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먹다』을 읽고
『서울을 먹다』을 읽기 전까지 장충동족발과 장충체육관의 관계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비록 장충동 족발 골목이 장충체육관으로부터 파생된 것은 아니지만, 장충동이 족발의 성지, 족발의 대명사가 된 건 장충체육관의 공이 컸다. 조금만 관심을 가졌어도 침 삼키며 재밌게 살펴볼 수 있는 사실인데, 여태 모르고 있었으니 침보단 냉수 한 사발 삼키고 속 차려야 했다.
1963년 장충체육관 개장 자체가 장충동 족발의 소비를 촉진시켰다. 이 시기 프로레슬링과 권투가 엄청난 인기를 받았고, 많은 경기가 장충체육관에서 진행됐다. 당시 신문기사를 보면 장충체육관의 열기를 가늠할 수 있다. 먼저 레슬링, 1965년 8월7일자 경향신문에서는 1965년 8월 6일, 김일 선수가 프로레슬링 극동 헤비급 챔피언 벨트를 거머쥔 날 장충체육관에는 팔천삼백명의 관중이 경기장을 꽉 채웠다는 기사를 냈다.
다음은 권투, 1966년 6월25일 동아일보 기사를 보면 국내 최초로 김기수 선수가 권투 세계챔피언이 되던 날은 칠천여 명의 관중이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따라서 경기가 끝나면 “긴장과 흥분 그리고 응원으로 인해 배도 출출(195쪽)”했을 많은 관중들이 “목이 타는 구만, 쐬주 한잔 하고 가세(196쪽)”라며 체육관 인근 장충동 족발 골목으로 향한 것이다.
장충체육관 개관 보도 기사 동아일보 1963년 2월1일 장충동 족발 골목 출처 : 한국관광공사
장충동족발이 서울을 넘어 전국의 족발 대명사로 불리게 된건 1970년대, 돼지고기 수출을 위해 조성된 양돈단지 덕분이다. 수출 품목이 아닌 내장, 머리, 피, 앞뒷발과 같은 부속물이 싼 가격으로 재래시장에 공급이 원활해지면서 전국의 족발집이 번창하게 됐다. 족발이 인기 음식으로 거듭나자, 지방에서 장충체육관으로 올라온 선수를 비롯한 체육 관계자, 관중들은 장충동 족발을 탐미했을 터. 이들이 전국각지에서 장충동족발의 안테나이지 않겠는가. 이처럼 관람을 마치고 족발집으로 자리를 옮기는 사람들의 행렬, 족발 한 점과 부딪히는 술잔, 경기에 대한 품평, 고향에 내려가 지인들에게 웅장한 체육관과 족발집에 대해 말하는 모습을 떠올리면 입에 침이 고이듯 두뇌 속에 상상이 분비된다.
기실 경기장과 음식은 인생의 복합 선물 상자다. 2016년 9월 전문 미디어 조사기관에서 프로야구 팬 500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야구장 안팎에서의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조사'에 의하면 '치킨'이 행복 요인 중 가장 주요한 항목 중 하나로 뽑혔다. 또한 각 지역 프로야구 연고지의 명물 음식이 야구관람에 필수 아이템이 되었고, 해당 팀 감독,선수의 이름을 딴 음식이 인기리에 판매된다. 이렇듯 작금의 경기장 외식문화는 경기장 바깥 보다는 경기장 안에서 형성된다. 장충체육관처럼 경기장 주변 지역의 독특한 외식문화는 찾기 어렵다. 근 10년 전부터 오랜 역사를 지녔던 경기장이 하나 하나 철거되면서 그나마 있던 문화들도 박살났다. 동대문운동장이 대표적이다.
