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논골담길 커먼즈
조희정 박사 신간 『연결의 진화』 북토크... 묵호에서 바라본 로컬의 진실
4월 2일 오후 4시, 동해시 묵호 논골담길 아래 작은 커뮤니티 공간 ‘논골담길 커먼즈’에서 ‘연결과 진화’ 주제의 북토크가 진행됐습니다.
‘문화발전소 공감'이 주관한 이날 북토크의 주인공은 THE 가능연구소 부대표 조희정 박사입니다. 박사의 신간 『연결의 진화』를 앞에 둔 참가자들의 눈빛은 진지했습니다.
책 이야기를 듣는 자리보다 소멸해 가는 지역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치열한 현장이었기 때문입니다.
"지원금이라는 다이너마이트를 경계하십시오"
조 박사는 소위 ‘로컬’ 분야에서만 22권의 책을 펴낸 베테랑입니다. 하지만 현장을 보는 그의 시선은 냉철했습니다. 그는 지원금 중심의 정책이 가진 한계를 지적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원금이 내려오면 마을의 지루함에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릴 수 있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폭발 뒤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요? 지원금만 뿌리면 지역이 나아질 거라 믿는 건 대책 없고 무책임한 일입니다.”
그는 이를 ‘낙수효과의 환상’이라 불렀습니다. 위에서 돈을 붓는다고 그 온기가 바닥까지 전달되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대신 그는 ‘분수효과’를 제안합니다. 작은 단위에서 주민들이 스스로 재미를 찾고 위로 솟구쳐 오르는 힘, 그것이 로컬을 살리는 진짜 동력이라는 것이지요.
연결의 핵심, 돈보다 철저한 ‘납득’입니다
이날 강연의 가장 깊은 곳을 관통한 키워드는 바로 ‘납득’이었습니다. 조 박사는 연결이 성공하기 위해선 자본의 논리보다 ‘왜 이 일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구성원들의 철저한 납득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관계를 맺는 데 돈보다 중요한 건 납득입니다. ‘나는 이걸 왜 하고 싶어, 동의하면 같이 하지 않으련?’이라는 이 소박하고 투명한 목적에 동의하는 사람이 늘어날 때, 비로소 지역은 활기를 되찾습니다.”
일본의 ‘아기 의자 프로젝트’나 지역을 여행하는 대학으로 공동체가 학습의 장이자 캠퍼스인 ‘사토노바 대학’ 사례도 결국 이 ‘납득’의 과정이었습니다. 아이에게 지역 장인의 의자를 선물하는 것이 왜 우리 마을에 필요한지, 지역 어른들과 관계를 맺는 6년의 시간이 왜 청년의 삶에 소중한지, 구성원들이 가슴으로 이해했을 때 비로소 ‘연결의 진화’가 일어났다는 설명입니다.
강연 뒤 이어진 토론은 더욱 뜨거웠습니다. 묵호에서 활동하는 문화기획자와 시민들은 현장의 벽을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젊은 사람들을 가치로 설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당장의 숫자를 좇는 현실 속에서 ‘연결’은 여전히 무거운 숙제입니다.”
한 활동가의 고백에 조 박사는 다시 한번 ‘사람’을 강조했습니다. 매력은 결국 사람이 만드는 것이며, 숫자에 매몰되기보다 우리가 왜 이 일을 시작했는지 그 본질적인 가치를 끊임없이 공유하고 ‘납득’시키는 과정이 연결의 시작이라는 응원이었습니다.
"관계인구라는 숫자보다 '활동하는 활동가 한 사람'이 소중합니다"
조 박사가 북토크 내내 강조한 것은 ‘활동가 인구 늘리기가 더 중요하다.'였습니다. 요즘 정책 용어로 흔히 쓰이는 ‘관계인구’라는 머릿수보다, 지역 내에서 실제로 움직이고 고민하는 사람이 먼저라는 뜻입니다.
“단순히 회원증을 주고 할인 혜택을 준다고 관계가 형성되지는 않습니다. 일본도, 우리도 이미 해봤지만 별로 달라진 건 없었죠. 중요한 건 그들과 ‘무엇을 함께 하느냐’입니다.”
그는 지난 수년간 고립된 채 지쳐가는 로컬 활동가들을 무수히 보아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이런 실험적인 삶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이 책을 썼다고 덧붙였습니다.
북토크가 끝나고 밖으로 나오는 길, 참가자들의 손에는 저마다 한 권의 책이 들려 있었습니다. 동해의 오래된 골목, 봄기운과 함께 사람들의 표정은 어딘가 든든해 보였습니다.
현실은 여전히 녹록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원금보다 연결이, 돈보다 납득이 먼저'라는 이 투명한 진실을 품은 30명의 마음이 있는 한, 묵호의 연결은 이미 진화하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요. 동해의 오래된 마을에서 시작된 이 대화가 전국의 지친 '로컬' 활동가들에게 따뜻한 응원이 되기를 바랍니다.
현장 스케치, 사진_ 김병희•권상동•조연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