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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작가 Sep 06. 2024

아이들로 인한 나의 경제 관념 변화


2011년, 나는 결혼과 함께 1억 전세금에 10만 원 월세를 내는 20평대 아파트(당시 매매가 2-3억 사이)에서 신혼을 시작했다.


2013년 첫 아이가 태어났고, 그 무렵 집주인이 월세를 15만 원으로 올렸다. 그 당시 집값이 오르고 있었지만, 나는 여전히 대출이나 빚을 내는 것을 꺼렸고, 월세 15만 원을 내며 그 집에 살았다. 아이 한 명과 살기에는 집 관련 비용이나 빚이 없어 경제적으로 여유로웠다. 아이가 생기면서 차도 바꾸었고, 이때 약간의 캐피탈 대출을 이용했다. 그 대출은 이직하면서 받은 퇴직금으로 모두 상환했다.


그때까지 나는 돈의 소중함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2016년, 둘째를 임신하게 되었고, 아이가 두 명이 될 것을 고려해 30평대 큰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전셋집 주인이 나와 비슷한 또래라는 이유가 자극되어, 결국 빚을 내어 아파트를 구매했다.


양가 부모님께 약간의 도움을 받았고, 5억짜리 아파트를 매수하면서 3억 자비 2억(고정금리 2.5%)은  대출을 받았다. 당시 나는 부동산이나 투자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그저 두 아이를 더 넓은 공간에서 키우고 싶고, 내 집에서 살고 싶다는 단순한 이유였다. 그러나 이 결정이 내 생애에서 가장 적절한 시점에 제대로 한 투자였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 집은 2024년 현재 11억을 넘는다.


둘째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직도 20평대 아파트에서 전월세로 살며, 벌어들이는 돈을 그저 호화롭게 소비하며 살았을 것이다.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사립초등학교와 사교육비로 인해 경제적으로 약간의 부담이 생겼지만, 두 부부의 경제력으로 큰 어려움 없이 버틸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급만으로는 미래가 불안했고, 부동산이나 주식 투자를 통해 수익을 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하지만 실제로 투자를 공부하는 대신, 그냥 어떻게 해야 할지 주변만 기웃거리고 있었다. 서울에 집도 있었고, 당시 다니던 회사도 안정적이었으며, 오랜 근속으로 인해 연봉은 크게 오르지 않았지만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되었기 때문에 투자에 대한 필요성을 인지하고도 적극적으로 공부하거나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때 나는 돈을 늘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직을 통한 연봉 상승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결국 이직을 결심했지만, 그 후의 삶은 결코 쉽지 않았다.

익숙했던 회사를 떠나 덜 좋은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불편하고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이직을 통해 한 가지 기회가 주어졌다. 새로운 직장 생활의 불편함을 벗어나기 위해 부업과 투자 공부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게 된 것이다. 부동산 시장에 관심을 갖고, 주식의 흐름을 분석하며, 스스로 투자 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아무도 나에게 알려주지 않았지만, 내 스스로 투자 방법을 찾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투자에 대한 관심이 생기게 된 이유도 결국 아이들의 교육비 때문이었다. 교육비는 소비성 비용이지만, 그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투자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고, 투자 공부를 하게 된 것이다. 만약 아이들의 교육비나 미래에 필요한 자금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다면, 안정적인 직장에서 받는 적당한 연봉에 만족하며 별다른 고민 없이 집과 회사 생활만 반복했을 것이다.


투자는 스스로 공부하고 경험해야 한다. 그리고 내게는 아이들이 그 동기부여가 되었다.


비록 힘든 순간이 있지만, 아이들이 있었기에 적절한 시점에 서울 아파트를 매수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투자 공부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었다. 아이들은 나에게 이렇듯 삶의 중요한 동기부여가 되어가고 있다.


결국, 나는 아이들 덕분에 더 나은 경제적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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