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브런치를 진심으로 애정하는 구나.

색칠공부책을 대하는 마음과 맞닿은

by 안녕

몇 주 동안 글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적어 놓은 글감은 많은데 그걸 정리하고 다듬을 시간이 없어서다.


일과가 끝난 밤 10시 이후부터 글을 써도 되지만, 혹은 새벽에 일어나 글을 써도 되지만 몇 달간 그렇게 무리를 하다 지난 4월 말에 된통 아프고 나서는 선뜻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렇게 3주가 흘렀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나서, 매주 1편씩 꾸준히 글을 올리겠노라 다짐했다. 매주 1편씩 글을 올리면 나도 언젠간 책 한 권 내는 작가가 될 수 있겠지, 하면서 부푼 꿈에 행복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계획대로라면 주말에 아기 낮잠 시간에 글을 쓰고 올리면 되는데 그게 쉽지 않았다. 31개월 된 녀석은 체력이 남달라서 방방 거리며 노는데 하루 종일 같이 놀아주다 보면 낮잠 시간에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나도 자고 싶다는 생각만 든다.


그래도 억울한 마음에 '나를 위한 시간'을 얻기 위해 몇 번 무리해서 글을 쓴 날은 도리어 애한테 짜증을 내게 되어,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글'보다는 '쉼'을 택하게 됐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글을 올린 4월 26일 이후, 벌써 대략 3주가 지났다. 내일은 올려야지, 주말에 올려야지, 다음 주에 써야지, 하는 생각이 쌓여 내 브런치 계정엔 20개 언저리의 묵은 글들만 쌓여있는 처지가 되었다.



불안해졌다.


애초에 '작가'가 되고 싶어 스무 살 무렵부터 얼마나 많은 플랫폼에 가입하고 글을 써왔는지 모른다. 네이버, 다음, 티스토리, 싸이월드 등등 다양한 플랫폼에 글을 써왔지만, 그 어느 것도 꾸준히 유지하지 못하고 폐기한 전적이 있기에 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모아놓은 글감을 얼른 정리해서 한 편이라도 올려야지.'라는 마음으로 글을 적어보는데, 짜낼수록 오히려 글이 나오지 않았다. 머릿속으론 생각이 많은데 정리가 되지 않았다. 막혀버린 케첩통처럼, 입구를 닦지 않아 굳어버린 올리고당 통처럼 꽉 막혀 버린 것이다. 화면에 커서가 깜빡거리는데 괜히 아무것도 쓸 수가 없었다. 하얀 도화지에 선뜻 선을 그을 수 없는 마음같이.


오늘은 꼭 써야지, 써서 글을 남겨야지 마음을 먹고 출근길 버스 안에서 에버노트를 열어 글을 써 보았다. 그게 정말 당장 오늘(목요일)의 일이다.

나는 왜 글을 쓰지 못하는가, 나는 왜 이렇게 게으른 것인가, 현실에 안주하고 글쓰겠다는 목표는 옅어진 것인가, 에버노트에 끄적끄적 하소연을 적어 내려 가다 문득, 내 마음속에 깃든 진짜 속마음을 마주했다.




아주 어릴 적의 일이다. 학교에 다니기 전이니 대략 7살 때 즈음이었던 것 같은데,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기억이 있다.


내가 아주 좋아했던 색칠공부책이 있었다. 100원짜리로 책은 얇았지만, 예쁜 그림들이 많아 마음에 꼭 들었다. 처음에 한 권, 두 권 사서 모으기 시작한 게 '수집'이 되어 엄마가 돈을 주면 주는 대로 같은 색칠공부 책만 수십 권을 사 왔다. 나중엔 엄마에게 혼날까 두려워, 몰래 숨겨가지고 들어와 나의 서랍장에 쌓아두었다. 그렇게 좋아한 색칠공부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난 한 장도 색칠하지 않았다. 흐릿한 기억에도 30~40권은 넘는 색칠공부 책을 쌓아만 두었던 것이다.


