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공개 원고 :-)
햇빛 찬란한 계절만 보며 살았으면 좋았겠지만 삶의 상당 부분은 짙은 먹구름과 쏟아질듯한 빗방울로 가득했다. 눈만 뜨고 일어나면 집의 크기가 점점 줄어들던 10대는 그야말로 어둡고 깊은 우물을 파고, 그 속에서 겨우 버티던 시절이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냥 절망하진 않았다. 무어라도 해보려고 시도했고,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을 보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좁디좁은 옥탑방에서 독서실도 가지 못한 채 공부해야 했던 고2 때에도, 무너질법한 마음을 추스르곤 했다. 마치 주문을 걸듯 매일같이 외우던 말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 나는, 잘 될 거야. 성공할 거야. 돈 많이 벌 거야. 분명히. 반드시.
대부분 뜻대로 되지 않았지만 가끔은 썩 괜찮은 성취를 이루기도 했다. 강박 때문이었는지, 불안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눈앞에 주어진 수학 문제는 풀어야 했고, 다음 주에 예정된 시험은 준비하는 게 맞았다. “에이. 그냥 포기해, 어차피 안 될 거.” 하며 해보지도 않고 손을 놔 버리는 것은 체질 상 거북했다.
선생님이 되니, 눈앞엔 수학 문제가 아니라 ‘아이’가 있었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열다섯의 아이가. 평생을 모범생으로, 하지 말라는 것은 절대 하지 않으며 살았던 내게 ‘이해도 할 수 없고’, ‘공감은 더 할 수 없는’ 미지의 생물체들이 한 해에 100명씩 앞을 떠다니게 된 것이다.
포기를 모르는 나는, 멈출 줄을 몰랐다. 살아온 궤적이 다르면서 어떻게든 공감대를 형성하려고 애썼다. 애니를 좋아하는 아이에겐 애니 이야기(주술회전, 체인소맨, 장송의 프리렌, 스파이 패밀리, 최애의 아이)를, 웹툰을 좋아하는 아이에게는 요새 즐겨보는 웹툰을, 게임을 좋아하는 남자아이들에게는 “방학 때 선생님 게임 좀 가르쳐 줄래?” 하며 다가갔다. 운이 좋았던 것인지 상당수 아이들은 그런 나를 좋아해 주었고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했다.
고민을 털어오면 진심을 다했다. 시간은 상관없었다. 새벽 1시에도, 2시에도. 깨어있는 동안 “선생님, 주무세요?” 하며 카톡이라도 한 통 오면 졸린 눈을 비비며 대꾸를 해주었다. “윤주야, 괜찮아? 쌤이 언제든 이야기 들어줄게, 연락해.” 하면 아이들은 고마워하면서 이따금씩 고민을 털어놓곤 했다. 그러면, 나의 작은 노력이 녀석에게 큰 도움이 되는 것만 같아 그저 뿌듯할 뿐이었다.
아이들의 삶 속에 슬며시 나들이를 가고 싶기도 했다. 자기들이 열심히 준비한 공연 티켓을 선물로 주면 시간을 쪼개서 꼭 공연장에 방문했다. 비록 편도 2시간 30분이나 걸리는 곳에 있더라도 약속한 날이 되면 잊지 않고 찾았다. 핀 조명이 쏟아지는 무대 위, 살짝 긴장한 듯한 아이의 얼굴이 보일 때면 마음속은 이상하리만치 부풀어 올랐다. 그때 갔던 그곳을 지나칠 때면 지금도 이유 없이 행복한 것은 그 때문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달라질 거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었다. 지금이야 미혼이고 혼자 지내니 시간이 많지만, 삶이 한 번 달라지면 분명 지금처럼 하진 못할 거라며 훈계하던 이들은 넘치고 흘렀다. 아이들을 향한 애정은 평생 받지 못할 팬심으로 돌아오곤 했고, 때때로 시기 어린 질투를 받기도 했으니.
거짓말이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니,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보며 내 눈앞의 사춘기들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됐다.
- 너도 이런 어린 시절이 있었겠구나.
- 부모님께 더 관심을 받고 사랑을 받고 싶었겠구나.
- 너는, 정말 내면이 단단하게 멋지게. 그렇게 자랐구나.
- 지금까지 성장하느라 정말 고생 많았구나.
