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법적 '멍 때리기' 시간이 필요해

쓸데없는 일을 마음껏 할 수 있게

by 안녕

4월 30일 금요일 5교시로 기억한다.


가뜩이나 학교에 나온 것이 싫은데, 금요일 5교시에, '국어'라니. 최악의 최악.


갖가지 아우성이 들려왔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에 언제 등교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한 시간이 소중하다. 당장 다음번 등교가 언제일지 모른다. 나왔을 때, 하나라도 더 가르치고, 설명해야 한다.


"쉬긴 무슨~~ 우리 오늘 나눠 줄 프린트 많아."

"아... 쌤 ㅠ.ㅠ 진짜 집중 안돼요~~~"

"저희 이번 주 6시간이나 들었잖아요. 한 시간 쉬어요."

"맨날 여유로운 수업 한다면서 정말 힘들고 과제 많잖아요!"


여러 목소리 중에 날 선 목소리 하나가 귀에 꽂힌다. 아마 그동안 내게 쌓인 서운한 감정이 순간 튀어나온 것이리라. 예전 같았으면 그 말에 꽂혀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가 있느냐. 선생님이 언제 그랬느냐. 예의가 없다.'라고 한 소리 하고 바로 수업을 나갔겠지만, 지금은 그 정도 말은 부드럽게 넘길 수 있는 경지에는 이르렀다.


"그래~ 내가 수업이 좀 힘들긴 하지. 그런데 너희들 빡세도 안 듣고, 안 빡세도 안 듣잖아~~ 그러니까 자... 책 펴!"


라고 응수하니, 입술이 댓 발 튀어나온다. 웅성웅성. 미적미적. 뜨뜻미지근한 반응으로 하나, 둘, 책을 꺼낸다. 그 속도가 어찌나 느린지 거북이 같다. 마지못해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하고 있지만, 마음속엔 거대한 저항이 눈에 보인다. 저들끼리 수군수군 거리며 날 흘끗흘끗 쳐다본다. 언제나 그렇다. 수업을 하지 않기 위한 공동의 목표가 생기면, 단합이 안되던 반도 단합하며 으쌰 으쌰 하는데, 오늘 난 그들의 '공동의 적'인 셈이다.


겨우 분위기를 정돈했다. 계속 구시렁거리는 녀석들에겐 적당히 눈빛을 보내면서, 오늘 수업을 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이제 프린트만 나눠주면, 수업을 나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멋있게 프린트를 4장씩 나누어주며, 선생님이 이걸 너희들을 위해 준비했다, 이것만 보면 나중에 시험공부에 도움이 된다는 말을 하며 분위기를 잡으면 되는 상황.


그런데 아뿔싸. 프린트 중 몇 장이 보이지 않았다. 프린트가 없어 당황하는 날 본 아이들은 다시 술렁이기 시작했다. 야, 너 프린트 이거 받았어? 난 없는데? 밑에 봐봐 번호가 있잖아. 저들끼리 수군거리는 소리가 귓속에 쏙쏙 박혔다. 가뜩이나 수업하기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좋은 구실이 될 터.


"자. 조용. 얼른 프린트 가지고 올 테니까 조용히 있어! 교실 문 다 열어 놓고 간다! 떠드는 사람 없어야 해!"


으름장을 놓고 교무실로 향했다. 벌써 수업은 10분 이상 까먹은 상태.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 꼭 오늘 이걸 해야만 한다. 그래야 모든 진도가 완벽히 맞는다. 마음이 급했다. 넘어질 듯 말 듯 빠른 걸음으로 뛰다 걷다를 반복하며 교무실에 도착. 미리 준비해둔 프린트를 들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정말 순간, 거짓말처럼,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거, 꼭 해야 하는 거 맞아?


사실 지금 아프다. 전날부터 아무것도 먹질 못했고, 먹으면 다 토하는 바람에 변기를 붙잡고 살았으며, 약 기운에 취해 잠들었던 게 어제다. 오늘은 또 어떤가, 애들보다도 더 쉬고 싶은 건, 바로 나 자신 아닌가. 코로나 때문에 몸이 아프면 2~3일은 꼭 집에서 쉬라고 하는데, 나는 왜 지금 여기에 이렇게 나와서 애들도, 나도 힘들게 하나, 이거, 꼭 해야 하는 거 맞나?


그러자, 해야 할 이유보다 하지 말아야 할 합당한 이유가 무작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꼭 '오늘' 해야 할 필요는 없다. 오늘이 안 되면 내일 해도 되고, 내일이 안 되면 모레 해도 된다. 사실 시험 기간 전 까지만 마무리해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컨디션 안 좋은 상태에서 억지로 수업을 한다면, 결국 나도 힘들고 듣는 아이들도 힘들고. 그러면 결국 둘 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 집중은 안되고, 이득이 하나도 없지 않나? 반으로 한 걸음씩 걸어갈 때마다 '꼭 해야 하나?' 싶은 마음이 '하지 말자'로 바뀌었다. 그리고 교실 앞에 다다랐다. 심호흡 한 번 하고, 말을 시작했다.


"얘들아. 쌤이 프린트를 가지고 오면서 생각해봤는데..."


꼴깍. 아이들이 숨죽이며 나에게 집중한다.


"생각해보니까 나라에서도 힘들고 아프면 쉬라고 하는데, 우리 지금 다들 힘들고 지쳤잖아. 그럼 쉬는 게 맞지 않을까?"


긴장했던 얼굴이 풀어지며 미소가 비치는 아이들.


