분은 아브라 가빠(루핑) 집이었고 슬레이트 지붕 집은 잘 사는 집이었어요. 아이를 가져 배가 만삭이었는데 물질을 하고 오다가 넘어져서 한참을 일어나지를 못했어요. 당시 논골은 우물이 2개가 있었는데 잠겨 있고 열쇠 지킴이가 있었어요. 그 문을 열어달라 하기 뭐해서 근처 어달리 기차로, 역전, 어달리 공동묘지 3곳에서 물질을 했어요. 나이 50전에 지구를 두 개 정도 들었다 놨다 할 정도로 물질을 했어요. 지금의 도째비골은 공동묘지였어요. 홍역으로 죽은 아이들의 무덤이 많았어요. 아직도 거기 가면 머리끝이 섬뜩한 기분을 느낄 때가 있어요.


해설할 때 1, 2, 3길의 그림을 미로 찾기 하듯 보시라고 하였지요. 논골담길은 예술가들이 밑그림을 그리고 우리가 색칠했어요. 그림의 내용은 연탄불에다가 양미리, 명태를 소금 뿌리며 구워 먹는 것들이었어요, 숙박 여부를 묻고 숙박을 한다 하면 동해시 관광 명소를 알려 주었어요. 애국가 첫 소절에 나온 촛대바위, 도심 속 천연동굴 황금박쥐 동굴 그리고 우리 고장 명승지 무릉계도 가보시라 하면서요. 외국인, 연예인 전국의 사람들과 사진을 찍고 자기네 동네에 스카우트하고 싶다 하였어요.

Q. 해설사 활동을 얼마나 하셨고 왜 그만두시게 되었나요?

교육을 받아 수료하고 2012년부터 시작하였어요. 내 동기 중에는 이미 고인이 된 김인복 씨가 있었는데 참 잘했어요. 인기가 많아 텔레비전에도 많이 나오고요. 나는 5~6년 하였고 한 달에 열흘을 오전 오후로 나뉘어서 했어요. 노인 일자리로 하는 분도 있고 재능봉사로 하는 분도 있었어요. 그만둔 거는 해설사는 시청이나 문화원에서 해야 하는 거로 생각했어요. 시니어 일자리 정책이 아쉬웠어요. 전문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어요. 노인 일자리가 아니라 관광 해설이어야 된다 생각했어요.

2010년 첫해, 마을주민들과, 사진_조연섭

□ 구술_ 셋

대상자: 장두중(해설사 반장) 82세
면담자 김미자 김혜순 박선화
구술자 장두중(2022.10.7 묵호노인경로당)

Q. 묵호에 어떻게 살게 되셨나요?

고향은 포항인데 1960~1973년까지 거기서 옷 장사를 했어요. 돈도 많이 벌었어요. 거기서 부도가 나 공장을 처분하고 가족을 놔두고 혼자 묵호로 오게 되었어요. 묵호에 와보니 지게꾼이 100명 이상이고 일당이 요즘 돈으로 20만 원 정도였어요.


넥타이에 멀쑥한 차림을 한 나를 보고 처음엔 고개를 젓다가 지게를 시험 삼아져 보라 하고 그렇게 3개월을 지게꾼 생활을 하였는데 마땅치 않아 서울에 있는 친구에게 연락해서 서울로 가려고 묵호역에서 기차를 타고 영주역에서 기차를 다시 타는데 강릉행으로 잘못 타서 묵호역에 내렸어요.

내리니 근처는 온통 밝은 불의 집들이 많았고 거기에 정착하게 된 거죠. 산만 뎅이에 집을 얻고 후에 가족들을 데려와 건조 일을 하였어요. 건조장이 100평 정도였고 돈도 많이 벌었는데 일이 힘이 들어 부인이 병이 나서 반을 팔아서 건조 일을 줄이고 천곡에서 노래방을 하였다가 식당도 했었어요.


Q. 스토리텔러를 어떻게 하게 되셨나요?

동해시 개청 후 통장과 사무장, 자치위원 등의 일을 하였어요. 그러다가 그만두고 쉬고 있을 때 논골담길 해설사가 있다고 하여 돈벌이 삼아 하게 되었어요. 단순 돈벌이로 한 분들도 많았지만 난 연구하고 공부도 했어요.


