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하자!!
지난 7월 동안은 낮동안 응급실 데이 근무를 했다. 퇴근길 한강을 건너며 보이는 서울의 아름다운 노을을 포기해야 한다는 건 참 아쉬운 일이었지만 피부로 직접 맞닿은 의학은 꽤 재미있었다. 역시 의사는 환자를 봐야 하는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고 왜 다른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의사 선생님들이 왜 미련을 조금씩은 가지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내가 있는 병원은 인턴이 응급실에 오는 환자 대부분의 초진을 담당했는데, 정말 시험문제에서나 보던 위중하고 응급한 질환들도 불쑥불쑥 튀어나와 굉장히 당황했던 기억도 난다. 공사장에서 낙하물로 인해 큰 혈관이 찢어져 심정지가 일어난 상태로 동료들이 차 뒷좌석에 아무렇게나 실어와 병원에 들이닥친 때도 있었고 본인은 멀쩡하다고, 한사코 괜찮다고 하는 뇌경색(중풍) 환자들도 봤지만 가장 기억나는 환자는 따로 있다.
차로 두 시간 정도가 걸리는 길을 온 할아버지였는데 숨을 상당히 헐떡이고 계셨다. 문진을 이것저것 하고 심전도를 찍는데 심근경색이었다. 한시라도 바삐 심장의 관상동맥 중 막힌 부분을 뚫어야 했지만 이미 다른 환자들로 꽉 차있어 지금 당장 적절한 치료가 불가능했다. 이럴 때는 빨리 사설 구급차를 불러 다른 병원에 이송을 해야 하는데, 요즘에는 코로나 때문에 병원 간 이송이 쉽지가 않았다. (코로나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은 일반 환자들도 이송이 어려운데 호흡곤란 등 호흡기 증상이 있는 환자는 격리실이 필요하기 때문에 더더욱 어렵다.)
아무튼 시간이 이미 꽤 지체된 상황에서 어렵게 병원이 어레인지 되어 사설 구급차에 인턴인 내가 동승해 심전도 및 산소포화도를 모니터링하면서 원래라면 약 한 시간 반 정도 거리를 가는데 정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환자가 의식을 잃지 않게 계속 말을 걸면서 안심할 수 있게 괜찮을 거라고 했는데 사실 난 전혀 괜찮지 않았다. 심정지 상황에서 뭘 하더라 머릿속에서 계속 돌리며 제발 제세동기를 쓸 일이 없길 모든 우주의 신들께 기도하는데,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리는 구급차 때문에 흔들려 잠깐 산소포화도가 내려갈 때마다 내 가슴도 덜컥 덜컥 내려앉았다. 어쨰어째 40분 정도를 걸려 무사히 도착한 뒤 할아버지가 누운 자리에서 나를 바라보며 의사가 참 괜찮다고, 잘 살펴봐서 고맙다고 말해주시는 그 눈빛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다른 병원에 간 환자를 추적하는 건 쉽지 않다. 그 할아버지가 적절한 치료를 받고 잘 회복하셨는지도 결코 확신할 수 없지만 꼭 반드시 훌훌 털고 건강하게 지내시고 있다면 좋겠다.
나는 내가 무슨 과를 할지, 환자를 보기는 할지 참 궁금했는데 시간이 흐르고 여러 경험이 쌓이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생각이 자꾸 바뀌는 걸 보니 미래를 그리는 일은 희망차고 즐거운 일인 것 같다. 역시 세상 모든 일은 하기 전엔 모르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