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논골담길 커먼즈
지난 주말, 묵호는 다시 한번 사람으로 넘쳤다. 논골담길 등대 아래, 해랑전망대 앞, 카페 리솔티드와 좌우 식당거리에서 묵호역까지 줄이 이어졌고, 바다는 오래된 항구의 얼굴 위에 새로운 시간을 겹쳐 놓고 있었다.
누군가는 이 북적임을 반갑게 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조심스럽게 바라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다. 지금 묵호는 ‘우연히 뜬 곳’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나는 이 마을 출신은 아니다. 묵호에 주목한 이유는 과거 취재차 여러 차례 묵호를 방문하고 묵호 사람들의 삶을 공감했기 때문이다. 동해문화원 임용 후 정년까지 20년 넘게 묵호를 바라보며, 때로는 문화기획자로, 때로는 기록자로, 지금은 논골담길 언덕 아래 작은 공동체 사무실 ‘논골담길 커먼즈’에서 문화순환 24시를 공부하며 묵호를 다시 읽고 있다.
오늘 이 글은 객관의 이름을 빌린 보고서가 아니라, 오래 묵호에 미쳐 있던 한 사람의 개인적 견해다. 다만 그 개인적 견해가 결코 가볍지 않은 이유는, 이 마을이 너무 오랫동안 느리게 변해왔고, 그 느린 변화가 오늘의 묵호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묵호가 뜨는 이유를 그냥 “핫플이 됐다”는 말로 설명하는 것은 이 마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묵호의 현재는 오랜 시간 축적된 장소성 위에, 최근의 교통 인프라 개선이 더해지고, 그 위에 사람의 이야기와 골목의 기억이 살아남으면서 비로소 완성된 결과다. 논골담길은 2010년 동해문화원이 주관한 사업을 계기로 지역 어르신과 예술가들이 함께 만든 ‘담화마을’로 자리 잡았고, 이 길은 묵호항과 주민 삶의 서사를 품은 골목으로 알려져 왔다.
또한 묵호등대는 논골담길의 정상이자 묵호항과 바다를 굽어보는 상징적 장소로, 지금도 묵호의 정체성을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63년 된 장소다. 최근에는 ITX 동해선과 KTX 접근성 개선 이후 묵호역 이용객이 크게 늘며, 묵호권 유동 인구와 체류 흐름에도 전국적인 변화가 있다.
지금의 묵호는 한 장의 사진으로 소비되는 장소여서는 안 된다. 오히려 너무 오랫동안 사진보다 더 깊은 것을 품고 있었기에 이제야 주목받는 곳이다. 사람들은 묵호등대와 해랑전망대에서 바다를 찍고, 논골담길의 문장을 읽고, 등대 아래에서 바람을 맞으며 카페에 앉는다. 하지만 그 장면의 밑바닥에는 한때 불빛이 꺼졌던 항구, 삶의 무게를 등에 지고 언덕을 오르내렸던 주민들, 그리고 그 기억을 지워버리지 않고 이야기로 남기려 했던 공동체의 시간이 놓여 있다. 한국관광공사 역시 논골담길의 가치를 ‘벽화’가 아니라 주민 삶을 담아낸 ‘담화’의 성격에서 찾고 있다.
문제는 바로 지금부터다. 뜨는 것은 어렵지만, 뜬 뒤에 품격을 지키는 일은 더 어렵다. 묵호가 정말로 좋은 마을이 되려면, 이제는 다섯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
첫째, 묵호는 사진만 찍고 떠나는 관광지가 아니라 오래 머무르는 마을이 되어야 한다.
머문다는 것은 마을에 매력을 찾고 시간을 쓴다는 뜻이다. 매력을 찾고 시간을 쓴다는 것은 돈을 조금 더 쓰는 문제이기 전에, 마음을 놓고 앉을 수 있는 장소가 있느냐의 문제다. 골목을 천천히 걷고, 커피를 마시고, 밥을 먹고, 주민의 이야기를 듣고, 저녁까지 보고 싶은 마을이어야 체류가 일어난다. 체류형 관광은 시설 몇 개를 더 놓는다고 생기지 않는다. 묵호만의 서사, 골목의 속도, 바다를 바라보는 시간의 질이 함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동해시 관광 동선에서도 묵호항, 도째비골·해랑전망대, 논골담길이 하나의 축으로 연결되어 제시되는 이유는, 이 일대가 단일 명소가 아니라 복합 체험권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우리는 손님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점검, 교육, 청소는 낭만이 아니라 기본이다. 마을이 유명해질수록 운영의 디테일이 장소의 품격을 결정한다. 화장실은 깨끗한가. 안내는 정확한가. 상인은 손님을 반갑게 맞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거리에는 쓰레기가 남아 있지 않은가. 골목에 잡풀들은 널려있지 않은가? 관광은 이미지 산업이지만, 재방문을 만드는 것은 결국 운영의 '신뢰'다. 한 번의 감탄은 풍경이 만들 수 있지만, 다시 찾고 싶은 마음은 서비스와 청결이 만든다.