Q. 활동하시면서 기억나시는 것이 있거나 묵호에 대해 해 주실 수 있는 이야기가 있나요?

논골은 길이 논바닥같이 되어서 논골이고 담길 은 외지사람들이 묵호로 와서 아래쪽은 집세가 비싸서 비교적 값싼 산등성이에다 축대를 쌓고 집을 지으려다 보니 그 축대가 담 역할을 했어요.

도째비골은 왜 도째비골이냐 하면은 귀신골이라고도 하는데 고구려와 신라의 접경지로 출렁다리가 있던 골짜기에 전쟁에서 시체를 그냥 던졌다고 해요. 그 뼈에서 나는 인 때문에 보이는 빛을 귀신 불이라 불렀어요. 사문재도 고구려와 신라 격전지라 죽을 사 문 문자를 써서 불리다가 흉재라하여 초구 남구만 선생이 영의정에서 유배되니 유림들이 방문하여 선비 사 글월 문 자로 바뀌게 되었어요.

묵호는 4~5만 명 정도 있었어요. 그러다가 산 위에 있는 집들은 산사태 위험이 있어 천곡으로 이주를 했어요. 활동하면서 기억나는 것은 관광객들을 안내할 때 큰 절로 인사하실 때가 기억에 남아요.

Q. 그간 해설사 활동과 지금의 활동이 궁금해요?

논골담길 해설사는 현재 시니어 클럽 소속이고 난 반장입니다. 한 달에 열흘하고 하루 9시에서 12시까지 3시간을 일해요. 하루 일당은 2만 7천 원이죠. 재작년까지는 조를 편성해서 나눠서 하다가 요즘은 20명이 나오는 날에 한꺼번에 나와요. 관광객 안내도 하고 환경관리도 하지요. 해설사를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하고 싶어요. 요즘에는 논골담길 해설사를 할 만한 사람들이 없어 안타깝습니다.

보도자료_1. 논골담길 해설사 양성과정
강원경제신문 2012.10.20.

동해시가 평생학습도시 조성사업의 하나로 진행 중인 네트워크 공동사업의 수료식이 19일 오후 3시 묵호동주민센터 소강의실에서 있었다. 「묵호등대마을 논골담길 스토리텔러 양성과정」은 동해시 평생교육 센터와 동해문화원이 공동으로 기획‧운영된 과정으로 노인 및 4050 세대의 재능봉사와 일자리창출, 지역 공동체 조성, 지역재생이라는 목표를 갖고 운영되었다. 이번 과정은 10월 5일 개강하여 총 10회 동안 지역 인사와 전문가로 구성된 강사진으로부터 동해시와 묵호, 논골담길에 관한 역사‧문화와 이야기 표현법 및 만들기 등에 대한 교육을 통하여 묵호등대마을 논골담길의 스토리텔러로 양성되었다. 수료생 21명은 앞으로 평생학습 동아리를 구성하여 지속적인 학습활동과 논골담길 스토리텔러로 활동할 예정이며 시민들의 자발적인 평생학습 참여가 재능봉사, 일자리창출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보도자료_2. 논골담길 해설사 역량강화과정
강원경제신문 2013, 6.4

강원 동해문화원(원장 홍경표)과 동해시(평생교육센터)와 공동으로 2013 평생학습우수기관(단체) 공모사업으로 묵호동주민센터 회의실에서 지난 5월 6일부터 13회에 걸쳐 진행한 ‘묵호등대마을 논골 담길 이야기 해설사 역량강화과정’이 독특한 구성과 진행으로 큰 인기를 얻은 가운데 지난 6월 3일 수료식을 개최했다.


