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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그업 Aug 19. 2016

어른은 어떻게 살면 좋을지 물어볼 어른이 있으면 좋겠다

스타트업 관람가 26. <태풍이 지나가고>

태풍이 몰아치는 깊은 밤. 아버지와 아들은 우비, 손전등 그리고 과자를 챙겨 작은 모험을 나왔습니다. 미끄럼틀 아래 숨어 이야기를 나누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묻습니다.


“아빠는 뭐가 되고 싶었어? 되고 싶었던 사람이 된 거야?”


잠깐 망설인 뒤에, 아버지는 대답합니다.


“아빠는 아직 되지 못했어.”



불의의 일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문득 누군가 “지금 당신은 당신이 꿈꾸던 어른이 되었나요?” 하고 물어온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답하시겠어요?


멈칫하게 되는 질문이죠. <태풍이 지나가고>의 물음입니다. 문득 어른이 되어 살아간다는 것, 어쩌면 원하는 어른이 되지 못하는 것, 그래서 내 아이는 이다음에 원하는 어른이 되기를 바라는 것. 영화는 이런 이야기들로 현실과 꿈 사이 간극을 담담히 비춥니다. 조금은 쓸쓸한 풍경이지만요.


고백대로 료타는 원하던 어른이 되지 못했습니다. 멋진 소설가를 꿈꾼 그는 40대가 된 지금 흥신소에서 불륜사진이나 찍는 현실을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번 돈마저 도박으로 날리는 한심한 어른이 되었네요.


그에게도 반짝이는 한순간이 있었습니다. 15년 전 꽤 이름있는 문학상을 받고 등단해 소설까지 펴낸 일이 있거든요. 꿈꾸던 일이 현실이 되어갈 때의 그 짜릿함, 료타는 줄곧 그걸 품고 살아왔습니다. 지금도 흥신소 일은 소설 취재의 일환일뿐이며 “나는 대기만성 형”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가족들은 이제 그런 그가 미덥지 않나봅니다. “대기만성에서 ‘대기’의 시간이 너무 긴 거 아니냐”고 응수하네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무거운 질문을 품은 영화일수록 의식적으로 유머를 넣어 균형을 맞춘다고 말한 바 있는데요. 이 영화에서도 그렇게 만들어진 익살맞으면서도 의미심장한 장면들이 있습니다. 가장 깊게 남은 장면은 료타의 어머니가 베란다의 귤나무를 보며 짓궂게 농을 치는 장면입니다. 료타가 고등학생 때 심은 귤씨가 자란 것이죠. 어머니는 료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 귤나무 기억하니? 엄청 자랐구나.
꽃도 열매도 안 생기지만 너라고 생각하고 날마다 물 주고 있어.”


“말씀 얄밉게도 하시네.”
(료타, 씁쓸하게 웃으며)


“그래도 애벌레가 이 잎을 먹고 자랐단다.
나중엔 나비가 됐어. 꼬물꼬물하더니 파란 문양 나비가 됐지. 어쨌든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고 있어.”



관객은 알고 있습니다. 료타라고 왜 꿈꾸던 삶을 살고 싶지 않았겠어요. 꽃도 열매도 맺고 싶겠죠. 료타도 밤새 쓰고 아침에 엑스표를 그어버리는 소설가가 되려던 것은 아니었을 겁니다. 멋지게 써서 보란듯이 성공하고 싶겠죠. 그래서 아들에게 비싼 글러브도 사주고 싶고, 어머니께 용돈도 잔뜩 드리고 싶은 마음, 료타에게도 그 마음만은 굴뚝같을 겁니다. 우리도 그런 마음을 느껴봤기에 료타를 알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스타트업으로 얼른 돈 많이 벌어서 어머니 용돈 한번 두둑하게 드려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우리 인생이 어린시절 꿈처럼 흘러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지금 당신은 당신이 꿈꾸던 어른이 되었나요?”라는 질문에 잠시 고민한 후 맑은 눈으로 “예”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꿈을 품었다 해서 모든 사람들이 이룰 수 있는 건 아닙니다. 현실은… 현실입니다. 아니 좀더 솔직히 고백해보겠습니다. 그전에 대부분의 우리 어른들은 사실 ‘어른’이라는 게 대체 뭔지, 어른이 되어서도 ‘어른은 어떻게 살아야 좋을지’ 알지 못합니다.



초중고 12년 동안 남들처럼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러다 수능을 봤고, 어느 날 갑자기 인생의 진로라는 막대한 문제를 당장 결정하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결국 어리둥절한 채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대학에선 또 남들처럼 스펙이란 걸 열심히 쌓았습니다. 취직을 하고나서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죠. 그러다 문득 거울을 보니, 우리는 어른이 되어있었습니다.


생이 그렇게 휙휙 지나가버리는데, 나이를 먹어도 아직 삶은 어렵습니다. 실수도 여전합니다. 아직 덜 먹어서 그런 걸까요? 어릴 땐 어른이 되면 다 알게 되고 뭐든 척척 해낼 줄 알았는데 말이죠.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이렇게 살아가는 게 서툴 줄은 몰랐습니다.


세상의 많은 어른들은 나름 열심히 살았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아가는 방법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때그때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인 것 같네요. 어딘가 ‘어른은 어떻게 살아야 좋을까요?’ 하고 물어볼 수 있는 진짜 어른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태풍이 지나가고>의 고백처럼 누구나 바라던 어른이 되어 원하던 삶을 살 수는 없습니다. 당첨자 수는 정해져있습니다. 속상한 얘기지만요. 어느 시점이 되면 그걸 인정하고 꿈보다 현실을 돌보는 일을 우리는 ‘어른스럽다’고 표현하네요.


인생이 원대한 꿈의 실현으로 채워지는 사람은 사실 극소수죠. 우리의 하루는 그보다 작고, 기쁨도 슬픔도 소박합니다. 어쩌겠어요. 그래도 살아가는 거죠. 어쩌면 이루지 못할 수도 있는 꿈을 품고. 그럼에도 날마다 즐겁게.

일이나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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