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아이들 15화

그 여름의 글쓰기 (4)

by 안녕

“수업 때에도 돋보이는 편이었어요. 보통 J가 먼저 나서서 말을 하는 편은 아닌데 가끔 필요할 때 훅 치고 들어오는 게 그게 좀 재밌고 센스 있었달까. 그 판을 보고 끼어는 틈을 알아요. 그래서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딱 깔끔하게 놀다 빠지는 애였어요. 수업도 곧잘 들었고 필기도 잘했어요. 아 맞다. 약간 강박이 있었는데 형광펜, 볼펜 같은 걸 질서 정연하게 놓아야만 된다고 했어요. 전 또 그러면 약간 훼방 놓는 편이라서 일부러 흐트러고, 그러면 J는 아 선생님! 하면서 약간 울컥하고. 뭐 그랬죠.”



“선생님께서 장난을? 오. 선생님도 보통 아니셨군요.”



보통 아니다,라는 표현을 인생 처음 듣는다는 것을 알까. 이 사람, J는 간파했지만 나는 아직이구만. 기자님. 저처럼 보통인 사람이 이 세상이 흔한 줄 아십니까.



“한 번은 논증방식을 가르친 적이 있어요. 전 뭔가 재밌게 가르치는 것을 좋아해서 그때는 ‘빵’을 가져와서 그 빵을 얻을 수 있게 선생님을 설득해 보라는 미션을 주었죠. 다른 애들은 다 구구절절하게 사연을 늘어놓는데 녀석은 딱 한 마디 했어요.”



“뭐라고요? 궁금해요.”



달싹이는 입술에 꽂히는 시선이 정겹다. 수십 년 전 아이들도 내 손짓 하나에 내 한 마디에 울고 웃었지. 시험에 나온다, 이거 중요해, 힘들지, 조금만 힘내자, 너희들이랑 같이 수업하려고 선생님 진짜 새벽까지 열심히 준비했어. 분명 다음 말을 이어가야 하는데 머릿속은 그 옛날 수천번도 외쳤을 말들이 맴돌았다. 나, 그때 꽤 행복한 교사였구나.



“(…) 쿵.”



“네?”



“그게 뭐였냐면. 너무 배고파서 쓰러진 거래요. 그걸 표현한 거였어요.”



“하하하하하하. 그래서 빵, 받으셨어요?”



“제가 J랑 좀 친해졌다고 했잖아요. J가 센스 있게 잘 하긴 했는데 그렇다고 J를 주면 또 친해서 주는 거라고 아이들이 오해할까 봐 다른 방식으로 잘 한 아이를 줬죠.”



“아쉬워했겠어요.”



“그런데 자식이 그런 티를 안내는 애예요. 그리고 나중에 뭐 맛있는 것도 많이 사줬으니 그걸로 퉁-”



받아 적기를 멈춘 그였다. 몰입. 그래 당신은 내 이야기에 몰입했구나. 뿌듯했다. 수업 중에도 아이들은 내 이야기에 집중하면 필기를 멈추었다. 선생님이 중요한 건 집어 줄 테니 지금은 쌤 말 들어. 쌤은 조용한 관종이거든. 그 순간이 자꾸만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성실한 청중을 위해 더 솔직한 에피소드가 필요했다. 남는 건 기억력과 추억뿐. 매년 기록한 일기는 오늘을 위함이었으리라.



“필름 카메라. 아세요?”



건넨 질문에 당황한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마도 2020년대 그 언저리에 태어났을 그는 보도 듣지도 못했을 물건임은 분명했다. 필름을 끼우고 사진을 찍고, 필름을 다 쓰면 촤르르르. 돌아가는 그 감성적인 물건.



“J가 어느 날 동묘에서 필름 카메라를 샀다고 하더라고요.”



“어머나!”



감성적이야,라고 말하려는 제 입을 두 손으로 모아 가린 그는 더욱 내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글을 쓰고 망고를 좋아하며 재치가 넘치지면서도 약간의 완벽주의를 지닌, 필름 카메라를 쓸 줄 아는 중학생? 이건 특종을 넘어선 서사였다.



“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하더라고요. 졸업을 하면 보기 힘들 테니, 열심히 추억을 남기자고요.”



성실한 J는 꾸준히 나와 내 동료를 찍어주었다. 피사체가 되는 것이 끔찍이도 싫은 나는 순전히 J의 부탁이어서 들어주었다. 퇴근 3분 전에 찾아와 카메라를 들이밀어도, 비에 앞머리가 다 젖어 소위 말하는 ‘떡진 머리’가 되어 사진을 찍기 싫은 날에도 J는 어김없이 찾아와 선생님, 필름이 남았어요, 했고 나는 “야. 너는 필름 쓰려고 나한테 오는 거지?” 하며 말로만 타박을 주곤 이내 브이를 그리거나 손하트를 만들어 주었다. 남는 건 사진 밖에 없긴 해. 그렇긴 하지. 하면서.



그 해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흔적이 녀석의 필름 카메라에 담겼고 맨들 거리는 인화지엔 나의 추억이 피어올랐다. 애정하는 동료와의 추억은 오래 남았고 나는 아직도 그 사진들을 도쿄의 집에 몇 장. 한국의 집에 몇 장 보관하고 있었다. 어쩌면 다시 오지 않을 시절이기에.



- 지이이잉



갑작스럽게 울려댄 진동은 나를 다시금 현실로 데려다주었다. 모르는 번호였다. 한창 옛 생각 중인데 난데없는 전화라니. 앞에 앉은 양반에게도, 나에게도 예의는 아니었다. 길게 이어지는 울림을 멈추려고 종료 버튼을 누르려는데 문자가 연이어 한 통 도착했다. 참을성 없는 발신자는 그 새를 못 참고 메시지를 남겼으리라.



- 김지윤 선생님 맞으세요?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2025년에 선생님과 함께 글을 쓴……



중요한 장면에서 끊어버린 예고편 같은 문자였다. 2025년에 선생님과 함께 글을 쓴, 아이. 공손하지만 자신감이 배어있는 메시지.



J였다.



흔들리는 눈빛을 놓치지 않는 야수의 그것을 닮은 기자는 내게 호기심 어린 말투로 물어왔다.



“전화받으셔도 되는데. 누구… 세요?”



예전 같았으면 홀랑 넘어가 사실대로 말했겠지만 긴 시간 동안 나의 청중이 되어준 그를, 아니 이 이야기를 듣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 바로 원고를 써 버릴 그를 살짝은 골리고 싶어졌다. 아주 잠깐만. 어차피 그다음 에피소드도 당신에게 드릴 테니. 오늘은 아주 잠시만.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우리 어디까지 이야기했죠?”



식어버린 커피에서도 은은한 향기 배어 나왔다. 삶이란 그랬다. 흘러버린 시간은 잊혀 사라진 것 같아 아쉬울 적이 많았다. 하나, 그렇게 곁을 떠난 인연도, 지나간 시간도 무언가를 남기고야 말았다. 은은한 향이든, 짙은 그리움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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