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의 해이자 설계의 해

77. 지역N문화

by 조연섭

지난해 연말은 유난히 길고 어두웠다. 노력의 결이 보상으로 이어지지 않는 시간, 설명되지 않는 일들이 삶의 표면을 긁고 지나갔다.


그러나 그 시간을 통과하며 나는 한 가지를 배웠다. 버텨낸다는 것은 멈추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방향을 잃지 않는다는 뜻이라는 것을.


그래서 이 새해는 “잘 되길 바라는 해”가 아니라 “함께 풀어내는 해”가 되었으면 한다. 내 일만이 아니라, 내 곁에 있는 이들의 일도 서로의 숨결에 기대어 조금씩 제자리를 찾는 해. 한 사람의 회복이 또 다른 사람의 용기가 되고, 누군가의 성취가 이웃의 가능성을 밝히는 그런 연쇄가 이어지기를 바란다.

이 마음은 자연스레 ‘생애 전환 프로그램’이라는 다음 질문으로 이어진다. 전환은 단절이 아니라 이음이다. 과거 숙련과 실패, 몸에 밴 태도와 배운 언어를 모아 다음 삶의 문턱으로 건네는 일. 일의 의미를 다시 세우고, 관계의 반경을 넓히며, 시간을 다르게 쓰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새해 계획은 거창할 필요가 없다. 하루 리듬을 바꾸는 작은 실험부터 시작하면 된다. 걷는 속도를 낮추고, 기록을 남기고, 배움을 공동의 장으로 옮기는 것. 그렇게 삶은 조용히 다음 국면으로 넘어간다.


나는 이 해를 “정리의 해이자 설계의 해”로 삼고자 한다. 지난 것을 공정하게 매듭짓고, 올 것을 겸손하게 맞이하며, 사람과 사람이 다시 연결되는 구조를 차근차근 세우는 해. 결과보다 과정이 선명하고, 속도보다 방향이 분명한 해.


어둠이 깊었던 만큼, 빛은 가까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새해가 당신에게도, 내 곁의 모든 이에게도 서로의 일이 잘 풀리는 방향으로 흐르는 한 해가 되기를. 그리고 그 흐름 속에서 각자의 전환이 자연스럽게 시작되기를, 조용히 그러나 단단히 바란다. "흔들린 만큼 멀리 간다"는 삶의 지혜를 믿으며 새해를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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