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고 버틴 4년, 이제는 멈춰!
자그마치 4년이다.
17년부터 21년까지. 중간에 휴직한 1년을 제외하곤 꼬박 4년, 4년을 채우고 있다.
처음엔 지하철, 버스로 편도 1시간 30분 남짓 걸리는 거리가 나쁘지 않았다. 자연을 품은 곳인 데다 아이들의 성품도 온순한 편이고, 공원도 많아 교통이 불편하다는 것쯤은 참을 수 있었다. 또, 임신, 출산 등을 배려해주는 관리자 덕분에 '임신 준비 중'임에도 담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분위기라는 것도 큰 장점이었기에 왕복 3시간까지도 걸리는 통근거리는, 감당할만한 리스크였다.
때문에 난, 2018년, 임신을 하고서도 한 번을 쉬지 않고 막달까지 왕복 3시간 거리를 대중교통으로 출근했다. 괜찮았다. 버틸만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너~~~ 무 힘들다.
휴직 중 이사를 간 바람에 집에서 나와 직장에 도착하면 편도로 꼬박 2시간 정도가 걸리는데 그마저도 셔틀버스를 타야 2시간이고, 퇴근할 때 오롯이 대중교통만 이용하면 2시간 30분으로 훌쩍 뛰어버렸다. 그러니까 왕복 4~5시간이 걸리는 셈.
처음엔 그래도 의욕이 넘쳤다.
'셔틀버스에서 책을 읽으면 되지!', '좋아하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되지!'라고.
하지만, 버스의 급발진 , 급정거 속에서 몇 번 시도하다가 멀미가 심해지자 포기했다. 더군다나 셔틀버스를 타려면 적어도 5시 30분에는 일어나야 하는데 5시 30분에 일어나서 씻고, 뭐라도 챙겨 먹고, 출근 준비를 하다 보면 '책'이라는 게 도통 생각이 날 수가 없다. 가끔 의욕적으로 종이책을 가져간 날엔, 퇴근길 무거워진 가방을 들며 '내가 다시 책을 가져오면 사람이 아니라'라고 생각한 적도 부지기수.
게다가, 난 지금 4살짜리 아기가 있는 상황. 2시간 30분 걸려 퇴근을 하면, 집엔 어린이집에서 갓 하원한 열정 만수르 딸이 있으니, 쉴 수가 없다. 부랴부랴 저녁 준비해주고, 씻기고, 내일 어린이집 준비물 준비하고, 치카치카 양치시키면, 금세 밤 10시. 재우러 들어갔다가 그냥 뻗어버린 게 벌써 2년 째다.
입에 혓바늘은 상시 대기 중이고, 편도선염, 그리고 가벼운 근육통은 언제나 달고 산다. 위경련은 말할 것도 없고, 만성 두통, 편두통에, 무기력감, 수면부족 등은 늘 주변에 맴돌고 있으며, 보건실 단골은 늘 맡아놓고 있다. 작년과 올해 맞은 수액 비용만 벌써 몇 십만 원은 들 정도.
출근을 하는 동시에 지쳐서 퇴근하고 싶은 마음은 언제나 굴뚝같고, 그나마 육아시간을 쓰며 2시 30분에 퇴근을 시작하면 집에 5시에 도착하니, 이건 육아시간을 거리에 다 버리고 있는 셈.
힘들어하는 나를 보고 주변에서 모두 운전을 하라고 권유하기에 운전연수도 받았었다. 올 초에 20시간을 받았는데, 공간지각 능력이 떨어지는 내게 '운전연수 20시간'은 턱없이 부족했고, 출근을 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서울 외곽순환도로'는 공포의 대상이었으며, 결정적으로 왕복 7,000원 가까이되는 톨게이트 비용은, 자꾸 '현실'적인 생각이 들게 했다.
'내가 조금만 더 버티면, (지하철 & 버스의 콜라보로 이루어지는 5시간 통근) 돈을 아낄 수 있는데...'
라는 생각에 차일피일 미루고 나니 벌써 5월이 되었다.
5월이 되어 햇빛은 따사롭고, 바람은 산들산들 불고, 세상은 빛이 나는데
내 몸은 또 아프다.
내 마음은 매일 불안하다.
