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외과 실습!
신경외과 첫날 일정 중 Burr hole surgery라고, 외상 등으로 인해 생긴 혈종 등을 머리에 구멍을 뚫어 물로 씻어내는 수술 참관을 했다. 비교적 간단한 수술인 편이라 집도는 레지던트 4년 차 선생님이 하셨는데, 수술 필드에 시선을 고정한 채 무슨 과 하고 싶냐는, 으레 하는 질문을 하셨다. 내 차례가 돌아오고 매번 그랬던 것처럼 신경외과라고 말하자마자 선생님은 고개를 들어 나를 보고는 이름을 물어봤다. 그 후 가까이 오라고 한 뒤 수술과 관련된 해부 구조물들을 가까이서 설명해주셨다.
지난 2주간은 정형외과와 신경외과를 실습해 수술방 일정이 많았는데, 세컨드 어시스트를 서거나 아니면 교수님과 능동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서 솔직히 말하면 이제까지 실습한 것 중에 가장 재미있던 2주였다. (아침 7시에 컨퍼런스 참석하는 것만 빼면...)
수많은 에피소드들이 오래 기억날 거 같긴 하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걸 고르자면 딱 두 개다.
자교 병원의 신경외과 1년 차는 친한 선배다. 주당 근무시간이 80시간까지 허용되는 전공의 특별법이 있으니 그래도 잠은 좀 자겠거니 했는데 웬걸. 오랜만에 본 형은 그야말로 쪼그라들어 있었다. 스펀지로 만든 수세미를 물에 흠뻑 적셨다가 꽈악 짠 걸로 모자라 전자레인지에 조금 돌렸나 싶을 정도로. 너무 바빠 보여 형한테 직접 묻지는 못하고 다른 선배에게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전말은 이랬다. 과에 따라 다르지만 신경외과 같이 급박한 환자가 많고 바쁜 곳은 1년 차가 자의로 퇴근 후에도 병원에 남아 일을 배운다는 거다. 학문적인 건 둘째치고 내가 저 상황이면 과연 어떨까 다시금 생각해보게 됐다.
실습이 다 끝나가는 금요일 점심 즈음 교수님과 이야기할 시간이 있었다. 마침 교수님 자제 분이 딱 우리 또래라 편하게 이야기하다 이런 말씀을 하셨다. 본인도 힘들게 수련을 받았는데, 지금 나이가 되니 보상심리가 생겨서 그걸 조절하는 게 힘들다고. 말을 자꾸 곱씹어보다 예전에 함수의 정의를 처음 배울 때가 생각났다.
A를 넣으면 항상 B가 나오고, C를 넣으면 항상 D가 나오는 신기한 마술상자가 있
다... 그럼 여기 E를 넣으면 무엇이 나올까요?
함수가 신기한 점은 그 식을 정확히 알지는 못하더라도 어쨌든 결과값이 나온다는 거다. 살다 보니 더 신기한 건 내 행동을 Input이라 생각할 때 Output이 내 예상 범위 안에도 없을 때가 많다는 거고. 인간관계든 뭐든 '내가 이만큼 했으니까 이 정도는 받아야지'라는 사고방식이 과하지 않도록 해야지. 쓰다 보니 파이썬 공부도 한동안 손 놓은 게 기억났는데 그것도 차차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