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지역N문화
올해부터 우리 집은 차례를 생략했다.
지난해 추석에서 아버지는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겠냐” 하셨고, 어머니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셨다.
가족회의라기보다 묵묵한 합의였다. 차례상을 대신해 작은 과일과 술 한 잔만 놓고,
각자 마음속으로 조상님께 인사드리기로 했다.
그 순간 묘하게 허전했지만, 이상하게도 편안했다.
이제 우리 집에도 ‘명절의 전환기’가 찾아온 것이다.
한 세대 전만 해도 명절은 ‘의례의 절정’이었다.
대청소, 전 부치기, 새벽 제사 준비는 가족의 의무였고, 제사상에는 정성과 서열, 가족의 질서가 함께 올랐다.
하지만 지금은 그 질서가 자연스럽게 흔들리고 있다.
객지에 사는 동생들은 먼 길 귀향을 부담스러워하고, 손주 세대는 제사보다 대화의 시간을 원한다.
전통의 무게보다 관계의 온기를 선택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 변화는 단절이 아니라 ‘조용한 진화’다.
명절의 본질은 조상 숭배나 형식적 의례가 아니라 세대 간 기억과 감사를 나누는 ‘삶의 예(禮)’였다.
과거에는 그 예를 제사로 표현했지만, 이제는 차 한 잔, 영상통화, 혹은 함께 걷는 시간으로 표현되고 있다.
조상의 음덕을 기리던 마음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 방식이 더 ‘생활의 언어’로 바뀌고 있을 뿐이다.
문화적으로 보자면, 명절은 ‘삶의 의식’에서 ‘삶의 문화’로 확장되는 과정에 있다.
예전에는 전통이 사람을 이끌었다면, 지금은 사람이 전통의 의미를 새로 짓는다.
차례를 생략하는 가정이 늘어나고, 대신 가족여행이나 기부, 봉사로 그 뜻을 잇는 모습이 나타난다.
이런 변화는 전통이 약해진 게 아니라, 형식보다 진심을 중시하는 사회로의 이동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전통이 무의미해진 것은 아니다.
명절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시대의 언어로 다시 번역되고 있다.
예를 들어, 음식은 더 간소해졌지만 여전히 ‘나눔의 상징’이다.
성묘 대신 사진첩을 보는 행위도 조상을 기억하는 한 방식이다.
젊은 세대는 온라인 제례 서비스를 이용하기도 하고, 가족이 모여 손 편지를 쓰며 서로의 안부를 기록하기도 한다.
이것은 전통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시대에 맞게 ‘진화 중’이라는 증거다.
추석은 결국 ‘형식의 명절’에서 ‘관계의 명절’로 옮겨가고 있다.
조상의 음덕보다 부모의 안식이 더 중요해졌고, 상다리 휘는 밥상보다 함께 걷는 한 시간의 산책이 더 깊은 예가 되었다.
우리 집의 변화도 그 흐름 위에 있다.
어머니는 “이제는 마음으로만 절해도 된다”라고 말씀하셨고, 나는 그 말속에서 오히려 오래된 온기를 느꼈다.
보름달은 여전히 둥글다.
전통이든 변화든, 결국 달빛은 우리 모두를 비춘다.
형식은 달라졌어도 마음의 근원은 같다.
올해 차례를 지내지 않은 우리 가족도, 달 앞에서는 여전히 한 가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