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논골담길 커먼즈
지난 11일, 서울 마포 <오마이뉴스>본사로부터 봉투 하나가 도착했다. 봉투 안에는 시민 기자에게 전달되는 공식 명함이 들어 있었다. 손끝에 닿는 명함의 촉감은 종이 이상의 묵직함이 전달됐다. 그동안 써 내려간 수많은 기사가 비로소 하나의 단단한 기록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나는 이곳에서 '뉴스게릴라'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우리 이웃의 삶을 기록해 왔다. 최근 기사 등급 중 '버금기사' 5건(으뜸기사 1건 포함)을 달성하며 명함 제작 대상자로 선정되는 기쁨을 누렸다. 누군가에게는 소소해 보일지 모르나, 치열한 검토를 거쳐 '으뜸 기사' 한 편을 세상에 내놓는 일은 결코 만만한 과정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지갑에 넣은 명함 한 장이 유독 묵직하게 느껴진다.
정년으로 명함이 단절된 상태에서 바로 명함을 챙겨 평소 좋아하는 잔디밭으로 이동했다. 사진 작업을 위해 나온 후배 작가를 만나고 첫 명함을 전달했다. 내가 시민 기자의 길을 선택한 이유는 화려한 홍보성 기사보다는 독자의 삶에 실질적인 힘이 되는 이야기, 즉 '사람 냄새' 나는 기사에 마음이 끌렸다. 또한 "뉴스는 기자를 뛰게 하지만, 더 좋은 뉴스는 기자의 가슴까지 뛰게 하는 것이다" 라는 신문사의 철학에 반했기 때문이다. 그 기자를 시민 기자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행사 보도나 정책 소개도 의미가 있지만, 진정으로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현장이다. 동네 골목의 소박한 풍경, 마을 행사 뒤에 숨겨진 땀방울, 그리고 꽃의 아름다움보다 그 꽃을 지키는 사람의 모습 등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일상의 찰나 들. 이러한 이야기들이 기사라는 형식을 갖출 때, 소박한 일상은 지역의 역사가 되고 사회적 의미를 획득한다.
시민 기자는 그냥 글을 쓰는 화자가 아니라 '공론장을 만드는 사람'이다. 지역 사회의 문제 의식이나 작은 제보가 기사화 될 때, 그것은 개인의 푸념을 넘어 사회를 향한 묵직한 질문이 된다.
"상근 기자가 없는 <오마이뉴스>는 존재할 수 있어도, 시민 기자가 없는 <오마이뉴스>는 존재할 수 없다."
과거 최은경 기자가 창간 21주년 기사에서 남긴 이 말은 신문의 정신과 철학, 시민 기자의 존재 가치를 가장 잘 설명한다. 현장에서 생생한 이야기를 발굴하는 시민 기자와, 그 원석을 정교하게 다듬어 세상에 내보내는 편집 기자의 협업. 이 과정이 유기적으로 작동할 때 비로소 시민 저널리즘은 완성된다.
실제로 창간자인 오연호 대표 기자의 글조차 편집 기자의 엄격한 검토를 거쳐 게재된다고 한다. 모든 기사가 철저한 심사 시스템을 통과해야 한다는 점은, 이곳의 뉴스가 '공동의 가치'를 지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총 1,203편의 글을 썼다. 돌이켜보니 쌓인 숫자보다 더 값진 것은 내면의 변화였다. 꾸준히 글을 쓰며 문장은 한층 간결해졌고, 어지러웠던 생각들은 명료하게 정리되었다.
무엇보다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깊어졌다. 같은 풍경을 보더라도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이 이면에는 어떤 삶의 서사가 담겨 있을까"라는 질문이 먼저 떠오른다. 보도자료를 대하는 태도 역시 달라졌다. 주어진 내용을 수동적으로 수용하기보다 "이 기사가 시민에게 줄 실질적인 효용은 무엇인가", "누락된 목소리는 없는가"를 끊임없이 자문하게 된다. 기자는 결국 '답'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덕분이다.
나는 정치나 행정의 복잡한 메커니즘을 파헤치는 전문 기자는 아니다. 그 영역은 전문가들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다. 대신 내가 집중하고자 하는 곳은 나의 직업인 문화기획자의 결이 담긴 '문화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