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ea Greene Dec 20. 2021

풀에서 헤엄치는 별빛

에세이






나는 나이고 동시에 그다. 나는 마약을 원한다. 마약의 맛을 상상해 본다. 어릴적 해리포터 속 버터맥주의 맛을 제멋대로 상상한 후에 그 황홀한 음료를 맛보고 죽기를 버킷리스트에 올려놨는데, 나는 이런 일에 재능이 있다.


내가 상상한 마약의 맛은 혀에 서서히, 하지만 강렬히 퍼지는 달고 참기힘든 간지러움일 것이고 문을 열어 놓은 재즈바에서 흘러나오는 인어의 간드러지는 허밍과 함께 찾아올 것이다. 혀에 흐르는 맛은 심장을 두근두근하게 하지만 그것은 강단 앞에 서기 직전의 두근거림과는 방향이 다른 두근거림일 것이고, 설렘이 심장을 두드려 만들어 낸 진동이 내 목구멍을 타고 올라와 코를 찡긋 건드리곤 마지막엔 눈물샘에서 소량의 눈물마저 펌프질해 올릴 것이다. 곧 눈 앞엔 내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장소가 펼쳐지는데 그 장소는 반드시 내가 가보지 않은 곳이고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명소 중 한 곳이여야 한다. 아마 그곳은 로마의 한 광장일 것이고 고풍스럽고 오래된 건물은 높지 않고, 그 안에서 나비처럼 날아 나오는 불빛들이 로마의 역사에서 내가 상상하는 가장 아름다운 부분만을 내가 서 있는 그곳에 가져와 현대적인 고전미를 완성할 것이다. 점차 어두워지며 하늘의 색채는 모든 빛을 잃기 직전에 가장 아름답고 다양한 색채를 뽐낼 것인데 그 순간 누군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건물과 가로등의 불빛이 어둠에 가려 사라져가는 그 아름다움에 한 층 애틋함을 더할 것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 흐릿한 존재감을 견뎌온 불빛은 드디어 뚜렷해지는 감동에 하늘에 대고 거만함을 말할지도 모른다. 동시에 내 눈에 고인 눈물은 이유를 모른 채 조금 더 불어나 내 눈동자 전체를 적시고 나는 눈 앞이 뿌얘져 로마의 아름다움을 잠시 외면하고 우리 집 풀에서 수영치는 별의 반짝임만을 한껏 즐길 것이다. 그 순간이면 내 마음도 몰라주고 바쁘게 지나치는 엇갈린 차들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다. 차 체에 다가와 부딪히는 반짝임이 그들을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로 그려내는지 모른채 시간만 재촉하는 움직임이 너무나 원망스럽지만 그 아름다움도 곧 또 하나의 애틋함이 되니 괜찮다고 위로한다. 잠시 후 눈물은 더 이상 그 작은 공간에 머무르지 못하고 내 발등 사이로 떨어지고 다시 제대로 마주한 그곳은 좀 전의 그 아름다운 곳과는 전혀 다른 곳이다. 이 이질감은 절대 낯설지 않다. 하늘이 모든 색채를 잃어 어둠만이 가득찬 광장엔 사람도, 그 앞 도로엔 차들도 이제는 모두 차갑게 집으로만 돌아간다. 좀 전에 내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 느꼈던 꽉 찬 따뜻함은 온데 간데 없다. 나는 그들의 뒷모습만을 보고 있자니 너무 외롭고 화가나 그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다. 나는 벌거벗은 내 몸을 최대한 숨기려고 눈물이 떨어진 곳을 향해 최대한 바닥과 가까이로 웅크리지만 아름답던 로마의 광장은 좀 전엔 인지하지도 못했던 불빛마저 모두 모아 내게 보내고, 내 나체는 어둠이 짙어질수록 점점 더 눈에 띈다. 배신감이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이 배신감이 곧 내가 살던 집임을 결국은 느껴버리고 만다. 이 이질감은 절대 낯설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익숙한 것은 절대 아니다.


이것이 내가 상상한 마약의 맛이다. 모든 아름다운 것은 이런 맛을 낸다. 마약 맛보고 죽기. 내가 태어나기 전, 누군가 내 버킷리스트에 올려놓았음이 분명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