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 노트_ 맨발걷기
추암해변 맨발 걷기 586일 차, 생태의 순환을 목격하다
12일 새벽, 강원 동해시 추암해변. 586일째 이어진 맨발 걷기 현장에서 뜻밖의 장면을 발견했다. 백사장 위에 길게 드러누운 바다장어 한 마리, 이미 숨이 멎었지만 그 자체로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는 장면이었다.
장어는 대개 해저의 모래 속이나 바위틈에 몸을 숨기며 살아간다. 붕장어나 갯장어로 불리는 이 어종은 평소 사람들에게는 회, 구이, 보양식으로 더 익숙하다. 그러나 해안가 백사장에서 마주친 장어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다. 조류와 파도의 변화, 수온의 미세한 흔들림, 생애 주기의 끝자락 등 복합적 원인이 한 생명을 해안으로 밀어낸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장면을 단순한 ‘죽음의 흔적’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바다가 써 내려간 하나의 기록, 자연의 ‘일기’로 해석한다. 작은 개체의 소멸에는 해양환경의 미묘한 변화가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바닷가에서 우연히 발견된 물고기 한 마리도 기후와 생태계의 변화를 가늠하게 하는 지표로 기능한다.
추암해변은 일출 명소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동시에 지역민들이 매일 새벽 모래사장을 맨발로 걷는 생활문화의 현장이기도 하다.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모래의 감촉, 파도 소리와 바람의 결, 그리고 그날그날 달라지는 해안 풍경은 참여자들에게 자연과의 교감을 선사한다. 이번 바다장어 발견은 그러한 일상의 실천 속에서 바다가 불현듯 내보인 메시지였다. 인간이 걷고 숨 쉬는 순간에, 바다 역시 호흡하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것이다.
해변환경을 연구하고 있는 김대영 박사는 “추암해변은 관광지에 그치는 게 아니라 생태와 인간의 삶이 교차하는 현장”이라며 “해안에서 발견되는 이러한 사례들을 꾸준히 기록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는 지역 문화적 자산이자 해양생태 연구의 자료로도 활용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해양학계는 최근 기후변화와 연계해 해안에 밀려드는 어류와 해양생물의 사례를 주목하고 있다. 이는 해류 이동, 수온 상승, 먹이망 재편 등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단편적 사건이 아니라 해양 전체의 변화를 반영하는 중요한 단서다. 따라서 바다장어 한 마리의 출현조차도 학술적 가치와 기록의 의의를 갖는다.
새벽의 추암해변, 백사장에 누운 장어는 곧 파도에 쓸려 사라지거나 모래에 묻혀 흔적을 감출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을 목격한 이들에게는 단순한 장면이 아니라, 바다와 생명의 순환을 일깨우는 상징으로 남는다. 인간의 발자국과 장어의 흔적이 한 시공간에서 교차한 이 사건은, 일상의 걷기와 자연의 호흡이 함께 빚어낸 또 하나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