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아래 세자 저하

by 안녕


고즈넉한 궁에 가을이 찾아왔다.




귀를 찢을 듯한 매미소리가 잦아든 자리엔 은은히 울려 퍼지는 귀뚜라미 소리가 깊어가는 밤을 채워 가고 있었다. 깊어가는 가을 밤에 딱 알맞은 새파란 달빛이 후원 앞 정자에서 서책을 읽던 세자 현의 앞을 밝혀 주던 참이었다.




현은 창경궁의 후원을 사랑했다. 이른 저녁을 먹은 후에 시중 들던 모든 움직임을 물리고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거니는 그 시간을 특별히 아꼈다. 아무도 들일 수 없는 곳. 오직 왕실의 일원만이 드나들 수 없는 곳이라는 점은 이제 막 열여섯을 지나고 있는 현의 마음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딱히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연이어 이어지는 경연, 주상전하가 되어버린 후 어려워진 아버지와의 독대, 그리고 내명부의 장으로 많은 후궁을 아우르는 어머니와의 만남에서 얻은 두통과 어지러움을 해소하고 싶을 뿐이었다.




후원에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세자이므로, 세자여서, 장차 왕위를 물려받을 자리여서 갖춰야 하는 모든 것은 현의 마음을 옥죄어 왔다. 세자 저하, 그러시면 아니되옵니다, 왕실의 법도가 그러하옵니다, 하며 열마디씩 덧붙이는 이들이 없다는 자체로 위로가 되었다.




그곳은 그저 ‘현’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이따금씩 들리는 풀벌레 소리와 바람의 움직임에 따라 바스락거리는 이파리의 소리와, 현의 발걸음을 따라 슬몃슬몃 퍼지는 낙엽의 소리가 가득한 후원의 밤은, 현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곳이었다.




평생 궁 밖을 벗어나지 못한 삶이었다. 왕가의 자손. 대를 이어야 할 현에겐 방패가 되어줄 형님도 아우도 없었다. 궁 안에서 태어나 열여섯 해 동안 바깥 세상 한 번 나가보지 못한 현은, 늘 담장 너머의 세상이 궁금했다. 내관이 이야기해 주거나, 상궁이 알려주는 세상 말고. 서책에 나오는 뻔한 이야기 말고. 진짜 세상이 궁금했다. 그곳에선 평생 ‘세자 저하’로 불리던 삶을 벗어나 ‘현’으로 불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달빛이 적당히 비추는 곳에 위치한 작은 정자. 그곳이 오늘 현이 쉬어갈 곳이었다. 손에 들린 <시한부>는 최근 들어 읽기 시작한 저잣거리 소설책. 비밀리에 저잣거리의 글을 구해 읽는 것은 현의 소소한 일탈이었다. 어릴 적부터 현을 각별히 예뻐했던 수라간 대령숙수를 통해 들여온 저잣거리의 이야기는 어린 현의 상상력을 키워나가는 훌륭한 도구가 되었다. 왕이 될 것이라면, 이왕지사 백성들의 삶을 알아야 할 것 아니냐는 생각은 썩 괜찮은 변명이 되어 주었다.




구하기 어렵다며 몇 날 며칠을 뜸을 들이다 꼬깃꼬깃한 모양으로 겨우 가져다 준 <시한부>는 이전의 것들과는 사뭇 달랐다. 기껏해야 현보다 한두 살 어린 규방규수가 써내려간 한글 소설. 읽으면 읽을수록 이야기 속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소설 속 인물은 현과 비슷한 나이. 궁 밖에서 살아가는 십대의 삶이란 이토록 어렵고 슬프고 절절한 것인가, 문장 하나 어찌 여인이 이러한 글을 쓸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이 소설을 쓴 사람은 누구이며, 소설 속 내용은 참인가, 거짓인가, 현의 마음 속에서 피어난 질문은 이내 갈증이 되고 말았다.




