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여움과 불쌍함이 동반된 친절은 불편합니다.
저희 자매는 외할머니의 친절이 언제나 불편했나봐요.
제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되던 해, 부모님은 두 번째 이혼을 하였고 저는 한부모가정의 장녀가 되었으며, 열 살 터울 동생의 보호자가 되었습니다.
이혼은 더 이상 인생의 흠이 아니라고 엄마와 우리 자매를 격려하던 외할머니는 누구보다 앞장서서 우리들의 인생을 동정하고, 동시에 엄마와 동생에 대한 책임감을 저에게 부여했습니다.
단지 그것뿐이었다면, 외할머니 앞에서나마 착한 아이처럼 행동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예부터 여자로서 꾸밈과 예쁨을 강요하던 외할머니였기에 더욱이 만남이 꺼려졌어요.
때문에 동생은 외가와 완벽히 연락을 차단하였지만, 저는 여전히 명절마다 연락을 드리고 포동포동해져버린 살의 대한 잔소리와 가여움을 동반한 친절을 동시에 받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까지 사람에게 함부로 '불쌍하다'는 표현을 쓰지 않아요.
누군가는 저에게 별거 아닌 것에 연연한다고 말할 수 있지만, 과거의 경험이 뭉쳐져서 인지 평범하게 쓰이는 표현임에도 이 말을 뱉는 순간 상대방에게 미안함과 죄책감이 쓰나미처럼 몰려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