하지만 마음속에 깃든 감정은 '죄책감'보다는 '뿌듯함'이자 '만족감'이 컸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볼 수 있을 때 느끼는 그 기분. 혹여나 함부로 색칠해버려서 예쁜 그림이 망가질까 두려워 애지중지하는 그 마음. 그 마음이 수십 년이 지나 어른이 된 내 마음 언저리에 남아있다.


내가 아끼는 것을 오래도록 보고 싶은 마음,

내가 좋아하는 대상에게는 오히려 쉽게 뭔가를 하지 못하는 마음,

정말 믿고 의지하는 친구에게는 괜히 내 모습을 다 보여주면 친구가 떠날까 두려워하는 마음,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누구의 발자국도 남지 않은 길은 선뜻 지나가기 어려운 마음.


그리고 불현듯, 브런치를 향한 내 마음이 그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나는 정말 브런치를 진심으로 애정 하는구나.

내가 글을 쓰는 이 행위를, 사실은 본 직업의 '취미'쯤으로 여기는 게 아니라, 정말 잘하고 싶은 거구나.

그래서 많은 이야깃거리를 적어내어 내보내지 못하고,

아끼고 아꼈다가, 다듬고 다듬다가, 고르고 골랐다가 멋들어지게 짜잔, 하고 싶은가보구나.

그도 안될 것 같으면 그냥 바라만 보아도 즐겁다고, 이 정도면 만족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구나. 하고 말이다.


그러면 모든 것이 이해가 간다. 사실 시간이 나도, 여유가 생겨도, 글을 적지 않았다.

에버노트에 쌓인 글감은 많게는 하루에 한, 두 개씩 수십 개인데, 정작 거의 한 달 가까이 아무런 글도 업로드하지 못한 내 속 마음엔 어린 시절의 '색칠공부'를 대하는 내 마음이, 내 브런치를 망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숨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모든 사물이 그렇듯, 사람이 그렇듯, 관계가 그렇듯 다가가지 않고 손 내밀지 않으면 의미가 옅어지기 마련이다.

아주아주 오래된 골동품이 의미 있는 것은 그것을 소유했던 사람들의 역사가 곳곳에 새겨있기 때문이고,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들의 말이 때로 주옥같이 들리는 것은 어법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그 안에 삶의 경험이 켜켜이 쌓여있기 때문이고, 오래된 나무의 우거진 가지와 잎사귀가 우리에게 커다란 그늘을 만들어주는 것은 굵은 기둥 속에 숨어있는 나이테에 담긴 세월 덕분이리라.


그러니 나도, 나의 브런치를 조금은 '마구' 대해야겠다.

내가 쓴 글이 완벽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겠다. 가끔은 어설픈 글을 올려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여유를 가져야겠다. 내 브런치는 나와 함께 같이 성장하는 공간이어야 함을, 그래서 이 곳이 '업무'의 공간이 아니라 '힐링'의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나 스스로가 조금은 편해져야겠다. 내 글이 서툴러도, 가끔은 말도 안 되는 구성의 글을 올려도 괜찮다고 생각해야겠다. 설령 일부 부족하더라도, 아니 전체가 미흡하더라도 괜찮다고 마음먹어야겠다. 꾸준히 버텨온, 꾸준히 담아온 흔적들은 쌓여서 기록이 되고, 추억이 되어 나란 사람의 역사로 완성될 테니까.




7살의 내가 모았던 색칠 공부책은 이사를 하면서 모두 사라졌다.

만약 그때 내가 그 색칠 공부를 모으는데 그치지 않고 그려보고, 색칠해 보았다면 어땠을까?

소중한 대상을 간직하면서 느끼는 마음과 다른 마음을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난 지금의 모습과 달라졌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지금 마주하는 브런치는, 색칠공부책처럼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무 좋아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애정 속에 두려움을 느끼며 망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출근길에 생각하고, 퇴근길에 마무리한 이 글이 그 시작이었으면 좋겠다.




추신 : '그게 오늘의 일'이었다는 글의 시점이 '어제'가 되어버렸다. 더 이상 망설이다간 '몇 주 전'이 될까 두려워 발행한다. 어릴 적 모았던 색칠공부 첫 페이지를 열어, 조심스레 색을 칠하는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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