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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그업 Apr 15. 2016

함께 먹는 따뜻한 밥한끼

스타트업 관람가 9. <카모메 식당>


살면서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은 의외로 ‘뭐 먹지?’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점심때가 되면 누구도 이 질문을 피해갈 수 없죠. 부디 “그냥 아무거나 먹자”고 말하지는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때부터 그 ‘아무거나’를 정하기 위한 여정이 시작되거든요.


음식은 누구랑 같이 먹을 때가 더 맛있죠. 혼자 밥 먹기란 때로 두렵기까지 한 일입니다. ‘집단’이라는 생존전략을 통해 태고부터 살아남아온 이 사회에서, 혼자 먹는 일은 어쩌면 본능에 위배되는 행위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인류 역사를 하루로 본다면 근대화는 겨우 1분 전의 일이라고들 하잖아요.


1분 전까지 혼자 먹는 행위는 집단의 먹이활동에 참여하지 못하고 낙오된, 즉 생존가능성이 제일 낮은 자의 징표였을 것입니다. 그러니 태연한 척 당당한 척해봤자 어쩐지 눈치가 보인데도 어쩔 수 없는 일이겠습니다. 여러 영화 속 혼자 밥 먹는 장면들은 그래서 그렇게 외로워 보이는지도 모르겠네요.



집단이 형성되고 또 유지되는 일은 이 ‘같이 먹는다’는 행위로부터 비롯되는 게 아닐까요. 세상 모든 공동체는 따뜻한 밥 한끼를 나눠먹는 일로부터 시작된다고 저는 믿습니다. 스타트업이나 회사도 마찬가지 같아요. ‘컴퍼니(company)’라는 단어는 ‘같이 한다’는 의미의 접두어 ‘컴(com)’에 ‘빵’을 뜻하는 프랑스어 ‘파네(pané)’가 붙은 말이라죠. ‘한솥밥 먹는다’는 말과 똑같습니다.


‘같이 먹는 일’이 생각보다 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는 믿음은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카모메 식당>을 보고나서 굳어졌습니다.


카모메 식당은 핀란드 헬싱키의 길모퉁이에 뜬금없이 문을 연 일본식당입니다. 손님들은 이곳에 저마다의 불행을 안고 찾아옵니다. 그러나 이들은 불행을 과장하거나 과시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별 말도 않고 그냥 함께 주먹밥을 만들어서 나눠먹습니다. 유쾌하게 계피롤을 구워서는 둘러앉아 커피랑 먹기도 합니다. 별다른 말 없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맛난 음식들을 만들어 먹고, 그렇게 자연히 공동체를 이뤄가는 동안 스스로 살아갈 힘을 되찾죠. 이 영화에서 같이 먹는 행위는 고통과 외로움에 함몰되지 않는 방법인 듯 보입니다.


근데 생각해보면 되게 이상한 일 아닌가요? 매일세 번 평생을 하루같이 하는 일이 식사잖아요. 그러니 식사는 가장 보통의 일이어야 마땅한데 도무지 보통의 일이 되지 않습니다. 평생 매일 반복한다 해도 어느 지친 저녁 밥상에 앉았을 때 느닷없이 사무치는 밥 한 그릇의 애잔함을 피할 수 없습니다. 끼니의 간곡함 앞에서 문득 쓸쓸해질 각오도 필요합니다.


 

식사라는 일은 더 나아가 화합이나 치유의 행위로 승화되기도 합니다. ‘소울푸드’라는 말처럼 사연 있는 한끼 식사 앞에서는 녹아내리듯 뭉클해지곤 합니다. 누군가는 정말로 와르르 무너져서 눈물을 뚝뚝 흘리기도 하죠. 밥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나눠먹는 기분 좋은 한끼 식사만큼 사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우리 삶에 또 있을까 싶어지네요.


카모메 식당을 운영하는 사치에(고바야시사토미)와 미도리(카타기리 하이리)는 이런 대화를 나눕니다.

 

“미도리씨, 만약에 내일 세상이 끝난다면 뭘 하겠어요?”

“글쎄요… 제일 먼저 아주 맛있는 식사를 하고 싶어요.”

“그쵸? 저 역시 마지막으로 엄청나게 맛있는 걸 먹고 싶어요.

아주 좋은 재료를 사다가 많은 음식을 만들어서 제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초대해 성대한 파티를 열고 싶어요.”
 


이 장면에서 저도 내일 세상이 끝장난다면 뭘 할까 생각해봤습니다. 저 역시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편안한 곳에서 맛있는 식사를 하며 보내고 싶습니다. 그밖에 달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싶기도 하구요.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나눠먹는 일은 삶 속의 대수롭지 않고 소소한 축제 같아요. 그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우릴 살게 하고 공동체를 회전시키는 동력이 아닐까 싶네요.


스타트업의 하루는 늘 고되지만, 어쩌면 모든 게 항상 잘 풀릴 수만은 없겠지만, 어쨌든 지금 둘러앉아 따뜻한 밥 한끼를 같이 먹을 수 있다는건 축복인 것 같습니다.


Movie Images © NK contents


원문보기: 스타트업 미디어 비석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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