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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렬 Nov 05. 2018

비린 마음


열흘 사이에 두 번이나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화를 냈다. 화를 낸 뒤에는 감정이 상했는지 마음에서 비린내가 났다.
 
가까운 시일로는 오늘 열린 동두천시 다문화 가족&외국인 장기자랑 객석에서 뒷자리에 앉은 60대 넘은 남자에게 거의 증오를 퍼부었고, 다른 하나는 열흘 전인 10월 25일 전철 1호선 방학 역 역무원에게 삿대질을 했다.

먼저 오늘부터 얘기를 해본다. 낮 2시 경 동두천시 보산역 일대에 조성된 외국인관광특구 야외무대에서 다문화 및 외국인 장기자랑을 보러갔다. 객석에 앉을 무렵 무대에서는 스리랑카에서 온 이주노동자가  노래를 마치고 자기소개를 하는 중이었다. 의자에 앉은 지 2분도 채 되지 않았을 때 바로 뒤에 앉은 사람이 무대를 향해 쌍욕을 하기 시작했다.

“씹새끼들아, 니네 나라로 꺼져. 저 새끼들 때문에 일자리가 없다고.”

당혹감과 불쾌함을 감당하지 못한 나는 뒤를 돌아봤다. 60대 중반 정도 되는 아저씨였다. 그는 나랑 일 초도 눈을 마주치지 않고 목을 위로 쭉 들어 올리며 계속 무대만 바라봤다. 오히려 그 옆에 앉아있던 일행이 욕 하지 말라며 그를 타일렀다.

나는 몸을 돌렸다. 1분 정도 잠잠하더니만, 이윽고 더욱 저열한 욕을 지껄였다.

“씨발 빨리 끝내. 개씨발새끼들 꼴도 보기 싫어, 사회자 빨리 끝내라고.”

사회자는 뭔가 익숙하다는 듯 잠시 멈칫 거리더니 웃음으로 상황을 대처하면서 공연자와 인사를 나누며 자기소개 시간을 마무리했다. 그리곤 곧바로 경품 이벤트 진행을 하여 분위기를 전환 시켰다. 그럼에도 뒤에서는 언성만 높이지 않았을 뿐 욕설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자리에 일어나 몸을 돌려 욕지거리를 하는 그의 얼굴에 내 얼굴을 갔다 댔다. 왜 욕을 하냐고, 당신 욕 때문에 너무 불쾌해서 견딜 수가 없다고 하면서 온몸에 힘을 가득 쥔 채 말했다.    

그는 이번에도 나를 투명인간으로 취급했다. 이에 더 격분한 나는 거의 싸우자는 심보로 숨을 깊게 들여 마신 뒤 최대한 날카롭고 뾰족한 언어와 음성을 내뱉으려 분노를 벼리고 있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일행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두 손을 X모양으로 휘저으며 나를 말렸다. 일행과 몇 초간 눈을 마주치고는, 나는 분노를 다시며 객석을 벗어나 건너편 길가 벤치로 자리를 옮겼다. 해소되지 않는 분노와 이렇게 화를 내는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러자 열흘 전 방학 역에서 역무원에게 비명을 지르듯 짜증과 신경질 냈던 기억이 소나기 먹구름처럼 몰려들었다.

10월 25일 오후 2시 40분 경 지하철 1호선 소요산행 2-2 객실에서 싸움이 일어났다. 70대 어르신이 임산부 자리에 앉은 40대 남성에게 큰 소리로 꾸짓다가 발생된 사건이다. 70대 어르신이 먼저 언성을 높였다. 이에 40대 남성이 ‘이 씨발, 당신이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야!’라며 욕으로 받아쳤다. 그러는 동안 전동차는 방학 역에 도착했고, 객실문이 열리자 70대 어르신은 40대 남성의 어깻죽지를 잡고 밖으로 따라 나오라고 했다. 그때였다. 40대 남성은 석유를 뿌린 바닥에 불씨 하나가 떨어진 것처럼 폭발을 했다.

얼굴을 부르르 떨며 벌떡 일어나더니 어르신 얼굴에 뺨을 날리고, 주먹으로 머리를 후려쳤다. 어르신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열린 출입구로 몸을 돌려 승강장으로 도망치려고 하자 40대 남성은 어르신의 어깨를 잡더니 객실 쪽으로 밀어 댔다. 그 순간 어르신의 왼쪽 팔다리가 출입문과 스크린도어 사이에 꼈다. 몇몇 승객이 비명을 질렀고 나 역시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서 40대 남성을 밀친 다음 어르신을 빼냈다. 그리곤 40대 남성의 몸을 붙잡고 출입문 밖으로 나왔다. 어르신도 비틀거리며 방학 역 승강장에 내렸고 몸에 힘이 풀렸는지 무릎을 꿇고 주저 앉았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40대 남성은 내 몸속을 빠져나와 굴러 나온 공을 걷어차는 것처럼 어르신의 얼굴을 걷어찼다. 어르신 이마 한 가운데가 찢어지며 피가 흘러내렸다. 순간 나는 분노로 팽창 되는 폐와 공포로 떠는 심장박동을 느꼈다. 고맙게도 주변에 있던 20~30대로 보이는 한 사람이 어르신을 엄호해주었다. 나는 40대 남성을 다시 감싸 안았다. 만약 40대 남성이 나를 밀치거나, 욕을 했으면 일이 더 커졌을 거다. 다행스럽게도 내겐 화를 내지 않았다. 그러나 계속 어르신을 향해 몸을 향해 돌격을 시도했고 끔찍한 욕을 멈추지 않았다.

“난 유치장 들어가면 되니까. 오늘 이 씹새끼 내가 죽여 버릴거야. 이 씨발새끼야. 가만 있는 사람을 왜 건드려. 엉. 왜 시비를 거냐고.”  

이렇게 있다가는 나도 감정을 주체하기가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어르신을 보호해주는 사람에게 경찰에 신고를 부탁했고, 40대 남성을 대신 막아 달라고 한 뒤 1층 아래 역무원실에 신고를 하러 내려갔다. 공익근무요원 두 명이 있길래 폭력사태 진압을 요청했다. 위에 올라간 뒤 나는 공익요원에게 폭력을 행사한 40대 남성을 말려 달라고 했다. 10분 정도 지나서야 역무원이 올라왔다. 나는 역무원을 보자마자 화풀이 하듯 소리를 질렀다.

“왜 이렇게 늦게 와요. 폭력사태가 일어난지 20분이나 지났는데.  사람이 스크린도어에 끼어 큰 일 날 뻔했는데, 도대체 뭐하고 있었습니까. 저랑 같이 도와준 분이 아니었으면 어쩔뻔 했습니까.”

역무원은 다소 기분이 나쁜 듯한 표정을 지었고 이에 나는 또 막 불만을 토해냈다. 몇 분이 지나자 경찰 두 명이 왔다. 나는 사건 전말을 증언했고, 전화번호를 알려 준 뒤 사건 현장에서 멀리 몸을 피했다. 얼마 뒤 들어오는 동두천행 전철에 몸을 실었다. 조용한 객실에 앉았는데 뭔가 배신 당한 또는 허탈함 이랄까. 20분 전 만해도 끔찍했던 일이 벌어졌다는 게, 되게 기분 나쁜 영화를 보고 나온 느낌이었다. 오늘에서야 이 감정에 대해 더욱 구체적인 표현을 쓰게 된다. 마음이 상한 것. 그리고 마음에서 비린내가 나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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