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 노트_ 동쪽여행
사람은 언제나 결론을 서두른다.
불확실성 앞에서 침묵을 견디기보다, 판단이라는 이름의 언어로 상황을 봉합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 개인적인 사정을 겪으며 여러 정리된 지료와 검토의 시간을 통과하면서 분명히 깨닫게 된 것이 있다. 결론이 완전히 나지 않은 상태에서 타인을 평가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위험하고 잔인한 행위라는 사실이다.
사안의 양쪽 끝이 아직 닿지 않은 상태, 사실과 해석이 서로를 밀어내며 부유하는 국면에서 내려진 평가는 대부분 정확하지 않다. 그것은 진실에 근접한 판단이기보다, 불안에 대한 조급한 반응에 가깝다. 특히 제도, 법, 절차, 관계가 얽힌 문제일수록 한 사람의 말이나 단면적 정보만으로 상대를 규정하는 순간, 판단은 쉽게 오만으로 기울어진다.
우리는 종종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으로 보면”이라는 문장을 너무 쉽게 꺼낸다. 하지만 정황은 언제나 미완의 언어다. 드러나지 않은 맥락, 아직 도착하지 않은 증거, 말해지지 않은 사연은 늘 판단의 뒤편에서 시간을 요구한다. 그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 태도는 결국 사람을 대상화하고, 사건을 도덕의 재단 위에 올려놓는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인내다.
즉각적인 평가가 아니라 입내(忍耐)의 태도다. 조금 더 기다릴 줄 아는 자세, 결론이 나올 때까지 판단을 유보할 수 있는 용기 말이다.
결론 이후의 평가는 늦지 않다. 오히려 그때의 평가는 훨씬 단단하다. 사실과 책임, 구조와 선택이 분명해진 뒤에 내려진 판단은 상대를 훼손하지 않고, 공동체의 신뢰를 무너뜨리지도 않는다. 그것은 감정의 배설이 아니라, 책임 있는 해석에 가깝다.
나는 이제 확신한다.
성숙한 사회일수록 판단을 늦춘다.
성숙한 사람일수록 말을 아낀다.
결론이 나지 않은 자리에서 필요한 것은 정의의 망치가 아니라, 기다림의 의자다.
그 의자에 앉아 끝까지 상황을 바라보는 태도, 그것이야말로 오늘 우리가 다시 회복해야 할 윤리적 감각이 아닐까.
판단은 언제나 가능하다.
그러나 기다림은 훈련된 사람만이 선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