일요일만 되면 '아... 내일 또 출근한다. 또, 5시간씩 어떻게 이동하지?'란 생각에 우울해진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에 알람도 없이 5시, 혹은 4시 30분에 눈을 떠 멀뚱멀뚱 누워있는 나를 느낄 때면 괜스레 슬퍼진다. 특히 남편과 하루 종일 어떤 대화도 하지 못하고 자기에 바쁜 일상을 반복할 때면 도대체 뭐 하고 있나 싶다.
그리고 오늘 아침,
어제도 변함없이 바쁘고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눈을 뜨니, 불현듯 이런 마음이 든다.
'이건 못 할 노릇이다. 이건 아니야!!!!'
'애 키우는 엄마가 주변의 도움 진짜 하나도 없이, 오로지 남편과 둘이서 애를 돌보면서, 이렇게 먼 곳에 출근하며 2년을 버틴 것만으로 대단한 거야!'
'내가 몸이 매일 아픈 건, 내가 약해서가 아니라, 내 직장이 너무 멀어서라고!'
사실 작년에 그렇게 고생하고도 올해 이동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지금 일하는 곳이 내게 많은 배려를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 힘들다는 담임도 제외해주고, 업무도 기존에 하던 것에 조금 추가된 것뿐, 힘든 것은 없다. 함께 일하는 부장님 및 동료들도 무척 따뜻하고 좋아서, 사실 근무지로서는 상위 1% 안에 든다고 자부한다. 때문에 이동을 고민하다가, 하지 않았다.
그런데, 몸이 자꾸 아파진다. 몸이 아프니까, 만사가 귀찮고 삶에 회의가 든다.
일을 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가족과 함께하는 삶을 위해서인데, 가족과는 정말 20분도 채 대화하지 못하고, 매일같이 잠들기 바쁘니. 이건 아니지 싶다. 홀로 아기를 보고 있는 남편도 얼마나 하루 종일 외로울까. 제대로 된 말 상대도 없는 상황에서 집에 온 아내와 얼마나 이야기하고 싶을까.
"괜찮아. 너 내일 출근해야 하니까 얼른 들어가서 자."
라고 말해서 정말 괜찮은 줄 알았는데. 내가 바쁘게 내 일상을 버티는 와중에, 남편도 우울감을 느끼고 있었다. 술을 마시는 횟수가 늘었고, 집에만 있는 날이 많아졌다. 활동적인 사람이 이제는 '괜찮아. 됐어. 나중에 하자'고 말한다. 코로나 때문에도 있지만, 내면의 열정이 사그라든 느낌.
나 휴직 때를 생각해보면, 나는 그때 얼마나 오매불망 남편을 기다렸던가. 오늘 하루, 딸아이가 어땠는지 이야기를 해야지, 그래서 아기 재우고 꼭 같이 치맥 타임이라도 해야지, 마음먹은 날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그런데 지금의 나를 보면, 그런 삶이 나올 수 없다. 너무 멀고 힘드니까 자기 바빠서 애를 재우러 들어가자마자 잠들어버리는 나를 2년 동안 지켜보던 남편의 우울증이 내게 깊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가 몸이 힘든 사이, 남편은 마음이 힘들었구나, 하고.
"나 너무 답답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어떡하지?"
건강하던 사람이었는데, 적어도 마음만은 단단한 사람이었는데 조금씩 무너지고 있는 것을 느끼니, 정말 아니지 싶다. 뭐든 일단 나부터, 가족부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깊이 자리 잡는다.
그래, 4년이면 정말 잘 버텼다.
2년은 3시간, 또 2년은 5시간씩 투자한 내 통근거리, 이제는 진짜 그만하고 싶다. 대신 그 시간을 많이 확보해서 가족과 함께 하자.
"하원 전에 우리 산책할래?" 라며, 조금씩 예전의 일상을 되찾고 싶다.
그러다 보면 지금 힘든 시간을 겪고 있는, 남편의 주름진 마음도 조금씩 펴지지 않을까?
그러다 보면, 다시 예전처럼, 편안해질 수 있지 않을까?
올 해만 잘 마무리하고, 내년엔 반드시 인근 직장으로 옮기겠다. 옮기고 말 것이다.
4년 간, 상할 대로 상한 내 몸 좀 추스르고, 2년 간 아기 돌보느라 지친 남편의 마음도 위로하고, 매일같이 엄마를 기다리는 딸 아이랑도 실컷 놀아주는 내년을 그리고 싶다. 그렇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