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승전보
결정적인 사건은 사생대회 날이었다.
다행히 사복을 입을 수 있는 날이라
모자를 쓰고 최대한 가렸지만,
극심한 스트레스로 입 주변에 포진이 올라왔다.
마치 내 우울한 기분을 드러내듯
너무나도 선명해서 창피했다.
오랜만에 등교해 자리에 앉은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그걸 숨기고 있었다.
그때, 그 남자애가 다가왔다.
“오랜만이야. 얼굴 좀 보여줘.”
고개를 들지 않는 나를 보려 애썼다.
이미 뒤에서는
그 여자애 무리들이 놀잇감 발견한 듯 신나 있었다.
그날따라 모든 게 지치고 귀찮았던 나는
결국 고개를 들었다.
“아팠어. 이제 말해줬으니까 됐지? 저리 가.”
그의 시선이 입술에 닿는 순간
나는 다시 고개를 숙이려 했지만,
그는 웃으며 말했다.
“자기야, 아파서 학교 안 온 거라며.
근데 나랑도 안 한 뽀뽀를 누구랑 했길래 그렇게 부은 거야?”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다.
“너 말고도 많아. 신경 꺼.”
말을 섞고 싶지 않았지만
가만히 있는 게 더 바보 같았다.
“많아? 그럼 나도 이따 해줘.”
그 순간, 한계였다.
결국 나는 욕을 내뱉었다.
가까이 오지 말라고, 엮이지 말자고.
그 애의 표정이 굳었다.
사춘기 남자애의 자존심은
역시나 생각보다 단순했다.
그 뒤로는 뻔했다.
내가 먼저 들이댔다느니,
나를 놀아줬다느니.
사실, 인사해 줬던 건 고마웠다.
하지만 그 호의는
결국 나를 더 벼랑 끝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그래서 끊어냈다.
그 이후로 그는
당연히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됐다.
그 여자애와 그 애가
서로 좋아하고 있었다는 걸.
그 여자애는 나에게
그 남자애는 본인 거인데 하면서
나에게 호칭을 저렇게 장난쳤다며 비웃었는데
그 뒷말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사실 당시에도
‘어쩌란 거지 난 줘도 안 가져 너 가지세요.’
생각하며
관심조차 안 갔던 말이였다.
내가 좋아했어야 억울하지.
난 그저 여자애들이랑 그 시절에서만 할 수 있는
추억을 쌓으며 평범하게 친구 하고 싶었고,
내 털털한 성격이
너희에게 최대한 피해 가지 않도록 배려하고 싶었는데,
그걸 결국 사춘기 여자애들이
시기와 질투로 만들어서
결국엔 끝날 때까지 괴롭히는구나
참으로도 허무했고 헛웃음이 났다.
아무렇지 않은 말만 쓰기엔 그게 더 이질감 들 거 같다.
그래 나도 사람인지라 정말 솔직하게
그들은 살면서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도 않고
흘러가는 소식조차 듣고 싶지 않다.
정말로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이 말이 어울렸다.
돌이켜보면
그 여자아이도 자존감이 낮았던 모양이다.
열다섯부터 열여섯까지,
나를 깎아내려 상대의 마음을 확인하려 했던
그 비겁한 행동이 과연 옳았을까.
그들의 유치한 악의에
내 찬란할 것 같던 십 대가 난도질당했다는 사실이
허무하면서도,
이런 방법밖에 몰랐던 그 여자아이가 불쌍하기도 했다.
하지만
끝내 내 손으로 그 고리를 끊어냈다는 건 팩트다.
나는 결국
스스로 약속했던 ‘졸업장’을
엄마에게 선물했다.
남들에게는 그저 종이 한 장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매일 아침 환승역의 유혹을 뿌리치고
지옥 같은 교실에서 버텨낸
작은 승전보였다.
나는 중학교에 입학하며
찬란한 십 대를 꿈꿨다.
처음 교복을 입던 날의 설렘도
아직 잊지 못한다.
하지만 내가 꿈꿨던 찬란함과는
조금 다른 의미의 ‘찬란함’으로
나의 중학교 시절은 끝이 났다.
과거는
피한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았다.
과거를
들키지 않기 위해 발버둥도 쳐 보았다.
그치만,
과거의 ‘나’도 나 자신이었고
현재의 ’나‘도 나 자신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
‘내가 굳이 왜 피해 그들은 분명 잘 먹고 잘 살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당연하지만
단번에 깨달음이 나오는 건 아니었다.
대부분 시간이 약이라고들 하지만
어떤 시간은 끝내 약이 되지 못하는 것도 있다.
나의 중학교 3년의 기억은
지금까지도 시간이 해결해 주지 못했다.
그치만, 이 글을 쓰면서 울거나 괴롭지도 않다.
맵고 시렸던 수련회의 기억,
꿉꿉한 여름공기의 베이컨 주먹밥 한알,
용기 없는 점심시간 등등
아직까지도 떠올리면
코끝에선 그날의 냄새와
몸으로 느껴지는 온도와 촉감까지
생생하게 느껴지지만
그래도
나는
살아가고 있다.
환승역에서 발견했던
아주 작은 바늘구멍을
조금씩 넓혀 가면서.
도망으로 시작해
실수투성이였던
나의 빵점짜리 중학교 3년의 서사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그리고
나의 인생 드라마는
이제 막
0.5막 정도 끝냈을 뿐이다.
이 글은 다음화에서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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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일주일의 시작인 월요일인 오늘.
제 글이 하루의 시작일지,
아니면 하루의 마무리일지,
무엇이 되었던 어떠한 소확행은 되시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