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터를 누르고 기다리는 사람이 바로 접니다.
여행을 떠날 때면 늘 가방 한편에 넣어두는 물건이 있다. 바로 필름 카메라다. 이때의 여행은 꼭 멀리 떠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곳을 걸을 때도, 아무 계획 없이 타지로 훌쩍 떠나버릴 때도, 그 모든 시간은 나에게 여행이 된다. 그래서일까, 카메라를 챙기지 못한 날은 이상하게도 마음이 헛헛하다.
나에게 사진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내가 딛고 있는 곳, 내가 바라본 풍경, 그 순간의 공기를 한 장으로 붙잡아 두는 일이다. 특히 필름 카메라는 더 매력적이다. 선명하기보다 조금은 빛바래 있고, 완벽하기보다 약간의 여백이 남아 있는 색감. 완벽하게 계산되지 않는 노출과 우연한 흔들림. 그 모든 불확실성이 오히려 순간을 더 아름답게 만든다.
카메라에 빠진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스물여섯 살 때의 일이다. 그때 연락하며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 있었다. 그는 출사를 다닐 정도로 사진을 좋아했고, 그의 일상은 늘 사진과 함께였다. 여행을 다니며 담아 온 풍경들,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을 거리의 장면들, 빛이 스며든 창가까지. 나는 그의 사진을 보는 것이 좋았다. 특별한 장소가 아니어도, 그의 시선을 거친 순간들은 모두 하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던 그는 나에게 사진 한 번 찍어볼래, 하고 물었다. 나는 손사래를 쳤다. 비싼 취미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사진은 왠지 예술적인 사람들만 하는 일처럼 느껴졌다. 내가 감히 다룰 수 있는 세계가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말을 듣고 돌아온 밤, 나는 이미 일회용 필름 카메라를 장바구니에 담고 있었다. 아마도 무언가를 시작하고 싶었던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처음 배송이 온 카메라는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비교적 저렴한 제품이라 어쩌면 장난감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묘한 설렘이 있었다. 나는 곧장 집 앞 산책길로 나갔다. 강가에서 유유히 수영하던 오리들, 초록 잎 사이에 맺힌 살구 열매, 평소였다면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 작은 카페 간판, 그리고 천천히 흘러가던 구름. 늘 머물던 동네가 하나의 피사체가 되어 한 장면으로 담긴다는 것은, 익숙하던 풍경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었다. 카메라는 나에게 세상을 더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나는 그 이후로 사소한 것들을 더 오래 바라보게 되었다. 빛이 닿는 각도,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 늦은 오후의 그림자까지. 아무 의미 없이 흘려보냈던 순간들이 이제는 멈춰 서서 바라보고 싶은 장면이 되었다.
사진관에 현상을 맡기고 돌아오던 날도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직원은 담담하게 말했다. 삼일 뒤에 찾으러 오시면 됩니다. 고작 삼일이었다. 그런데 그 삼일은 어찌나 길게 느껴지던지. 어떻게 찍혔을지, 흔들리지는 않았을지, 빛은 제대로 담겼을지. 이미 지나간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장면들을 다시 떠올리며 결과를 상상했다. 그렇게 필름 카메라는 나에게 기다림의 미학을 가르쳐 주었다.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없는 기록,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기억, 그리고 시간을 건너 도착하는 한 장의 순간. 어쩌면 나는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라, 기다림을 사랑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면서부터 나의 시간은 조금 느려졌다. 찍는 순간과, 기다리는 시간, 그리고 다시 마주하는 장면까지. 하나의 사진은 세 번의 시간을 지나 완성된다. 원래의 나는 무엇이든 빠르게 확인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필름은 다르다. 찍는 순간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그저 내가 바라본 장면을 믿고, 그 순간의 감정을 맡겨 두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필름을 감아올릴 때마다 약간의 불안이 뒤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를 알 수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지금 이 순간에 더 충실하게 만든다. 나는 이제 평범한 하루 속에서도 충분히 셔터를 누른다. 집 앞 골목, 비 온 뒤의 젖은 길바닥, 아무 의미 없이 흘러가던 일상의 장면들. 그 모든 순간들이 더 이상 사소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카메라를 들고 걷는다는 것은 세상을 조금 더 천천히 바라보겠다는 다짐과도 같다. 이제는 그저, 그 애정 어린 눈을 알게 해 준 그에게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