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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Dec 16. 2023

이해할 수 없었던 30년 전 자장면 한 그릇

국민학교를 졸업할 무렵의 일이다. 나는 한 번도 우리 집이 가난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내가 국민학교를 들어가기 전 부모님은 몇 번의 이사 끝에 "우리 집"을 장만하셨고, 공무원이신 아버지의 월급은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다들 그렇게 사는 거라고 생각했다. 때로는 메이커 운동화며, 옷을 입고 오는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지만, 갖고 싶어 어쩔 줄 몰라하거나, 속앓이를 하거나 하지도 않았다. 모든 일들이 이해 못 할 것은 아니었다. 


단 한 가지 지금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 하나 있다. 


30년 전 쯤 나는 국민학교를 졸업했다. 아니 졸업할 때는 초등학교라고 명칭이 바뀌던 때였다. 회사를 다니시는 아버지는 오지 못하셨다. 어머니는 꽃다발을 들고 오셨다. 곱게 차려입으셨다. 머리에 드라이도 하셨다. 어머니가 예뻤다. 친구들은 졸업식이라 가족 들과 함께 외식을 한다 자랑했다. 나는 오늘 점심은 무엇을 먹을까 궁금했다. 평소 외식을 거의 해보지 않는 우리 집인데 오늘은 외식을 할까? 궁금했다. 


외식은 없었다. 졸업식이 끝나고 어머니와 나는 집으로 왔다. 그리고 나에게 3,000원쯤 쥐어 주시고 자장면을 먹고 오라고 하셨다. 우리 집은 정말 가난했던 걸까? 아이에게 혼자 자장면을 먹고 오라고 하실 만큼 살림이 힘들었던 걸까? 왜 혼자 먹으러 가라 하셨는지 왜 함께 가지 않으셨는지 묻지 않았다. 자장면을 먹는다는 기대감에 그저 걸음이 빨라질 뿐이었다. 


동네 중국집에서 자장면 한 그릇을 주문하고는 탁자 위에 가지런히 젓가락을 두었다. 그 날이 졸업식이어서 그랬을까? 중국집의 전화는 쉴새 없이 울렸고, 배달통은 하루종일 들락날락 바빴다. 13살 꼬마의 자장면 한 그릇은 기약이 없었다. 물을 한 컵 더 마시고, 주방입구를 쳐다보고, 지나가는 자장면 냄새에 꼬르륵 거리를 소리를 들으며 달콤한 자장면을 기다렸다. 그래도 나의 자장면은 나오지 않았다.


삼사십 분쯤 흘렀을까. 도저히 기다릴 수 없어 카운터로 갔다. 

"저... 자장면 한 그릇을.. 시켰는데요..."

"아! 그래 자장면~ 그러네 여기 홀에 자장면 한 그릇~~"

여자 주인분은 꼬맹이의 자장면은 잊고 있었다. 걸려오는 전화에 끊임없는 배달에 아마도 정신이 없으셨겠지. 그러니 주방에 나의 자장면을 이야기 하지 않으신 거였다. 전달하지 않은 탓에 주방에는 주문이 들어갈 일 없었고, 내 자장면은 나올 일이 없었다. 진작에 말을 했어야 했었다. 


곧 자장면은 나왔고, 생각보다 달콤했다. 점심시간을 넘겨 먹은 자장면이라서일까 이것만 먹고 살라 해도 살 수 있겠다 싶었다. 기다린 시간에 비해 자장면을 먹는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입술에 자장이 묻는지도 모른 체 순식간에 자장면은 아이의 뱃속으로 사라졌다. 


자장면을 다 먹고, 허기가 사라진 배를 두드리며 집으로 오는 길에서야 왜 어머니는 함께 오시지 않았을까? 왜 나만 혼자 자장면을 먹고 오라 하셨을까? 우리 집은 얼마나 가난했던 것일까?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 에피소드를 어머니께 말씀드리면, 잘 기억하지 못하신다. 어렴풋 그랬었다고 알고는 계시는데 어떤 이유로 아이 혼자 먹고 오라고 하셨는지 모르겠다고 하신다. 분명 우리 집은 그 정도로 가난하지는 않았다. 자장면 한 그릇을 나눠 먹어야 할 정도로 돈이 없지 않았는데 말이다. 


아마 그것 때문이었을 것 같다. 소아 당뇨가 생긴 동생. 간이 심심한 음식들만 먹었던 우리 집. 외식을 못했던 이유. 아이의 졸업식이라 맛있는 음식을 먹이고도 싶으셨겠지만 당뇨가 있는 동생은 대부분의 음식에 들어간 당분을 피하기 바빴다. 두 아이에게 자장면을 먹일 수도 없고, 큰아이와 자장면을 먹으러 가면 더 어린 막내를 집에 혼자 둘 수도 없고, 그렇게 내리신 결론이 아닐까? 7살 때부터 시내버스를 타고 유치원을 다녔던 아이라 동네 중국집 자장면쯤이야 혼자서도 잘 먹고 올 테지라고 믿으셨던 게 아닐까? 


어머니는 한 그릇의 자장면이 왜 이리 늦게 나왔는지 알지 못하셨다. 혼자서 기다린 아이의 마음도 알지 못하셨다. 그저 그렇게 먹고도 기분좋게 돌아온 아이를 반기셨다. 아이는 어머니가 왜 함께 가지 않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래도 졸업식이라 자장면을 먹을 수가 있어서 행복했다. 


지금 두 마음을 모두 알고 있는 40대의 내가 되어서야 참 먹먹한 상황이었음을 알았다. 당신 우리들에겐 행복한 추억이었는데. 그 추억 아래 깔려있는 사실들이 너무 가슴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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