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 걷기, 깨진 양심을 밟을 뻔했다!

159. 노트_ 맨발 걷기

by 조연섭

맨발 걷기 577일 차. 어제보다 기온이 4도 내려간 21도의 공기는 선선했지만, 발을 담근 바닷물은 여전히 한여름의 온기를 품고 있었다. ‘바다의 계절은 한 달 늦게 온다’는 말을 실감하며 동해 추암해변의 부드러운 모래를 느꼈다. 자연이 주는 이 온전한 치유의 감각에 집중하며 촛대바위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해변 끝, 운동을 위해 인적이 드문 구석을 찾았을 때, 평화로운 감상은 산산조각 났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누군가 마시고 버린 소주병과 악의적으로 깨뜨린 듯한 유리 파편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는 풍경이었다. “아직도 이런 양심이 있나.” 실망감을 넘어 깊은 허탈감이 밀려왔다. 맨발로 자연과 교감하며 얻은 충만함이, 한순간에 타인의 몰지각함이 남긴 오물 위에서 위태롭게 흔들렸다.

추암해변 깨진 유리파편과 빈병들, 사진_ 조연섭
임시로 병을 모아 안전한 곳으로 치우고

최근 건강을 위해 맨발로 흙과 모래를 밟는 ‘어싱(Earthing)’ 인구가 부쩍 늘었다. 맨발 걷기는 자연에 가장 겸손한 자세로 다가가는 행위이자, 온전히 나를 치유하는 과정이다. 그렇기에 맨발로 걷는 이들에게 가장 큰 위협은 바로 ‘보이지 않는 흉기’, 깨진 유리 조각이다. 누군가 순간의 유흥을 위해 무심코 버린 병 하나가, 다른 이에게는 평생의 상처를 남길 수 있는 위험한 무기가 되는 것이다.


자연은 우리 모두에게 아무 조건 없이 자신을 내어준다.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고, 파도 소리를 들으며 위로받을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그 권리에는 반드시 책임이 뒤따른다. 내가 즐긴 공간을 다음 사람도 온전히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 내가 가져온 쓰레기는 흔적도 없이 되가져가는 것은 시민의식이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양심이다.


날카로운 유리 조각들을 주워 한쪽에 조심스럽게 모아두고 돌아섰다. 씁쓸한 마음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전국의 맨발러들에게, 특히 정비되지 않은 간이 해변을 걷는 분들에게 간곡히 당부하고 싶다. 부디 발밑을 조심하시라. 개념 없는 이들이 남기고 간 위험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주시라. 그리고 우리 모두가 되새겼으면 한다. 진정으로 자연을 사랑하는 방법은 그저 즐기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머문 자리를 처음보다 더 깨끗하게 만드는 성숙한 책임감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추암해변, 사진_ 조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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