이번에 진행된 논골 담길 이야기 해설사 역량 강화 과정은 동해시가 평생학습도시로 지정된 후 우수기관 공모사업에 따른 사업으로 당초 예상보다 스피치 특강 등 실제 해설에 필요한 수요자 중심의 강의를 도입하고 현장해설을 직접 영상으로 담아 복습하는 전문아카데미 운영방식을 반영하여 참가자들의 반응이 좋아 강사진은 물론 참가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참가자의 대부분은 묵호등대마을의 논골담길 주민이며 전직 학교장 출신, 사업가, 활동가, 이도동과 쇄운동 등 원거리에서 참가한 시민들도 일부 포함됐다. 한미연합사령부서 근무 후 퇴직한 어르신, 묵호항에서 경매사로 30년 동안 활동하신 어르신 등 11명은 어르신 일자리로 참가해 일자리창출과 재능봉사를 병행하는 프로그램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한편, 동해문화원은 지속 가능한 사업을 위해 논골담길 스토리텔러 클럽을 자발적인 모임으로 운영하여 다양한 사업의 핵심 마을 리더로 활용할 계획이다.

동해시니어클럽과 함께한 ‘시니어 행복 해설사’ 여러분도 논골담길의 행복 전도사였습니다. 감사합니다.

동해 시니어 클럽 행복 해설사 공익형 파견사업

1. 기간: 11개월(1-11월)

2. 시간: 월 30시간(일 3시간 이내) 주 2-3회 근무

3. 대상: 동해시민, 만 65세 이상(기초연금수급자)

4. 급여: 월 27만 원

5. 인원: 20명

6. 주요 활동: 논골담길 관광 해설 도우미

(출처: 동해시 시니어 클럽 홈페이지)

논골담길 대표 스토리텔러, 일명 국민해설사
故 김인복 스토리텔러를 기억합니다.
故 김인복 해설사, 장관상 수상 장면

묵호 수협에서 30년 일하시고 묵호에서 60년의 세월을 보낸 김인복 어르신은 논골담길의 해설사로 해설 도중에 노래도 불러주고 퀴즈도 내고 해서 생수나 아이스크림을 자비로 직접 선물하는 인기 있는 해설사로 일부 주부들로부터 사인까지 받을 정도의 독특한 해설의 세계를 갖춘 분이셨다.


“논골담길에서 벽화가 그려지고 제가 마을 스토리텔러를 하면서 가장 뿌듯할 때는 버려진 집과 어르신들만 남아있던 마을에 젊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집을 떠났던 주민들이 다시 모여들고 있다는 걸 체감하는 순간이었어요”

고인이 되신 김인복 해설사 선생님의 생전 모습과 기사 인터뷰 내용입니다.

대표 논골담길 해설사 분이셨죠. 논골담길 해설에 관한 기록연구원 조사를 하면 사무국장님이 제일 먼저 추천하셨을 분, 우리에게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해 주실 분이셨지 않을까 싶습니다. 2016년 즈음에 다른 관광지에서 뵈었을 때 커피 한 잔 드시면서 “나 논골담길 해설사요” 하셨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여러 매체에 나오시고 많은 해설을 하셨지만 안타깝게도 직접 해설을 들어볼 기회를 얻지 못했어요. 논골담길 해설사님들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생각이 들었던 것은 어쩌면 김인복 선생님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해설사 활동 인원도 점점 줄어들고 어쩌면 논골담길 해설사라는 단어도 추억의 단어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사람의 기억을 정리하는 일은 참 어려웠지만, 구술에 응해주신 세 분의 말씀에서 묵호를 아끼는 마음과 과거 묵호에 대한 그리움과 애잔함 현재의 묵호에 여전한 안타까움과 미래의 묵호에 대한 기대감을 느꼈습니다. 김인복 선생님과 같이 매거진 기사에 인터뷰하셨던 조연섭 사무국장의 인터뷰 내용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논골담길 벽화는 일반 벽화가 아니라 마을과 함께 성장하는 살아있는 벽화예요. 원더할매와 만복이도 벽화 속에서 계속 자라나는 것이죠. “


해설사들을 만나 뵙고 조사를 마치면서 마을분들이 함께 그렸던 논골담길의 벽화도 사라지지 않고 순수한 마음으로 묵호를 사랑하셨던 논골담길 해설사도 잊히지 않고 우리와 함께 늘 같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들었습니다. 조사에 도움 주신 조연섭 사무국장님 감사드리고 낯선 이의 방문을 허락하고 따뜻하게 반겨주신 이춘자, 장두중 두 어르신 분들께도 너무 감사드립니다.

2022년 동해문화원, 동해기록연구원 과정 수료생(김미자 김혜순 박선화) 구술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