셋째, 서비스는 지금보다 더 좋아져야 한다.
묵호의 매력은 투박함도 포함되지만, 투박함이 불친절의 면허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 투박함을 매력으로 만들어야 한다. 오래된 항구의 정서와 따뜻한 응대는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다. 말 한마디, 가격표 하나, 설명의 방식 하나가 도시의 인상을 결정한다. 묵호를 찾는 사람은 단지 풍경만 소비하러 오는 것이 아니라, 이 마을이 가진 결을 만나러 온다. 그 결이 친절과 배려 속에서 완성될 때 묵호는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기억되는 장소가 된다.
넷째, 먹거리, 숙박요금은 적당한가? 묵호의 미래를 가장 빨리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같은 상승기에는 늘 유혹이 생긴다. 손님이 몰리니 이때 조금 더 받아도 되지 않겠느냐는 마음이다. 그러나 지역관광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한 번의 실망이 순식간에 도시 전체의 평판으로 번진다는 사실이다. 한 집의 문제가 골목 전체의 문제로, 한 번의 불신이 도시 이미지의 하락으로 이어진다. 묵호가 지켜야 할 것은 순간의 매출이 아니라 장기적 신뢰다.
다섯째, 환경 정비는 ‘새것처럼 만드는 일’이 아니라 ‘본래의 결을 살려내는 일’이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최근 묵호 곳곳의 정비를 보며, 이 마을이 너무 매끈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묵호가 사랑받는 이유는 완벽하게 정돈된 관광지여서가 아니다. 오히려 바닷바람이 스민 계단, 오래된 집의 표정, 골목이 품은 삶의 흔적, 복제할 수 없는 서사 때문이었다.
논골담길이 주목받은 것도 결국 묵호 사람들의 삶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앞으로의 정비는 원형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시설 확충보다 청결과 안전, 기본적 환경 개선에 무게를 두는 편이 옳다. 묵호의 경쟁력은 화려한 시설이 아니라 ‘다른 어느 곳으로도 복제할 수 없는 삶의 현장성’에 있다. 논골담길 역시 애초부터 주민의 기억과 삶을 바탕으로 조성된 장소라는 점에서, 원형 보존의 원칙은 이 마을의 미래를 위한 가장 현실적인 전략이기도 하다.
나는 묵호의 미래가 ‘크게 바꾸는 도시’가 아니라 ‘깊게 다듬는 마을’에 있다고 본다. 이곳은 더 많은 구조물을 세우기보다, 이미 존재하는 이야기를 더 잘 읽게 해야 한다. 더 화려한 조형물을 들이기보다, 골목의 문장 하나를 더 오래 남게 해야 한다. 더 빠른 개발보다, 더 느린 체류를 설계해야 한다. 그래야 묵호는 반짝 유행하는 소비의 배경이 아니라, 여러 번 다시 오고 싶은 마음의 항구가 된다. 설사 구조물이 필요하다면 묵호의 상징 묵호 덕장의 덕장목, 어업의 상징 어구를 활용할 것을 주문한다.
묵호는 지금 분명히 뜨고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왜 뜨고 있는지를 잊지 않는 일이다. 교통이 좋아졌기 때문, 전망이 좋아서. 모두가 함께했다. 하지만 정답은 이곳이 오랜 세월 자기 삶의 결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KTX와 ITX는 사람을 데려올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을 다시 오게 만드는 것은 결국 묵호의 이야기이고, 묵호 사람들의 태도이며, 원형을 지키려는 마을의 품격이다. 최근 철도 접근성 확대와 관광 흐름 변화가 묵호권 활성화에 힘을 보태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변화가 지속 가능한 성과가 되려면 결국 지역 고유의 장소성과 운영 역량이 함께 가야 한다.
나는 여전히 묵호 언덕 아래에서 묵호사용설명서 주제의 언론사 연재 글을 쓴다. 하루에도 몇 번씩 골목의 표정을 보고, 바다의 색을 보고, 사람의 속도를 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묵호는 지금 유명해지는 중이 아니라, 자기다워지는 중이어야 한다고.
마을의 미래는 더 많이 꾸미는 데 있지 않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아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