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을 함께 읽는다는 것

루돌프j와 언제나 당신과 함께

by hyeily

오늘 학교에서 그림책 동아리를 운영했다.
각자 한 권씩, 마음에 남은 그림책을 가져와 돌아가며 읽어 주는 시간이었다.


한 선생님은 루돌프 J 이야기를 읽어 주었다.


루돌프 J는 은퇴할 시기가 되어, 자신의 역할을 다음 세대인 루돌프 K에게 넘긴다.
빛을 잃어 가는 존재가 되는 과정, 그리고 ‘이후의 삶’을 다른 방식으로 이어 가는 이야기였다.


그림책 속 이야기는 은퇴를 말하고 있었지만, 나는 자연스럽게
‘쓸모가 사라진 뒤에도 우리는 여전히 존재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떠올렸다.


또 다른 선생님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를 읽어 주었다.
사랑하는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한 할아버지가
함께 다녔던 장소들을 하나씩 다시 찾아가며 아내를 추모하는 이야기였다.

책 속 할아버지는 울부짖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걷고, 기억하고, 곁에 없는 사람과 여전히 함께 살아갔다.


그 이야기를 듣는 동안
문득 내가 떠난 뒤의 남편을 떠올렸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를 떠나보내야 할 사람들을 생각했다.
아직 오지도 않은 장면인데, 마음이 괜히 먹먹해졌다.


혼자 그림책을 읽을 때는
이야기는 거기에서 끝난다.
하지만 누군가의 목소리로 읽히는 순간,
그림책은 각자의 삶을 건드린다.
누군가는 은퇴를, 누군가는 상실을,
누군가는 아직 겪지 않은 이별을 떠올린다.

그렇게 겹쳐진 감정 속에서
그림책은 어린이의 책이 아니라
‘사람의 책’이 된다.

오늘의 슬픔은 불길한 예감이 아니라
이미 충분히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 같았다.
사랑하기 때문에 남겨질 사람을 떠올리고,
의미 있게 살고 싶기 때문에 이후를 생각하게 되는 것일 테니까.


그림책을 함께 읽는 시간은
삶을 무겁게 만들기보다,
오히려 오늘을 조금 더 다정하게 살아가게 한다.

나는 언젠가 사라질 존재이기 때문에
오늘 더 잘 듣고, 더 잘 안아 주고,
더 천천히 사랑할 수 있다.


그래서 아마도

그림책은 혼자 읽을 때보다
함께 읽을 때 더 큰 힘을 갖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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