무엇보다 현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군데 군데 도통 이해할 수 없는 표현들이었다. ‘필름카메라’, ‘반티’와 같은 말은 오랑캐의 그것 같았다. 조선 전기 최고의 업적을 찾으라면 단연코 ‘한글 창제’라고 말하던 현이었다. 왕족뿐 아니라 모든 양반이 한문을 최우선으로 여길 때에도 현은 장차 ‘한글’이 세상을 이끌어나갈 것임을 믿었다. 배우기 쉽고 음성학적으로도 미학적으로 으뜸인 한글. 한문을 깨치고 한글까지도 배워 몰래 몰래 한글로 이름을 쓰곤 했다. 이, 현.




모르는 글자는 없다 믿었다. 허나, <시한부>의 내용엔 생전 처음 보는 글자들이 자주 보였다. 한글은 맞는데 한글이 아니었다. 겨우겨우 읽어내려간 내용은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현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오랜 벗의 아픔, 그후에 남은 사람들이 견뎌내야 하는 슬픔과 기억, 꿈꾸지 못하는 미래, 따위의 이야기들이 조각조각 이어져 여린 감수성을 건드렸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현은 울고, 웃었다. 하필, 저자의 이름도 ‘윤.’




‘이 여인을 찾아 보고 싶다. 만나서 물어보고 싶다. 도대체, 어째서 이러한 글을.’

해갈되지 않은 마음이 들끓기 시작했다. 세자의 권한으로 저자를 찾아 볼까, 하는 생각을 해본 것도 사실이었다. 말 한 마디면 당장 내일 아침 눈 앞에 대령할 수 있으리라. 허나, 그것은 애끓는 독자의 마음이 아니라 권력자의 그것이었다. 진정한 ‘소통’을 위해선 정중해야하고, 사려 깊어야 한다. 그래야 여인을 만나, 물어볼 수 있으리라.




읽던 책을 덮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새 밤은 더욱 깊어 하늘엔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시간을 흘러 도착했을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잔잔한 바람의 힘에 한 잎, 두 잎 떨어진 노오란, 붉은 낙엽을 밟으며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경복궁의 경회루를 사랑했던 아버지는 창경궁에서도 경회루의 물길을 느끼고 싶어했다. 산책로를 따라 자연스럽게 만들어 놓은 냇물이 돌담을 스쳐 흘러가는 소리는 아버지가 현에게 준 선물과도 같았다.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들어간 발걸음의 끝에는 이제는 세상에 없는 누이와 놀던 누각이 있었다. 워낙 허물 없는 사이였다. 두 살 터울의 누이 윤. 밝고 맑은 성정은 거칠 것이 없었다. 현은 아들이었지만 딸 같았고, 윤은 딸이었지만 아들 같았다. 둘이 바꾸어 태어났으면 좋았겠다며 어른들은 입을 모아 말았다.




윤이 갑자기 세상을 떠날 것이라곤 아무도 상상조차 못했다. 고뿔로 시작한 윤의 증상은 폐렴으로, 폐렴은 패혈증으로 이어졌다. 손쓸 새도 없이 나빠진 윤은 세상의 마지막 순간에 현의 손을 잡으며 속삭였다.




오라버니, 우리 꼭. 만나. 꼭.




너무 슬프면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현은 그 때 알았다. 먹는 것도, 우는 것도 잃은 채 지내기를 몇 달. 조금씩 세상에서 윤의 흔적을 지우고 천천히 정리하던 와중에 <시한부>를 읽게 된 것이다. 삶과 죽음.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십대. 어쩌면 윤의 환생일지도. 어쩌면.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각별한 오누이였으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평생에 잊지 못할 이름, 윤.




누각의 사방엔 나무 기둥이 곧게 뻗어 있었다. 네 개의 나무 기둥 중 달빛을 정면으로 받는 가장 바깥 쪽에 있는 기둥. 그 곳엔 어릴 적 현과 윤의 낙서가 있을 터였다.




구름이 달빛을 가리자 사위가 어둑해졌다. 천천히 움직이는 구름의 뒷편엔 어스름 기울어진 달이 가만히 현을 비추고 있었다. 사방엔 안개가 자욱하고 간간히 들리던 귀뚜라미의 소리마저 자취를 감추었다. 어딘가 낯선 느낌에 현은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가만 있어 보자, 어디에 있더라. 이 즈음이었을텐데.




