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단단한 마음 근육
나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이면, 한 동안 두통을 느끼며 괴로워하곤 한다. 그럴 때면, 어떤 것에 집중을 하지 못하고 계속 그 생각만 한다. 그 생각은 꽤나 불안정한 것이어서 생각 자체가 나를 괴롭게 만든다.
20년 간, 임상실험 결과 원인은 없으며, 해결방안은 '시간'이다. 흐르듯 시간과 감정을 흘러 보내면 어느 순간,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나를 괴롭히는 '두통'(정확히 두통은 아니지만, 두통이라 하겠다)이 사라지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 문제는, 이 모든 과정이 불규칙적이라는 것이다.
어릴 적엔 이런 증상을 느끼는 내가 정신이 이상한 것은 아닌가 싶어 심리상담센터를 다니며 각종 심리 검사를 해보고, 상담도 주기적으로 받았었다. 그런데 상담 결과는 대부분 '정상'.
10대 때에는 도통 통제가 되지 않는 나의 '두통'에 압도되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학교에 가서 앉아 있지만, 집중이 되지 않았고, 멍하니 앉아 있다가 오는 게 다반사였다. 집중하고 있는 듯 보였지만, 사실은 머릿속에 온갖 잡념이 가득한 상태로 3년을 보냈더니 스무 살이 되어 있었다. 20대가 되면 달라지겠지 싶었지만 부질없었다. 두통의 강도는 더 세지고, 불안의 농도도 짙어졌다.
괴로움에 휩싸여 극단적인 생각을 한 적이 많다.
이대로 내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다시 태어나고 싶다, 나는 왜 내 감정 하나 조절하지 못하나, 나는 미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면, 정말 사라지고 싶은 마음이 들 때면 문득 종이를 꺼내 가족들에게 편지를 쓰곤 했다. 그러다 펑펑 울면서 누구보다 가여운 나를 토닥였다.
그게, 지난 20년 간 나를 스스로 달래온 방법이었다.
그러다 불현듯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나의 '두통'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었다.
나 사실 되게 이상한 사람이야, 강박증 같기도 하고, 편집증 같기도 하고, 한 번도 편안하게 살아본 적이 없어, 진짜 힘들었는데, 지금도 힘든데, 이렇게 살고 있네, 하며 털어놓고 싶은 생각이 들자, 실행에 옮기고 싶어 졌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오랜 기간 나를 봐 온, 지금은 상담 심리를 공부하는 친구에게 지나가듯 말해 버렸다.
00아, 나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두통'이 있는데, 되게 이상해, 나 사실 강의실에서 맨날 앞자리에 앉아, 뒤에 앉으면 내 앞에 앉은 사람들이 다 신경 쓰여서 집중 자체가 안되거든. 그리고 어딜 가면 항상 나를 숨기려고 해, 그러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디질 못하거든. 나 진짜 웃기지? 지질하지 않냐? 다 큰 어른이 이러는 게.
털어놓으면 불안 마음이 들 줄 알았는데, 한 마디 한 마디 뱉어낼수록 조금은 개운해졌다. 내 안에서만 끓어오르던 용암 같은 마음이 조금은 식어가는 느낌.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을 느끼며 말을 마치는데, 친구의 입이 들썩거렸다.
"너, 정말 대단하다. 그 긴 세월을 버텨왔구나. 너 정말, 대단해. 네가 그렇게 버텨온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
충격이었다.
넌, 왜 그래? 진짜 이상하다, 너도 상담 같은 거 받아봐야 하는 거 아냐? 라든가, 나도 사실 이런 면이 되게 이상해 라든가, 이런 말이 나와야 했다. 그런데 친구의 대답은 예상과 달랐다.
대단하다, 버틴 네가 대단하다, 그런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라는 말이 깊은 울림이 되어 마음속에 콕, 박혔다. 나는 스스로 남들과 다른 이상한 증상에 20년 간 힘들어한 바보 같은 사람이라고 자책했는데, 사실은 나, 되게 대단한 사람이었던 건가?
친구는 덧붙여 말했다.
“너한테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없는) 버티는 힘이 있어. 스스로 칭찬해 줘.”
버티는 힘.
하기 싫어도 끝까지 하는 힘.
힘들어도 묵묵히 견디는 힘.
그 힘이 나를 유지해온 거라고 덕분에 네가 10대를 지나 20대를 지나, 지금까지 온 것이라고, 친구는 말해 주었다.
돌이켜보니 그랬다. 두통 때문에 지끈지끈 아파도, 그 자리를 벗어난 적은 없다, 어떻게든 극복하려고 노력했지, 모든 걸 내려놓은 적은 없다, 책을, 영화를, 그리고 글을 써 내 안에서 해결하려고 했다. 그러니까, 늘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나를 지키기 위해.
그렇게 생각하니 못난 내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지금까지 살아온 내가 기특하게 느껴진 것이다.
그리고 그날, 내 지질함을 처음 내보인 그날, 처음으로 나 스스로를 칭찬해 주었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더라. 친구의 말에 모든 고통은 사라지고 평온함이 남을 줄 알았지만 여전히 난 알 수 없는 두통이 찾아와 고생하고 있다. 평온한 날보다 고통스러운 날이 더 많을 때도 많다.
그리고 고통스러울 때면, 솔직히 이대로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할 때도 있다. 그래도 예전보다 조금 나은 것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과, 나에게는 누구보다도 단단한 ‘버티는 힘’이 있다는 것.
지금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머리가 아프다.
벌써 10일 가까이 두통에 시달리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다시 ‘잠식’될까 두려워 쓴다.
버티자, 견디자,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