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보고 싶을 땐 설거지를 해

by 안녕

택배 상자를 열어보았다. 갖가지 잡동사니 사이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보인다. 비닐봉지에 담아 보낸 수세미 석 장. 멀리 사는 손녀에게 보낸, 할머니의 선물이다. 알록달록 뜨개실로 만든 수세미가 정겹다. 수세미를 꺼내 서랍장에 넣으며 할머니와의 추억을 되짚어본다.




나의 외할머니는 생활력이 강한 분이었다. 할머니는 어려운 형편에서도 5남매를 번듯이 키워내셨고,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하며 모은 돈으로 집도 사고, 땅도 사며 조금씩 재산을 불려 나가기까지 했다. 가끔 집에 놀러 가면 성실함이 몸에 밴 할머니는 “가만히 있으면 뭘 하니, 조금이라도 움직여야지”라며 항상 무언가를 하고 계셨다.


할머니는 또래 할머니들에 비해 이해가 빠른 편이셨다. 젊은 애들이 쓰는 말도 곧잘 이해하셨는데 특히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쓰는 법을 알려드리고 며칠이 지나자 직접 내게 문자를 보내시곤 했다. 밥 먹었니, 문자가 갔니, 따위의 말들이 쌓인 문자 메시지함을 보는 재미가 꽤 쏠쏠해서 할머니의 문자를 은근히 기다리기도 했다. 그런 할머니는 내게 있어서 엄마보다도 더 완벽한, 멋진, 여자였다. 시대를 잘 만났다면 성공했을 신여성.


그런데 그런 할머니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10년 전쯤의 일이다. 집에서 공부를 하는데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할머니가 쓰러져서 병원에 입원해 있으니 한 번 가보라고. 직장에 있던 엄마는 갈 수가 없으니 하는 수 없이 백수인 내게 부탁을 해 온 것이다. 오십 대 즈음 협심증 판정을 받고 매일 같이 심장약을 챙겨 드시는 할머니가 다시 쓰러진 날, 병원에 누워 있는 할머니는 그 어느 때보다도 작아져 있었다. 공부하던 네가 여긴 어쩐 일이냐고 묻는 할머니의 손을 말없이 꼭 잡아주었다. 거칠거칠한, 검버섯이 잔뜩 올라온 할머니의 손등엔 주삿바늘이 꽂혀 있었다. 아픈 사람을 곁에서 지켜보는 건 얼마나 마음이 아픈 일인가. 어릴 적 대학병원에 수시로 입원하던 나를 지켜보던 할머니의 마음이 이랬을까. 가슴속에서 무언가 울컥, 하고 올라왔다. 이젠 할머니 곁에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구나, 할머니 곁에 있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하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취직을 하고 타지에서 자취를 하게 되면서 할머니를 보는 날은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내 삶은 늘 새롭게 변하고 있는데, 할머니의 삶은 어떤 시절에 멈춰있었다. 재미가 없었다. 할머니네 한 번 들렀다 가라는 엄마의 말은 귓등으로 듣고 놀러 다니기 바빴다. 가끔가다 엄마에게 할머니 소식을 전해 들으며 ‘다음에 갈게. 피곤해.’라며 만남을 하루하루 미루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할머니와 통화를 한 적이 있다. 그날따라 같은 말을 여러 번 해도 할머니의 답이 시원치 않았다.


“할머니, 내 말 들려?”

“응?”

“할머니, 내 말 들리냐고.”

“아유. 몰라, 이젠 늙어서 뭐라고 하는지 안 들린다.”


전화를 끊고 당장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할머니가 이상해,라고 하자 엄마는 내게 말했다.


"할머니가 이젠 정말 예전 같지 않아, 이젠 정말 큰 소리로 말하지 않으면 아예 못 들으셔. 그러니까 자주 연락이라도 드려."




세상 모든 것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피고 지기를 반복하고, 왔다가 가기를 반복한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진리이지만 그 걸 일상에서 깨닫고 살기란 쉽지 않다. 일 하느라 바빠서, 결혼 후엔 삶이 바빠서, 아기 태어나고는 육아에 치여서 마음의 순위에서 조금씩 밀리던 할머니는 어느새 많이 늙어있었다. 이리 와봐, 어디 나갈 땐 항상 깔끔하게 하고 나가야지, 라며 나를 챙겨주던 할머니는, 내 첫 자취방을 한 번 와보시곤 그래, 집 하나 잘 구했다, 이런 집에서 살아야지,라고 칭찬해주던 할머니는 어느새 어떤 말을 해도 들리지가 않는, 어린아이가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불효'하고 있는 손녀에게, 언제고 할머니는 그곳에 계실 거라는 믿음으로 살고 있는 손녀에게, 이제는 아흔이 되어버린 할머니가 마음을 먼저 보여왔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전화 한 통 대신에 비닐 한 봉지에 마음을 가득 담아 보내온 것이다.


수십 킬로미터를 건너온 할머니의 수세미를 보니 할머니와 함께 지냈던 유년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알록달록 뜨개실 수세미. 할머니 요새 누가 이런 수세미를 써, 근데 색깔은 예쁘네, 울 딸이 좋아하긴 해,라고 웃으며 장난치고 싶었지만 이제는 그 말조차 제대로 듣지 못할 할머니기에 꾹 참았다.


한 참을 바라보니, 할머니의 수세미가 내게 말을 거는 것 같다.


잘 살고 있니? 남편이 그렇게 살림을 잘 챙겨준다면서. 언내* 키우느라 힘들지. 그래, 나중에 친정 오면 한 번 들려. 그래. 끊어라.


당장에 쓰던 수세미를 버리고 할머니의 수세미를 꺼내서 그릇을 닦았다.


퐁퐁은 조금만 짜도 돼, 한 번 씻기고 두 번째에 물로 헹궈, 그리고 마지막엔 마른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 찬장에 넣어.


할머니의 말을 상상하며 설거지를 하고 있노라니 곁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주 사소한 것 하나에서도 그 사람을 느낄 수 있다니. 새삼 신비하다. 그렇다면 나도 할머니에게 날 느낄 수 있는 무언가를 보내고 싶다. 늦지 않았다. 이제라도, 정말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이 오기 전에 움직여야겠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뚜르르르.


할머니! 수세미 좋더라. 잘 닦여. 어디 아픈 덴 없지? 이번 추석 땐 꼭 갈게.



* 언내 : 어린애의 방원(강원,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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