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책 읽기<행복한 왕자>
어렸을 때 제일 싫어했던 책은 <행복한 왕자>였다.
'행복한 왕자'는 사랑받는 아름다운 왕자였다.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아름답고 화려한 보석으로 꾸민 동상을 마을 한가운데 세운다. 왕자는 그곳에서 살아서 보지 못했던 것들을 만난다. 아파서 죽어가는 아이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엄마, 길가에서 죽어갈 수밖에 없는 아이.
“내 칼자루에 박힌 이 루비를 빼어서 저 집 창가에 놓아주겠니?”
“나를 뒤덮고 있는 황금은 필요 없으니, 이 걸 떼어다 저 아이에게 가져다주겠니 “
“내 사파이어 눈을 빼어서 저 아이에게 가져다주겠니?"
제비는 추워지기 전에 남쪽으로 가야 하는데.
어느 하루 칼자루에 박힌 루비를 또 어떤 날은 몸통을 감싼 금 조각을 이동하는 일을 돕느라, 남쪽으로 가야 하는데 그렇게 그곳에서 추위를 맞이한다.
말 못 하는 동상과 제비라니. 사람들은 그의 선행을 모르고, 흉해진 동상을 버리고, 그를 도와주던 제비는 제때 따뜻한 남쪽으로 가지 못해 얼어 죽고 만다. 어린이였던 나에게 이야기가 너무 슬프기도 했지만, 못 참아냈던 건, 그 어떤 구질구질함이었다. “너는 몰라줘도 돼 으흑흑" 하면서 주저앉아야 할 것 같은데, 그는 납으로 만든 동상이기 때문에 어떤 표정도 없이 항상 그대로다.
사람들이 사랑했던 얼굴은 여기저기 금 쪼가리가 덕지덕지 남아 이제는 더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얼굴이 된다. 제일 펼쳐보고 싶지 않았던 마지막 장면은 쓰레기통에 버려진 납덩이 심장으로 남는 행복한 왕자의 마지막이다. 하루만 하루만 했던 그 유야무야 한 성격 때문에 다정하고 작은 제비 마저 추운 곳에 같이 얼어 죽는다니. 그 부분이 가장 최악이었다.
우리 집에 있던 <행복한 왕자> 책은 나에게 삼촌뻘이었던, 서울 사는 아빠의 이종사촌 것이었다. 기억에 1970년대나 1980년대 초판이 1쇄 발행일이었는데, 오래되고 낡은 종이 냄새와 손때로 반질반질해진 표지에 사파이어 눈과 용맹한 칼에 박혀 있는 루비는 이상하게 오랫동안 책꽂이에 꽂히지 않았다. 내가 자주 들쳐봐서는 아닐 것 같은데, 그렇게 여기저기 놓여 있던 기억이 있다.
어쨌든 오늘도 출근을 해야 하는데, 아이는 한 권만 같이 읽자고 들고 왔다. 우리는 같이 책 읽는 걸 사랑한다. 나는 아이의 모든 책이 재미있고, 아이가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우리 위에 아늑하고 동그란 반원구가 무지갯빛으로 반짝이는 것 같다. 그래서 아무리 다급한 출근 전 아침이어도 나는 아이와 함께 나란히 앉아 책 읽는 게 좋다. 너스레를 이만큼 널어놔도 된다고 허락해준다면, 나는 아이와 책 읽는 걸 사랑한다.
그런데 오늘 들고 온 책은 <행복한 왕자>였다. 커다랗고 반들거리는, 한솔교육에서 2016년에 출간된 책이었지만, 그 책 표지는 여전히 사파이어 눈이 있었다. 곧 부리에 콕콕 찔려서 빠져버릴 아름다운 눈. 곧 꽁꽁 얼어 버려질 심장. 아이한테 너무 슬퍼서 안 보고 싶다고 먼저 의사를 밝혔지만, 손을 꼭 잡고 읽는 것으로 합의안을 찾았다.
한솔교육 책은 항상 책 마지막에 전혀 무관한 위인의 사진과 그의 일생일대를 넣고, 독서교육을 할 수 있는 질문을 넣는다. 이 질문 역시 앞의 위인과도 이어지지 않고, 책 내용과도 무관한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서로 다른 그림 찾기 같은 것.