동대문운동장은 장충동족발처럼 대표적인 음식을 꼽기가 쉽지 않다. 동대문시장이 바로 옆에 위치했기에, 아니다. 붙어있었다, 그러니까 계란프라이로 비유하면 동대문시장이 흰자, 동대문운동장이 노른자처럼 붙어있었기에 먹을거리가 다양했다. 1950년대부터 2007년 철거 전까지 동대문운동장에서 야구를 관람했던 야구팬은 이를 가리켜 “뭐 동대문야구장은 문밖에 나가면 죄다 먹는 데”라고 표현한 바 있다. 요식업은 포장마차에서부터 시작해서 ‘있어야 할 건 다 있고요, 없을 건 없는’ 곳이었다.
나도 초등학교 시절에는 이따금 엄마를 따라 동대문운동장을 갔었다. 갈 때마다 엄마 손에 이끌려 경기장 근처 포장마차 들어가 잔치국수를 먹었다. 엄마는 순대곱창볶음을 먹길 좋아했다. 동두천에서 운영하던 가게 물건을 주문하러 동대문운동장까지 온 것이지만 요즘 생각해보면, 열에 둘은 나들이 차원으로 간 것이라고 추정한다. 위에 언급한 오래된 야구팬도 포장마차에 대한 기억이 짙다. 그는 동대문운동장하면 팥죽이 떠오른다고 했다. 경기보기 전 주변 노점상에 들러 팥죽 한 그릇으로 요기를 해결했다는 것이다. 그러던 포장마차가 2007년 동대문운동장과 함께 철거를 당했다. '디자인 서울' 정책이 유구한 문화를 박멸해버렸다.
어찌보면 경기장 주변 외식문화를 운운하는 건 시대에 뒤떨어진 외침일 수 있다. 허나 경기장 주변 상권 활성화를 언급할 때 외국사례에 집착하지 말고, 아니 외국사례만큼 장충동족발과 사라진 동대문운동장 상권을 되짚어 보자는 것이다. 장충체육관과 장충동족발과 관련한 문헌이 『서울을 먹다』밖에 없는 현실이다. 『서울을 먹다』에서 장충동족발의 분량은19쪽 정도다. 체육계는 각성해야 한다. 아울러 새롭게 형성되는 문화의 관찰도 등한시해서는 안된다.
잠실야구장도 외식문화가 독특하다. 경기장 바로 앞 광장에 행사용 의자와 접이식 식탁으로 대학교 축제 주점보다 단촐한 형태의 포장마차가 잠실야구장의 명소로 자릴 잡았다. 이로 인해 망연한 잠실야구장 앞 공간이 사람들의 풍류로 활기 넘친다. 비교적 빠른 시간에 형성된 외식문화지만, 익숙하고 친근한 풍경이다. 자연스레 동대문운동장 주변 포장마차가 떠올려진다. 나는 이런 현상을 가리켜, 외식문화를 넘어 유산이라 말하고 싶다. 동대문운동장과 장충체육관에서 잠실운동장으로 전파된 이른바 '스포츠 유산' 말이다.
근래에 국내외를 막론하고 스포츠 분야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용어가 유산이다. 그런데 우리사회 스포츠 분야는 유산마저 개발의 논리로 내건다. 이를테면 막대한 적자 발생이 기정사실 된 2018 평창동계올림픽 경기장 사후활용을 논할 때, 주최 측은 대안으로 '올림픽레거시 창출’을 거들먹거린다. 관광상품, 관광도시를 만들어 경기장을 중심으로 사람들을 끌어 모으겠단다. 황당한 소리다. 왜냐하면 스포츠 유산은 만드는 게 아니라, 만들어 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동안 사람들의 이야기가 숙성된 공간이야 말로 빛나는 스포츠 유산이다. 평창올림픽처럼 빚내면서 빛내려 하면 빚만 쌓인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주최 측도 유산 타령 대단했었다.
우리 사회의 스포츠 유산은 창출보다 보존과 발견이 훨씬 중요하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동대문운동장 근처 노점상에서 팔았다는 팥죽이, 이제는 민담이 되었다. 지금도 전국 대형경기장 주변에는 분명 팥죽 또는 장충동 족발과 같은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어느 설화에 나오는 대목처럼 “모든 것이 빛나는 것은 아니지만. 빛나는 모든 것들은 있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