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아직 그 안에 있었다.
그치만 이전 화에서도 말했듯이
내 시간은 드라마처럼 장면이 전환되듯
빠르게 바뀌지 않았다.
열다섯, 중학교 2학년만 넘기고 반이 바뀌면
길었던 한파의 추위가 끝나듯
그 모든 일들이 흩어지고
나에게도 새로운 싹이 틀 봄이
다시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하늘도 참 무심했다.
그 많고 많은 반 중에서
나를 가장 심하게 괴롭히던 그 아이와
같은 반이 되었다.
게다가
수련회로 향하던 버스 안에서
그 아이가 다른 반에서
전화로 엮어냈던 사람들까지
같이.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신이 있다면 내가
백 점짜리 도망을 쳤다고 착각해서
이제는 눈을 가리지 말고
똑똑히 보면서 버텨보라고
‘살아남아 졸업하는 것’으로
나를 다시 시험하는 건 아닐까.
중간에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은근하고 교묘한 조롱은
다시 시작됐다.
그때,
제비 뽑기로 한 남자아이와 짝꿍이 되었고
공교롭게도 나를 많이 괴롭히던 그 아이는
그 남자아이에게 유난히 더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어이없게도
삼류 영화 같은 장면이
다시 반복되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한 번 겪어봤다고,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나는 그 짝꿍과 스스로 거리를 두었다.
이미 충분히 조롱당한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괜히 엮였다가
내가 스스로 다짐했던
엄마에게 졸업장을 선물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할까 봐 두려웠고,
그저 이 모든 관계가 지겨웠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내가 피한다고 끝날 일은 아니었다.
한 달에 한 번씩 짝꿍이 바뀌어
잠시 숨을 돌리고 있던 어느 날,
그 남자아이는
굳이 나에게 더 친한 척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의 무리는
연애 한 번 제대로 해본 적 없는 나에게
다시 꼬리표를 붙였다.
‘남자 밝히는 애.’
‘쟤 또 좋아한다.’
학교를 자주 빠지던 내가
과연 남자아이들과 얼마나 친해질 수 있었을까.
헛웃음이 나왔다.
휴대폰을 열어봐도
남자아이들의 번호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미 그 남자아이를 좋아하는 애가 되어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하지만 그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스트레스로 인한 위염과 두통이
다시 나를 찾아왔고,
나는 또다시 학교를 제대로 나가지 못하게 되었다.
공부는 이미 손을 놓은 지 오래였고,
그저 ‘졸업장만 따자’는 생각으로
남은 시간을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등교한 날,
학교는 여전히 시끄러웠지만
내 주변만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그래도 이제는 조금 무뎌졌는지
이동수업 정도는 혼자 다니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날도 이동수업 교실에 도착해
자리에 앉으려 했는데
내 자리만
앉을 수 없을 정도로
오물이 흥건했다.
누가 했는지는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고,
이쯤 되니
‘해탈’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나는 화가 나지도,
우울해지지도 않았다.
그저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뒷자리로 가려고 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중간에 비어 있는 한 자리를 가리켰다.
하필이면,
그 남자아이 옆자리였다.
앞에서 해탈하면 뭐 하나.
피하려 해도
족쇄처럼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내가 앉자마자
뒤에서 들려오는 조롱 섞인 웃음소리.
그리고 곧
그들이 원하는 이야기가 퍼지기 시작했다.
내가 그 남자아이 옆에 앉고 싶어서
일부러 자리를 더럽혔다는 이야기.
정말
각본도 쓰고 연출도 하는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내 옆에서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거는 그 남자아이도,
그 상황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듯 행동하는 모습 자체도
우스웠다.
그날은
사람 자체가
소름 끼치도록 싫었다.
결국 매스꺼운 속과 두통을 견디지 못하고
나는 조퇴를 했다.
집에 돌아와 이 이야기를 들은 엄마는
잠시 말이 없더니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 아무 걱정 하지 말고
눈 딱 한 번 감고
그중에서 제일 싫은 애
죽기 직전까지 때려놔.
엄마가 뒤처리 다 해줄게.”
지금은 안다.
그 말이 어떤 마음에서 나왔는지.
하지만 그때의 나는 말했다.
“어떻게 그래.
나 졸업은 해야지.
굳이 뭘 때려. 나 괜찮아.”
사실,
마음만 먹으면
누구 하나 붙잡고 싸운다 해도
지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
하지만 이미
깎일 만큼 깎여버린 자존감과
남아 있지 않던 용기,
그리고 무엇보다
그만큼의 에너지조차 없었다.
사람이 너무 싫었으니까.
지금의 나라면
애초에 그런 관계를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저때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글도 괴로운 마음 없이 쓸 수 있는 거겠지.
얼마 전,
나는 엄마에게 웃으며 물었다.
“엄마, 내가 그때 진짜 한 놈만 팬다는 생각으로
때리고 왔으면 어쩌려고 그랬어?”
엄마는 지금도 단호하게 말했다.
“난 진짜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나는 웃어넘겼지만
그 웃음은 웃겨서 나온 게 아니었다.
어쩌면 아직도
엄마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한’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은 씁쓸했다.
그때의 나에게
말해줄 수 있다면
그때가 다가 아니라고,
용기를 내도 괜찮다고,
넌 충분히 그래도 되는 사람이라고.
폭력을 정당화하고 싶은 건 아니다.
다만,
그때의 용기 하나가
어쩌면 내 인생을
조금은 다르게 흘러가게 했을지도 모른다.
이 이야기는 다음 화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