기둥의 안쪽을 살피던 현이 몸을 안쪽 깊숙이 숙였을 때였다. 달빛에 의지에 겨우 중심을 잡고 있던 현이 어둠에 놀라 그만 중심을 잃고 말았다. 잡고 있던 기둥을 놓치자 붉은 색 곤룡포를 입은 현이 기우뚱, 기울어지더니 그만 쿵, 소리와 함께 누각 안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찰칵!]




“야! 현! 눈 감지 마라. 진짜.”




낯익은 목소리가 현의 주변을 감쌌다. 간신히 중심을 잡고 일어선 이곳은 창경궁이 아니었다. 윤과 놀던 누각의 뒷편도 아니었다. 알 수 없는 각진 공간에 본적 없는 네모난 형태의 상이 가득했다. 주변은 아이들의 소음으로 가득찼으며 분홍색 옷과 짙은 곤색 옷을 입은 아이들은 현의 또래처럼 보였는데 부끄러움을 모르는지 무릎까지 살을 훤히 드러내고 있었다. 이게 다 무어냐, 자고로 양반가의 자제라면 늘 복식에 진중해야 하거늘, 하며 짐짓 어른스러운 척을 하려 자세를 곧추 세우니 눈 앞엔 괴상한 옷을 입은 자신이 보였다. 얼핏 수라간 대령숙수가 구해준 명나라 서책에서 ‘거울’이라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신통방통한 물건이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그래서 사람들은 처음에 귀신들린 물건인 줄 알았다고. 그런데 지금 현의 앞에 현이 있었다. 현이 현에게 악수를 건네도 악수를 받을 수 없는 현이. 거울속의 현도 주변 녀석들과 같은 차림이었다. 무심한듯 흩날리든 분홍색 옷자락. 이게 다 무언가, 도대체 여기는 어디고, 무슨 일인가, 하며 놀라는데 그 순간. 




좀 전의 목소리가 다시 한 번 현을 재촉했다. 전보다 조금 더 짜증이 섞인 말투. 그러니까 아주 어릴 적 현이 짓궂은 장난을 치면 뾰루퉁해져서 누각 속 비밀공간으로 숨어들던 어린 윤의 말투와 같은.




“아. 진짜 이거 필카라고. 한 번 찍으면 끝이라고!”




목소리의 주인을 따라 홀린듯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윤이, 아니 윤의 말투를 한 웬 남자 아이가 서 있었다. 족히 180cm는 되어보이는 키, 다부진 몸, 검은 뿔테 속 반짝이는 눈빛을 한. 한글로 써 있는 이름은 가만보자, 황, 윤… 우?




“윤…?”

“아 뭐래. 진짜. 너 이번에도 눈감으면 넌 뺀다.”




윤이었다. 목소리는 다르지만 말투는 같았다. 걸걸한 목소리 속에서 어린 시절 윤의 흔적이 느껴졌다. 윤이 들고 있는 검은 물건은 보기에도 묵직해 보였다. 현이 마음을 가다듬기도 전에 윤은 다시금 그 검은 물건을 들어 눈에 가까이 가져다 대더니 무언가를 눌렀다.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은 물건에선 반짝, 빛이 났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 보는 빛에 놀란 현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 때, 윤이 다가 왔다.




하나 뿐이 없는 나의 누이. 윤. 성별이 달라졌다고 모를 수 없었다. 마지막 숨을 거두던 날 했던 말을 이리 지키는 구나. 우리, 정말 만났구나.




반가운 마음에 현은 다가오는 윤을 안아 버렸다.




“살아 있었구나. 살아 있었어. 네 말대로 우리 다시…만났어. 내 얼마나 너를 그리워했는지 아느냐.”




두툼한 얼굴은 어릴적과 달랐지만 현은 느낄 수 있었다. 손을 들어 윤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웃는 모습이 영락없는 누이 윤이었다. 밝고 명랑한. 창경궁 곳곳을 뛰놀다 넘어져도 씩씩하게 일어나던 조선의 공주, 윤.




“뭐래. 이 미친놈이.”




윤은 거칠게 현의 손길을 뿌리치더니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참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씩씩거리며 마른 세수를 하던 윤의 행동이 도통 무슨뜻인지 몰라 어깨를 들썩이며 어리둥절 하는데, 윤은 한숨을 깊게 쉬더니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퍼붓기 시작했다.




