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이 없이, 도서관을 향했다. 아이의 마지막 방학 숙제, 그러니까 어제 했던 숙제는 그림일기고 오늘은 책나무라는, 책을 읽고 쓰는 학습지 같은 것, 을 마무리 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한 주 동안 쌓인 독을 풀기 위함이기도 했다.
마침 나는 힘에 부치면 찾아오는 편두통을 막아주는 약을 처방받기 위해 오전에 한 차례 내과를 다녀왔고, 집에 잠시 들러 커피 한 잔 마시고 몸에 쌓인 더위를 털어낸 뒤 어제부터 오른쪽 뒤꿈치가 아프다던 아이와 함께 정형외과에 다녀온 후 마지막 일정으로 도서관을 선택한 것이었다.
다섯 시에 닫는 그곳에 도착한 시간은 세 시 사십 분 그즈음.
자리를 맡곤 숙제를 하는 아이 옆에서 말없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래야만 지난 한 주의 나를, 더위를 이기고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한 나를 달래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어제부터 제대로 읽기 시작한 <칵테일, 러브, 좀비>는 생각보다 무척 괜찮아서 작가의 <트로피컬 나이트>를 빌리려고 했으나 나 같은 사람이 많은 것인지 모두 대출 중.
하는 수 없이 <흔한 남매>에 빠져든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엄마에게 연락하라’고 단단히 일러둔 후, 3층의 일반자료실에 들러 서둘러 <82년생 김지영>을 대출해 오고야 말았다. 2016년도에 이미 본 책인데, 한 번 더 읽고 싶어진 이유는 모르겠고.
두꺼운 양장본 커버에, 이미 9년이 지나 빛이 바래버린 속지가 어색했다. 세월이 이렇게나 빨리 흐르는가 싶어서. 앞 장에 나오는 김지영, 정대현, 정지원. 인물의 이름이 낯설었다. 이제는 흐릿한 내용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또렷해지겠지. 어색한 듯 익숙한, 낯선 듯 편안한 책 읽기가 그리웠던 것 같다.
아무래도 내향적인 사람이라 조용한 곳에서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낀다. 에너지가 차오름을 느낀다. 근무하는 곳은 언제나 소리로 가득 차서(가끔은 소음이 넘쳐나기도 하지만) 나는, 스트레스를 받거나 힘이 드는 때이면 필사적으로 조용한 곳을 찾는다. 이왕이면 티브이 소리도, 이왕이면 노랫소리도 없는, 그런 적막에 가까운 곳.
가끔은 가족과도 떨어져 홀로 있고 싶은 순간까지도 찾아온다. 그럴 때면 조용히 앉아 책을 읽는 도서관엘 찾아가는 것이다. 훌쩍 커서 제 몫의 책을 들 수 있는 딸과 함께.
그러고 보면 도서관은 아주 예전부터 내게 치유의 공간이었다. 서가에 빽빽하게 들어선 책들 사이를 걷는 것이 좋았다. 집에서 한 시간도 넘게 걸리던 대학 도서관을 굳이 방학 때, 주말에 찾아간 것은 대학 도서관이 주는 그런 압도적인 편안함이 좋았기 때문이다.
더 어릴 적도 마찬가지. 걸어서 꽤 걸리는 도서관에 어쩌다 한 번 정도 가게 될 때면, 조용히 서가 사이사이를 돌아다녔다. 딱히 뭘 빌리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냥 그게 좋아서.
지금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공강 시간, 답답할 때에면 부러 학교 도서관엘 간다. 신간 도서 코너를 기웃거리거나 우리 학교 도서관에만 있는 다락방엘 올라가 본다. 어떤 책이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 다 알면서 그렇게 한 번은 돌아다닌다. 친한 사서 선생님과 간간이 수다를 떨면서. 욕심껏 빌려 놓곤 다 읽지도 못한 채 반납할 책을 산더미처럼 들이밀면서. 멋쩍게 웃으면서.
딸아이에게도 그런 공간이었으면 하는 바람은 욕심일까.
내가 그랬던 것처럼, 녀석도 앞으로 살아갈 인생 속에서 잠시 멈추고 싶을 때가 분명 올 텐데. 사람이 싫어지고 만남이 싫어지고, 언젠간 엄마처럼 모든 소리가 버거워질 때에 홀린 듯 찾아갈 수 있는 곳이 도서관이었으면 하는 바람은, 어쩌면 나의 욕심일까.
그래, 꼭 여기가 아니어도 좋을 것이다. 어디든 상관없을 것이다. 그저, 내가 곁에 있을 때에도, 있을 수 없을 때에도
쉼표를 찍을 수 있는 곳을 제 나름대로 갖고 있을 수 있으면.
그래서 나처럼
길고 지난한 인생에 군데군데 찍힌 쉼표 속에서 숨을 돌릴 수 있으면.
그러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