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아이들 14화

그 여름의 글쓰기 (3)

by 안녕

돌려 말하는 것을 못하는 성격인 듯했다. 나는 두괄식보다 미괄식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나이 예순이 넘어도 두괄식 화법은 어지러울 때가 있었다. 글쎄. J와 나누던 글. 그걸 무어라 설명해야 할까.



“……. 사람. 사람에 대해서요.”



“사람… 이요? 사람? 사람에 대해서 뭐요?”



말끝마다 이어진 물음표에 답을 했을 뿐인데 수많은 물음표들은 나를 그 시절 그곳으로 이끌어 주었다. 2025년, 여름이 시작될 무렵 쓰게 된 우리들의 ‘사람’ 이야기.



“그때 J가 학생회장이었어요. 꽤나 열심히 하던 녀석이었는데 문득 주변 사람에 대한 소중함을 느꼈다고 하더라고요. 사람이란 존재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글을 써 보고 싶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다 그럼 우리 글감은 ‘사람’으로 하자, 고 결정했어요. 조금 추상적이긴 했는데 이야기 나누다 보면 뭔가 방향이 잡힐 것도 같았고요.”



“그래서 어떤 사람에 대해 쓰셨나요?”



“다양했어요. 내 삶에 영향을 준 사람, 영감을 준 사람, 내 곁에 있는 사람. 때로는 우리 모두가 아는 선생님, 우리 모두가 아는 같은 학년 친구. 그렇게 매번 주제를 바꾸었어요.”



“와…. 듣기만 해도 너무 재밌을 것 같은데 실제로 쓰시긴 힘들었을 것도 같고요.”



글 쓰는 사람만이 아는 고충을 이해하고 있구나, 이 기자. 믿음이 갔다. 적어도 당신은 유명인의 SNS를 그대로 긁어 오타와 비문이 넘쳐나는 기사를 쓰지는 않는구나.



“힘은… 들었죠. 그래도 뭔가 살아있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살아있는?”



“네. 그 당시 저는 마흔을 갓 넘긴 나이였고 아이는 어렸어요. 학교에선 중요한 부장역할을 맡고 있었는데 그 일이 너무나 많아서 새벽까지 집에서 일을 하다 잠들고 4시간도 못 자고 출근하기를 밥 먹듯이 했어요. 건강도 상하고, 우울감도 오고, 그래도 책임감, 성격, 뭐 그런 것 때문에 놓치를 못하고.”



걱정해 주는 눈빛이 와닿는다. 기자양반. 고맙지만 이제는 괜찮답니다.



“그때 힘이 되어준 건 그 글쓰기였어요. 살아있는 느낌. 뭐 그런 걸 받았어요. 알겠지만 밥벌이하려고 쓰는 글은 얼마나 삭막해요. 교사도 뭐, 똑같아요. 영혼 없는 공문서 작성, 매년 비슷하게 반복되는 학습지. 문득 그런 모든 반복되는 것들이 지긋지긋해질 즈음엔 꼭 한 주가 흘러가 있고 J와 함께 쓰기로 한 글감이 모니터 앞에 붙어있었어요. 매주 과제를 완성하기 위해 애썼죠. 힘이 들기도 했지만 행복했어요.”



“약속이 밀리거나 하진 않았나요? 처음엔 호기롭게 시작했다가 나중엔 흐지부지 되거나……. 보통 그런 경우 많잖아요.”



당연한 질문이었다. 맞다. 보통이면 조금씩 과제를 밀리는 경우가 많고 더 높은 확률로 흐지부지 되어 결국 서로 멋쩍어하며 ‘시간이 없어서 안 되더라.’며 웃어넘기는 것이, 분명 맞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J와 나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둘 다 너무 성실했고 성실했다. 늦게 제출할지언정 백지를 보내진 않았다. 성실함에 끈기를 더한 글쓰기는 졸업 직전까지 계속되었다.



“와… 이쯤 되니 그때 쓰셨다는 그 글들, 한 번 보고 싶은데요?”