"게다가 6시간이 뭐야. 6시간이! 시간표가 잘 못 했네!"


키득키득. 웃는 아이들. 그 와중에 수학 좋다고 '드립'을 치는 아이들까지 생기고.


"그러니까, 오늘은 그냥 우리 쉬자. 아무것도 하지 말자고! 자 5초 센다. 5초 동안 국어와 관련된 모든 것들! 집어넣기!!!! 안 넣으면 난 그냥 수업한다!!"


그러자, 빛보다 빠른 속도로 책상 위가 깨끗해졌다.


그래, 쉬자. 나 아플 때 누가 뭐 하라고 하면 얼마나 짜증이 나는지 아니까, 가끔은 이렇게 쉬는 시간이 있어도 좋은 거니까,라고 생각하며 아이들에게 자유시간을 주었다. 몇몇은 노트를 꺼내 그림을 그리고, 몇몇은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와 수신호를 하며 수다를 떨고, 몇몇은 부족한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5분 지났을까. 가만히 있기 좀이 쑤신 아이들 중 한 명이 내게 재밌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요청해 왔다.


고객의 요청을 무시할 수 없는 나는, 내가 경험했던 재밌는 썰들을 풀어, 아이들과 1시간 진짜 재밌게 놀았다. 별다른 걸 하진 않았지만 오랜만에 아이들의 편안한 눈빛을 볼 수 있었다. 코로나로 원격수업이 병행되기 전에 보았던, 짓궂고, 장난기 넘치며, 쑥스럽고, 부끄러워했던, 아이들의 눈빛들.


교사는 수업으로 아이들을 만나야 한다고 했지만, 난 그때 쓸데없는 시간을 보내며 그 반 아이들과 조금은 가까워졌다(고 믿는다).




몇 달 전 어느 책에선가 그런 구절을 본 적이 있다.


'쓸데없는 일을 할 때, 사람들은 가장 행복함을 느낀다'라고. 그래서 필자는 가끔 카페에 가서 일과는 관련이 없는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쓴다고 했다. 잉여로운 시간을 진심으로 잉여롭게 보내는 것이 얼마나 만족감을 주는지 느꼈다면서.


생각해보니 그렇다. 그림 그리기, 노래 듣기, 글쓰기, 게임하기, 그리고 수다 떨기, 산책하기 등등.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없는 일을 했을 때, 머리는 더 팽팽 돌아가고, 집중도 잘 되며, 그러다 보면 마음속이 뭉글뭉글 에너지가 샘솟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우리 딸을 봐도 그렇다. 아직 4살인 녀석이 하루 종일 하는 것이라곤 색칠공부(색칠은 왜 공부여야 하는가? 요새는 놀이라고 하나??)와, 퍼즐 맞추기, 꽤 많이 핑크퐁과 콩순이와 키키 묘묘 보기(그래도 엄빠와 함께 봅니다^^;), 블록 쌓고 무너뜨리기, 자전거 타기, 휴지 잘게 찢어서 눈처럼 흩뿌리기 같은, 아주 사소하고도 쓸데없는(?) 일뿐이다. 그럼에도 아이의 얼굴은 해맑고 신나 보인다.


하지만, 학교에 입학하는 순간 (혹은 그전부터) '해야 한다'는 '공부'를 시작하게 되는 순간부터, 삶에 재미가 사라진다. 학교 숙제, 학원 숙제가 먼저가 되고, 놀이터에서 놀기, 잠시 멍 때리기, 그림 그리기, 낙서하기와 같은 일들은 '쓸데없는' 일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잠시라도 다른 일을 할라치면, 어떻게 된 게 어른들은 귀신같이 알아채서 이렇게 말한다.


"너는, 어떻게 된 게 쓸데없는 데에만 관심이 많니?"


그런데 생각해보면, 정말 쓸데없는 일이라는 게 있나 싶다. 쓸데없는 일 할 시간에 한 글자라도 더 공부하라고 말하는 어른들도, 오늘 진도를 다 나가야 된다고,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잔소리하는 나도, 사실은 안팎에서 치이면 집에서는 멍하니 tv를 보거나 게임을 하지 않나. 그렇게 조금은 쓸데없는 일을 해야만, 아이랑 놀아줄 여유도 생기고, 다른 일을 할 준비도 되지 않냔 말이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는 '쓸데없는 일'을 제일 잘하면서, 사실은 제일 좋아하면서 상대방에게는 '쓸데 있는 일'만 하라고 서로서로 부담만 주고 있는 것 같다.




항간에 '멍 때리기'라는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멍 때리다'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있다.'는 뜻.


바쁘고 바쁜, 그래서 마음도 몸도 지치고 만사가 귀찮아지는 번 아웃까지도 가게 되는 이 사회에서 우리는 '멍 때리'는 자유가 필요하다. '쓸데없는 일'을 '잉여롭게' 하면서 '멍 때리는' 시간이 확보되어야 한다. 그래야 그 순간 속에서 자신의 마음도 들여다보고, 하고 싶은 것도 분명히 찾아보고, 예술적 영감도 얻어볼 수 있지 않을까. 아니, 아니다. 앞서 말한 것을 차치하고서도, 그런 시간이 있어야 진짜 몸과 마음을 쉴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난 합법적 멍 때리기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특히, 정해진 일상을 살아야만 하는 '학생'들의 정규 수업 시간에 '멍 교시'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1시간 (실제로 1시간도 안 되는 1시간)에 아이들이 쓸데없는 일을 잔뜩 해봤으면 좋겠다. 잉여로움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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