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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정체감이 그래서 왜 중요한데?

대기업 퇴사자의 이야기를 통해 자아정체감 바라보기

by 가정교사 쭌쌤


좋은 직장(일명 대기업)에 다니던 엄친아 같은 사람이 갑자기 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세계일주나 긴 여행을 떠나는 일들이 이슈가 된 적이 있다. 그리고 여전히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는 회자되곤 한다. 왜 이 사람들은 갑자기 이런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할까? 나는 그 이유를 '자아정체감'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자신이 원하는 삶 혹은 가치관에 맞지 않는 일을 했기 때문에, 새로운 변화와 영향을 위해 여행을 떠나게 된 거다.



물론 대부분 이런 이들은 퇴사 이후에 여행을 다녀온 경험으로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잘 살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만 내 생각엔 이들이 여행을 가서 잘 살고 있다기보다는, 자신에게 맞지 않는 삶을 포기하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아갔기 때문에, 인생에 잠시 고민할 시간을 그때라도 다시 갖었기 때문에 잘 살고 있을 것 같다. 인생은 생각보다 어떻게든 굴러가는 녀석이니까.


다만 이들을 자아정체감이라는 개념어를 통해서 접근한다면 어떨까?



먼저 자아정체감의 아버지 에릭슨(Erik Erikson)에 의한 의견을 보자. 우선 에릭슨은 자아정체감의 전제를 개인과 사회를 동시에 고려한 심리사회적 입장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에릭슨이 정신분석학을 기반으로 두고 있지만, 이는 이들과 다른 전제이다(정신분석학에서는 오로지 개인의 차원에만 전제를 두고 있다). 그렇기에 자신의 경험과 행동, 그리고 이와 상호작용하는 사회가 함께 작용하여 통합된 것이 '자아'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다만 여기서 재밌는 게, 에릭슨은 '자아 정체감'이 평생에 걸쳐 통합해야 하는 개념으로 판단하고 있으며, 청소년시기부터 본격적으로 '자아'를 인식한다고 가정하고 있다(이는 아직까지 심리학계에서 유효하게 판단하고 있다). 그리고 이때 '정체감 위기identity crisis''심리사회적 유예psychosocial moratorium'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정체감 위기'란 자신이 여러 가지 역할을 수향 하면서, 자신에 대한 지각과 타인의 지각이 다를 때, 혹은 자신의 과거 경험과 현재 경험이 다를 때 겪는 상황을 말한다. 또한 '심리사회적 유예'란 종교관이나 정치관 혹은 도덕관과 같은 문제에 대한 확고한 정의를 유보하지 못한, 자신의 입장을 결정하지 못한 시기이다.


이 두 가지를 반드시 겪어야 하며, 이 과정 속에서 개인은 사회의 요구에 맞게 자신의 모습을 결정하고 성숙해지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를 본격적으로 겪는 시기로 청소년 시기를 제시하고 있다. 고로 에릭슨은 청소년시기의 발달과업으로 '자아정체감 형성'을 제시하게 된다.



이런 에릭슨의 견해는 사실상 본인의 평생에 걸친 임상 연구의 경험을 통해 이론화한 개념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에릭슨 자신도 공식이나 정답이 아닌, 하나의 의견으로서 접근할 것을 언급한다. 다만 에릭슨의 이론이 워낙 흥미롭고 꽤나 훌륭했기에, 자아정체감을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학자들이 등장하고 그중 이후 자아정체감에 대한 연구로 바통을 잡은 마샤(J. Marica)가 등장한다. 마샤는 정체감이라는 심리구조가 개인의 마음속에 존재한다는 가정으로, 이를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접근하고자 했다.


이게 바로 마샤의 '반구조화된 인터뷰'와 '미완성 문장 완성하기'와 같은 방법을 통한 자아정체감의 측정 연구법이다. 이 연구들의 핵심은 피험자에게 연구자가 문제상황을 제시하고 이에 따라 어떤 선택과 행동을 보이는지에 따라 정체감 상태를 네 가지로 분류한 방법이다. '정체감 성취identity achievement', '정체감 유예identity moratorium', '정체감 유실identity foreclosure', '정체감 혼미identity diffusion'이다.


'정체감 성취'는 이미 위기를 경험했고 확고한 결정을 내린 사람들이다. 이들은 생애직업이나 이념 또는 가치가 강하게 확정되어, 자신의 확고한 삶의 목표나 가치를 정립해 확고한 정체감을 형성한다. '정체감 혼미'는 위기는 경험했으나 결정을 내리지 못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아직 직업이나 가치에 관심이 부족해 결정을 내리지 못한 상황이다. 물론 이는 과도기적인 단계이다. '정체감 유실'은 위기를 겪지 못했으나 지나치게 빠르게 결정을 내린 경우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타인에 의해 결정된 경우이기 때문에 성인기에 다시 정체감의 위기를 겪는다. '정체감 혼미'는 위기와 결정 모두 내리지 못한 상태이다.


마샤에게 있어서 정체감이란 자신의 능력과 신념, 개인사가 역동적으로 엮어진 자기 구조를 의미한다. 이 구조가 잘 발달하면 청소년은 자기만이 지닌 독특함을 볼 수 있게 되며, 자신의 장점과 약점을 잘 분별하여 삶을 살 수 있다고 하였다.



두 이론을 통해 퇴사 이야기를 접근해 보자면, 퇴사 후 여행을 간 이들은 에릭슨의 이론에 따르면, 정체감의 위기와 심리사회적 유예를 제대로 겪지 못해 성년기에 다시 진로나 자아에 대한 위기가 등장, 새로운 유예로서 여행을 떠나게 된 경우다. 그리고 이를 통해 본인의 자아정체감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마샤의 이론에 따르면, 결정은 했으나 위기의 경험이 없었기에 정체감 유실의 상태임을 인지, 이로 인해 위기를 경험하면서 결정을 유보하게 되어 정체감 유예의 상황에 빠진다. 그리고 여행이라는 시간을 통해 결정을 위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미래를 다시 건설하게 되는 자아정체감 성취의 상황에 돌입하게 된다.


우리는 살면서 '나‘라는 사람(’자아‘)보다는 '공부'와 '성적'을 중요시 여기며 살아왔다. 그리고 공부와 성적을 통해 이룰 수 있는 우리에게 익숙한 미래 만이 옳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이며 각자의 삶을 향해 살아야 한다. 사회적으로 혹은 타인이 맞다고 하는 길은 결국 자신에게 잘 맞지 않을 확률이 크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바로 자기 자신에게 새로운 위기를 겪게 하고 이를 유예할 시간과 자원을 준비하는 거다. 물론 이 시간이 짧고 어린 시기일수록 좋겠다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여유 있게 이 시간을 즐겨야만 한다. 그래야지 당신은 올바른 자아정체감을 형성하기 위한 여정을 이어갈 수 있을 거니까.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이런 유예와 위기를 겪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선이 많다. 마샤의 용어에 따르면 '정체감 유실'의 상황이 다수고 성인이 되어서 자신에 대한 고민이 다시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는 거다. 그렇기에 나는 에릭슨이나 마샤라는 학자들을 통해 '자아 정체감'개념을 우리가 올바르게 이해하고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굳이 세계일주를 가지 않더라도 청소년시기에 여러 고민과 경험, 그리고 다양한 관계 안에서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다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더 좋지 않을까? 그러니 나는 '자아'가 '공부'와 '성적'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아'에 대한 건강한 고민과 선택, 그리고 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결국 '나'라는 사람을 차근차근 만들어갈 테니까. 물론 나도 그러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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