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논골담길 커먼즈
우리는 오랫동안 문화를 ‘여유 있는 사람들의 취미’쯤으로 여겨왔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문화 예산은 먼저 삭감되었고, 공연장과 미술관은 ‘있으면 좋은 것’이지 ‘없으면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오래된 편견은 이미 여러 곳에서 조용히 반박되고 있다.
문화 투자의 경제적 수익률은 통상 1대 7로 평가된다. 1원을 넣으면 7원이 돌아온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숫자는 단순히 공연 티켓 판매액이나 관광객 소비를 집계한 것이 아니다.
사회적 자본 이론이 주목하는 지점은 더 깊은 곳에 있다. 문화적 향유 기회가 넓어질수록 사람들 사이의 신뢰가 두터워지고, 그 신뢰는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는 마찰 비용을 줄인다. 법적 분쟁, 사회적 고립, 정신건강 위기, 이 모든 것이 문화의 부재가 키워온 청구서다. 문화는 이 청구서를 줄이는 보이지 않는 인프라다.
프랑스의 마이크로 폴리(Micro-Folie) 프로젝트는 이 논리를 가장 선명하게 실천한 사례다. 루브르, 베르사유, 퐁피두 등 세계 최고 수준의 미술관 소장품을 디지털로 복원해, 접근성이 낮은 소도시와 교외 지역의 유휴 공간에 심어두는 방식이다. 파리까지 갈 수 없는 사람들에게 파리를 데려가는 것. 이것이 프랑스가 선택한 문화 배당의 언어다. 시설을 새로 짓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공간에 의미를 불어넣는 방식으로.
필자의 지인 강00 회장님 역시 동해안 모 장소에 초고령화 사회, 독도까지 가기 힘든 주민들을 위해 작은 독도를 조성하는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 지역을 비롯해 대한민국 여러곳에 이 언어를 번역할 자원은 충분하다. 근대산업의 시작을 함께한 우리 동해시도 그렇다. 100호 사택, 삼화 쌍용 목욕탕 등이 대상이다. 또한 농어촌 곳곳의 폐교, 기능을 다한 노후 공공청사, 원도심에 남겨진 빈 건물들. 이 공간들은 지금 무용(無用)의 이름으로 방치되어 있지만, 조금만 다르게 바라보면 지역 공동체의 정서적 거점이 될 수 있다. K-콘텐츠가 세계 시장을 흔드는 시대에, 그 콘텐츠를 길러낸 창의적 토양이 정작 국내 구석구석에서 말라가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역설이다.
문화는 소비가 아니다. 사람이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는 충동, 낯선 것 앞에서 멈추는 감수성,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 이것들이 켜켜이 쌓여 창조적 생산성이 된다. 정신건강의 위기를 개인의 취약함으로 돌리는 사회는 결국 더 비싼 비용을 치른다. 반면 문화적 향유가 일상 속에 뿌리내린 공동체는 그 자체로 회복력을 가진다.
선거철이다. 문화에 투자하는 것은 주민 감성을 위한 배려가 아니다. 그것은 지역 전체의 생산 기반을 유지하는 가장 저렴하고 지속 가능한 방식이다. 주식회사 동해가 지금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문화를 예산표의 끝줄에서 앞줄로 옮기는 것이다. 배당은 먼저 심는 자에게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