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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지역N문화

당신의 ‘한가위‘는 안녕하신가요?

21. 지역N문화

by 조연섭

어김없이 귀성길 정체가 시작되고, 고소한 기름 냄새가 동네를 감싸면 비로소 명절이 왔음을 실감한다. 분주한 일상에 쉼표를 찍어주는 연휴, 맛있는 음식을 나누는 즐거움. 오늘날 우리에게 추석은 그런 모습으로 가장 먼저 다가온다. 하지만 이 익숙한 풍경 너머에서, 휘영청 떠오른 보름달은 우리에게 묻고 있는지도 모른다. “당신에게 한가위는 진정 어떤 의미입니까?”라고 말이다.

추석 풍경, 디자인 프롬프트_ 조연섭

추석의 본질은 ‘감사’에서 시작된다. 봄부터 여름까지 땀 흘린 대가를 거두고, 그 결실을 가장 먼저 조상과 자연에게 바치던 마음이며, 그것은 풍년을 기뻐하는 것보다 내 힘만으로 이룬 것이 아니라는 겸손의 표현이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의 삶은 농경사회와는 다르지만, 감사의 본질은 여전히 유효하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올 한 해 지켜온 나의 일상, 곁을 지켜준 사람들, 그리고 건강하게 한 해의 결실을 볼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한 감사다. 추석은 바로 그 마음을 회복하는 시간이어야 한다.


또한 추석은 ‘관계’를 확인하는 시간이다. 흩어졌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안부를 묻고, 함께 음식을 만들며 세대의 벽을 허문다. 1인 가구가 늘고 개인화가 심화되는 시대에, 성묘와 차례라는 전통 의식은 다소 번거롭게 느껴질 수도 있고 점차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그 본질은 ‘나’라는 존재가 홀로가 아닌, 거대한 시간의 강물 속에서 이어져 온 ‘우리’의 일부임을 확인하는 데 있다. 잠시나마 나의 뿌리를 돌아보고,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이며, 추석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옛말은 비단 물질적 풍요만을 뜻하지 않는다. 보름달처럼 꽉 찬 충만함과 이웃과 함께 나누는 넉넉한 마음의 풍요를 의미한다. 어려운 이웃에게 갓 찧은 쌀을 나누던 전통처럼, 우리 역시 주변의 소외된 이들을 돌아보는 나눔의 정신을 되새겨볼 때다.


고향 가는 길은 멀었고, 명절 준비는 고된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수고로움 속에서 우리는 잠시 잊고 살았던 삶의 소중한 가치들을 다시 길어 올린다. 감사와 관계, 그리고 나눔. 올 추석 연휴에는 밤하늘의 보름달을 보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면 어떨까. 나의 한가위는 무엇으로 채워지고 있는지를 말이다. 그 성찰 속에서 우리는 연휴의 피로를 잊게 할 만큼 넉넉하고 따뜻한 마음의 풍요를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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