“야. 체육 수행이야. 오늘 늦으면 안된다고. 오늘 ‘그대에게’ 안무 마저 짜야 한다고. 빨리 오라고.”




하며 윤은 현의 팔을 거칠게 잡아 끌었다. 잘못 본 것일까. 누이 윤의 환생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그렇다면 나는 이곳에 왜 온 것일까. 그저 누각 속 낙서를 보려고 했을 뿐인데. 누이와 같은 이름을 지닌 <시한부>의 저자를 보고 싶었을 뿐인데.




우르르 나가는 아이들을 따라 현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온통 신기한 곳이었다. 차가운 잿빛의 길. 규칙적으로 뚫려있는 문. 오색 단청 하나 없이 하얗고 까맣고 어두운 건물. 마침내 도착한 강당은, 창경궁 후원의 십분의 일도 되지 않는 크기였다. 예서 어찌 칼을 휘두르고 활을 쏜단 말인가,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 때 현의 곁에 있던 윤은 제 손에 들려있던 카메라를 뒤늦게 깨닫고 교실로 향했다.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달려가는 윤을 바라보며 현은 알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본능은 누이라고 느끼는데 현실은 아니었다. 그 묘한 간극 속에서 수업이 시작되었다.




아무도 없는 교실엔 선풍기 넉 대만이 덜덜덜 거리며 돌아가고 있었다. 개교한 지 40년이 넘은 학교였다. 모든 것이 낡고 병들어 가는 그 곳에서 유일하게 생의 의지를 지니고 피어나는 것들은 아이들 뿐이었다. 윤우는 그런 학교가 좋았다. 낡은 것과 새로운 것, 죽어가는 것과 살아 숨쉬는 것이 교차되는 모든 장면을 기록하고 싶었다.




필름 카메라로 학교 곳곳을 찍기 시작한 것은 몇 달 전 꾼 꿈 때문이었다. 아주 오래된 누각 기둥 아래서 윤우 울고 있었다. 어린 윤우는 기다란 머리에 치마를 입은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윤우야, 어디있니, 하며 자신을 찾는 목소리에 벌떡 일어나 어디론가 달려가는 순간 잠에서 깬 윤우의 눈에선 끝없이 눈물이 흘러나왔다.




아주 어린 시절 잃어버린 형이 있었다.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아 부모님의 추억 속에서만 존재하던 형은, 윤우의 첫 상실의 기억이었다. 모두가 깊이 잠든 밤. 윤우가 자는 줄 알고 안방에서 두런두런 뱉어내던 부모님의 상심어린 눈물과 형에 대한 이야기는 어린 윤우에게 깊은 사무침을 안겨주었다. 밝으면 밝을수록 그림자가 짙어지는 것처럼 윤우 역시 밝고 건강하게 자라날 수록 형이라는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졌다.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열여섯 봄부터였다. 쏟아지는 마음을 감당하기 어려워 쓰기 시작한 글이었다. 주변 사람과의 이별, 상처, 후회, 죽음 등을 닥치는대로 썼다. 블로그에 올려 간간히 댓글을 받던 글이 출판 관계자의 눈에 띄어 책으로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 책이 세상에 나오는 순간,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형도 밖으로 나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래도록 자신을 가둬둔 그림자 밖으로 한발짝, 나오기 시작했다.




창가 옆 맨 뒷자리에 윤우의 사물함이 있었다. 뛰느라 숨이 턱까지 차오른 윤우는, 사물함을 열어 카메라를 넣어 놓곤 황급히 강당으로 향했다. 급히 닫느라 다시 열린 사물함 안에는 필름 카메라와, 양치도구, 그리고 책 몇 권이 꽂혀 있었다.




열린 창문을 타고 가을 바람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제법 거센 바람은 윤우의 사물함을 그만 활짝, 열어 버리고 말았다. 휘, 휘이 하고 불어나간 바람의 흔적 뒤로 가려진 책 한 권이 모습을 드러냈다.




<시한부>, 저자, 윤.







추신 : 제자 J와 함께 기획한 사진 속 장면으로 이야기 만들기 활동 결과물이에요. 이야기 속 <시한부>는 백은별 작가님의 동명 소설을 오마주하였습니다. :-)

엉성하지만 (?) 재밌게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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