하며 바라보니 사춘기 아이들이 다르게 보였다. 그저 수업 시간에 집중 못하고 떠들며 미래에 대한 고민도 안 하는 철부지가 아닌, 저마다의 삶을 부단히 살아온 하나의 ‘서사’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소설을 읽으며 인물의 사연에 몰입하듯 그렇게 아이들의 삶에 빠져들었다. 내게 보여주는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를 돌보아 주었고, 미래를 함께 그렸다. 사소한 질문도 허투루 넘기지 않았다. 따로 찾아와 하나를 물어보면 열을 알려주고 싶었다. 쉬는 시간엔 수시로 교실을 찾아가 아이들과 함께 부대꼈다. 깔깔깔 웃으면 다가가 엿듣기도 하고, 헤드락을 걸며 장난을 치면 ‘이것들이 진짜 미쳤나!!’하며 잔소리를 퍼붓기도 했다. 때로는 매일매일 고생하는 반장, 부반장을 따로 불러 맛있는 것을 먹이기도 했다. 작은 마음들이 오가는 것이 그렇게 행복했다.
“책을 추천해 달라고 말씀드렸는데...” 하며 답장을 종용했던 제자에게 건넨 한 통의 편지가 깊은 인연을 만들었고, 체스 한 판 둔 것이 인연이 되어 답답하기만 했던 그 시절 한 줄기 빛을 찾을 수 있었으며, 추운 겨울 함께 나눈 이야기를 엮은 책을 만들며 눈빛만 봐도 마음 따뜻해지는 관계를 그릴 수 있었다.
모두, 멈추지 않았기에, 멈출 줄을 몰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덕분에 난, 14년 동안 아이들 앞에 서 있을 수 있었다. 적어도 아직은 아이들이 너무 사랑스럽고, 그런 아이들과 티키타카 하며 무언가를 나누는 것이 좋다. 대부분의 말장난 속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진심이. 어쩌면 잊지 못할 매일이.
이런 나에게 ‘정년퇴직’을 권유하는 사람이 두 명 있다. 늙으면 아이들과 소통하지 못할 것이고, 그때는 나도 ‘꼰대’가 되어 외면받을 것 같다고 푸념을 늘어놓으면, 그때는 지금처럼 애들과 친하게 지내지 못할 것 같으니 적당할 때 멈춰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하면 그 둘은 꼭 이야기하곤 한다.
“정년 퇴직 하시죠.”
“꼰대는 ‘나이’로 결정되는 게 아니야.”
그러면 나는 괜히 발끈해서 이상한 소리 하지 말라며, 딱 20년만 채우고 떠날 거라며 엄포를 놓지만, 사실 다 거짓말이다. 태생이 멈추는 방법을 모르고, 포기를 하지 않는 사람이 과연, 6년 후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날 수 있을까? 내 삶, 그 자체가 이미 일단은 부딪혀본 모든 것의 결과인데.
어둠 속에서도 빛을 찾아 움직여 왔다. 모두가 내려놓을 때에도 버티고 붙잡고 있었다. 변할 것이라고, 변하게 된다고 엄포를 놓으면 되려 더 애정을 쏟았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아온 시간이 만든 것이 지금의 나다. 그러니, 앞으로도 하던 것처럼 하련다.
몰라도 부딪히고.
다가오는 아이들에게 곁을 내어주고.
녀석들이 좋아하는 것을 일부러 찾아 공부하고.
가끔은 일과 끝나고 만나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진짜 모습을 나누면서.
나의 세계와 그들의 세계가 조금씩 만나면,
그렇게 또 현재를 쌓으면 20년 후의 나는 지금보다 더 풍요로워질 테니까.
멈추지 않는 아이가 그곳에도 있을 테니까.
문득 노트북 폴더를 정리하다가
지난 11월 즈음에 제이와 함께 썼던 마지막 주제,
'신념'에 대한 글을 쓴 흔적이 남아 있어
이렇게 올려 봅니다.
한 해가 지나고
새해도 한 달이나 흘렀지만
여전히 2025년 11월의 마음은 글로 자욱 자욱 남아있네요.
행복했던 기억이 마구 피어올라
조심스럽게 이곳에 풀어봅니다.
제이의 글은, 글쎄요.
녀석한테 한 번 물어보고
올리겠습니다.
(물론 녀석은 100%, "저는 상관없죠."라고 할 것 같긴 합니다만!)
지면 관계상?
시간 관계상?
올리지 못했던 미공개 원고인데요.
다시 봐도 이 글은 제 마음을 울리네요.
멈추지 않는,
멈추지 않을,
제 이야기가 가장 담백하게 담겨있어요.
전, 언제쯤 멈추게 될까요?
아마도...? 정년퇴직을 하는 그 순간?
아니, 그 후에도 무언가를 계속하지 않을까요?
선생님을 벗어나도
무언가를 계속 쓰고
만들고
그렇게 조금씩 세상에 빛을 더하지 않을까요?
그랬으면, 좋겠네요. :-)
사진: Unsplash의 Mike Marra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