내용이나 문장은 8살, 9살 그때 나에게 처럼 구질구질했지만, 잡고 있는 작고 따뜻한 손 때문에 슬픔이 더 컸다. 아침에는 독서 교육장을 그냥 넘기는 편이지만, 이 구질구질함과 슬픔을 씻어내려 이번에는 더 명랑한 억지 목소리로 독서 교육장의 질문을 읽었다.
하느님이 천사에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2가지를 가져오라고 하자, 천사는 쓰레기 더미 속에 납덩이 심장과 얼어붙은 제비의 시체를 가지고 왔어요.
여러분에게 가장 소중한 2가지는 무엇인가요?
역시나 앞뒤 없고, 의미 없는 질문이다.
“도은이는 가장 소중한 2개를 고르라면 뭘 고를 거야?”
“음,... 모르겠어.."
이제 출근이다!
“엄마는?”
“응? 나?.. 나는 …"
사실 나도 모르겠다. 어린 왕자의 납덩이 심장이나, 얼어붙은 시체를 가지고 가기에 나는 아직 그것들이 그렇게 아름다운지 모르겠는데.
“엄마는 나잖아!”
명쾌하게 아이의 쨍그랑 목소리가 귀를 뚫고, 작은 몸뚱이가 금세 내 무릎 안으로 쏙 들어왔다. 단 1초의 의심도 허용하지 않는 이 단단함. 내가 주는 사랑이 이렇게 컸던 걸까. 아이는 1초도 망설이지 않았지만, 나는 1초의 틈이라도 생길까 봐 급하게 아이를 와락 껴안았다.
“당연하지! 우리 사랑둥이가 알았구나! 역시,.! 사랑둥이야!”
똑똑해 잘했어 같은 말로 아이의 기분을 한껏 올려서 도망치려다가, 그런 말을 자주 하는 건 위험한 일이라는 머릿속 육아사전이 급하게 제어를 걸었다. 그러나 결국은 동음이의어가 되어버릴 ‘사랑둥이’로 입을 막았다.
우리의 사랑이 이렇게 단단한 게, 부모의 사랑일까. 흔히들 이야기하는 내리사랑일까.
아이를 낳지 않았을 때, 가까운 친구들과 별 관심도 없던 출산이나 육아 이야기를 하다 결국 가닿는 마지막 질문은 내가 과연 이 아이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을까였다. 조건 없는 사랑. 절대 결단코 변하지 않을 부모의 사랑 같은 게 내 안에 있을까. 단지 내 배 안에 있다는 이유 만으로 내가 그런 사랑이 갑자기 불현듯 마음에서 불쑥 튀어나올 수 있을까.
아이를 가졌는지 모른다는 확신에 찬 의심이 처음 들어섰던 밤, 나는 포르투 밤거리를 혼자 걷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밤거리를 혼자 걸으며 이런 내 마음을 솔직하게 고백했다. 가지고 있는 긴 두려움을 주절거리며 첫마디였는지 마지막 한마디였는지 소리 내어 이야기했던 순간이 또렷이 남아있다.
‘나도 잘 몰라. 그러니까 네가 하자는 대로 할게.’
네가 하자는 대로 할게. 나는 너를 낳아도 아무것도 모를 나일 게 너무나 분명한데, 그럼에도 네가 와준다면 내가 하나는 약속할 수 있어 내가 아무것도 모르면서 너에게 뭐든 내 말이 맞으니 내 뜻대로 하자고 하지 않을게. 기다리면서 네가 하자는 대로 할게.
내 품에 안긴 너를 꼭 안으며, 부모의 사랑을 줄 수 있을까 같은 건 아무 의미 없는 질문이란 생각이 들었어.
문득 우리의 사랑도 나는 너를 따르는 게 아닌가 싶어. 내 육아의 모든 시간이 너를 지켜보고 그저 쫓아가던 시간이었던 것처럼 결국 우리의 이 사랑도, 네가 만든 커다란 세상을 내가 그저 따라가고 있는 게 아닐까.
사랑해. 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