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시간, 모두가 잠들어 주변엔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아. 나는 집 안의 모든 불을 꺼놓고 오로지 작은 스탠드 불빛 하나에 의지에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리며 타닥, 타닥 글을 쓰고 있지. 타 놓은 커피는 식은 지 오래, 벌써 한 시간째 플레이 중인 작업 플리는 휴대폰 배터리를 다 닳게 하는 중이야. 책상은 넓지만 절반은 쌓여있는 책들에게 양보한 지 오래야. 새벽 1시가 되어야만 생각이 정리되는 탓에 언제나 늦게 시작하는 작업 때문에 언제고 꾸벅꾸벅 졸긴 하지만 그 30분이 힘이 되어 나를 다시 일으키는 것 같아.
리갈패드엔 며칠 간 하려고 적어둔 일들이 한가득이지만, 아직 체크가 되지 않은 채 나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어. 저 멀리 마우스 뒤로 보이는 모니터엔 시간표, 비밀번호 따위가 어지러이 붙어있지. 물티슈는 왜 그 자리에 있는지 영문도 모른 채 놓여있는지 벌써 5일은 훌쩍 넘었어. 손디딜틈 없는 이곳을 엄마가 본다면 한숨을 쉬시며 말없이 물걸레를 가져왔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엄마는 이곳에 없고, 나는 철저히 혼자인 채로 있으니까.
어떤 꿈은 시간이 지날수록 너무 강력해서 마치 꼭 이루어져야 하는 주문 같은 때가 있어. 오래도록 장래희망칸은 '작가'이거나 '방송작가'이거나 '소설가'였었거든.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에 막연히 머릿속에서 그리던 꿈이 현실과 이어지지 못할 때의 좌절감은 이미 극복한 나이라고 생각했는데, 간절하게 바라던 것이 이뤄지지 않은 채 부유하는 삶은 때때로 깊은 상실감과 그리움을 주더라. 나에겐 글 쓰는 일, 작가가 되는 것이 그래.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달래기 위해 글을 썼고 그마저도 부족한 날엔 서점과 도서관을 찾았어. 조용한 그곳에서 나는 나와 같은 방향을 향해 달려가는 수많은 이야기꾼들의 마음이 담긴 책 속에 둘러싸여 묘한 편안함을 느꼈어. 그것은 흡사, 아주아주 푹신한 우리 집 리클라이너에 누워 곤히 잠이 드는 것 같은 기분이야. 모든 긴장을 내려놓게 만드는. 그런.
그곳에 가면 이유 없이 편안함을 느끼고 자연스레 지갑이 열려. 아주 젋었을 적, 한 번에 10만 원씩 책을 사던 습관은 현실을 살아가는 엄마가 되면서 많이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난, 서점엘 가면 무언가를 사고 싶은 마음에 휩싸여. 그리고 동시에 그곳에서 팬 사인회를 하는 모습을 상상하지. 안녕하세요,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감사합니다. 세 문장 안에 담길 수많은 서사를 상상하며 즐거워해.
하루는 기억하지 못할 만큼 뻔한 일들로 가득 차 있어. 어제 무엇을 먹었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조차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기억하지 못해. 문득 그런 순간들이 씁쓸해질 때마다 노트북을 켰고, 글을 썼어. 700개가 넘게 모인 글은 사실 살기 위한 몸부림이자 타는 목마름으로 뱉어낸 감정일 거야.
사방은 여전히 고요하고 이지러진 달은 지구 주변을 말없이 천천히 돌고 있는 지금,
나는 이렇게라도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면서 오늘의 나 아니 이제는 어제가 되어버린 순간의 나를 토닥여. 고생했고, 애썼다고, 앞으로는 어제보다는 조금은 나아질 거라고, 나를 달래준다고.
이제는 마무리할 시간이야.
내 글을 여기까지 읽은 너는 누구일까? 너는 오늘 어떤 하루를 보냈을까?
궁금하지만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느낄 수 없으니 상상에 맡기려고.
그럼, 깊은 밤 속에 너만의 평화를 찾길 바라.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