나는 가만히 옆에 놓인 가방을 만지작거렸다. 이메일을 받았던 순간부터, 커피숍에서 만날 약속을 잡은 순간부터 가장 먼저 찾아둔 것은 책이었다. J와 함께 쓴 2025년의 기록을 엮은 책. 한국을 떠나며 다 정리하면서도 남겨둔 딱 한 권. 언제고 들춰보며 나의 그 시절을 추억하고 싶어 남긴 한 권이었다. 내 시선이 닿는 곳을 보던 그는 더 이상 신입태가 나는 앳된 얼굴의 기자가 아니었다. 이젠 완전히 승리할 수 있는 사냥감을 확보한 야수의 그것이었다.



伏龍鳳雛


먼 옛날 수경(水鏡) 선생께서 이르시길 복룡(伏龍)과 봉추(鳳雛) 그중 하나만 얻어도 천하를 평정할 수 있다고 하셨도다.


하나 적로(的盧)의 변덕과 청룡의 목은 천하를 세 개로 나누는데 그쳤다.


이윽고 복룡과 봉추가 다시 재림하였으니 누군가 이릉(夷陵)에서 뜨거운 미소를 지으며 말하리라.


“수경의 말씀은 그른 것이 아니었구나.”



기자의 낭랑한 목소리로 읽어 내려간 글은 생경하면서도 끌리는 것이 있었다. 한창 사람에 대한 시를 쓰고 누구인지 맞히는 글쓰기를 할 때의 일이었다. 삼국지 속 이야기를 활용해 쓴 시의 화자도 대상도 누구인지는 알겠으나, 왜인지는 몰라 답답해 난감했던 그때가 기억이 났다.



“선생님! 삼국지 진짜 재밌어요. 한 번 읽어보세요!” 하며 추천하던 J가 선했다. 녀석은 책 읽기를 좋아했고, 그래 ‘이상’을 좋아했다. 어느 날 갑자기 질문이 있다면서 “이상의 날개, 오감도를 아세요?”라고 묻기도 했다. 책을 읽어보마 받아서 주말 내내 읽고 글의 일부를 해석해 준 기억까지 밀려오기 시작했다. 과거. 아주 까마득했던 과거가 현재로 나타나 지금 내 앞에 있다.



“지금 J작가님의 모습으론 상상이 안 돼요. 뭐랄까. 약간 장난스럽기도 하고 철학적이기도 한? 종잡을 수 없는?”



확실히 성공할 가능성이 보이는 기자였다. 통찰력이 있었다. 몇 개의 에피소드에서 J의 성격을 간파하다니. 어리지만, 수많은 시간을 견딘다면 당신은 편집장이 되어있을지도 몰라. 그 세상에 내가 있을진 모르겠지만.



“J작가님의 버릇? 같은 거 있으셨을까요? 은근히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거거든요. 그런 게. 역사도 정사보단 야사처럼!”



“버릇이요? 음… 녀석이 자주 했던 말은 있어요. 기특한 마음에 맛있는 걸 사주겠다고 하면 ‘아무거나요.’, ‘뭐든지요.’, ‘전 어떤 것도 좋습니다.’ 뭐 그런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분명 취향이 없는 아이는 아닌데 맞추는 것 같다는 느낌도 좀 받았고. 그때 J랑 친해졌을 때라서 제가 한 번은 ‘너 금지어라고. 아무거나, 뭐든지, 언제든’ 이런 거 금지어다,라고 하면서 서로 웃고. 그랬어요.”



“와. 지금 작가님은 아니 변호사님이지. 암튼 J작가님은 애매한 거 정말 싫어하시던데.”



“아직도 (자기 스스로) 금지어일 수도 있고요. 뭐 그 정도 모범생은 아니었던 것 같지만. (읏음)”



“아. 선생님. 진짜 너무 웃기세요. 은사님? 맞으신가 싶기도 하고요. 칭찬과 디스가 묘하게 섞였어. 그래서 더 진짜 같기도 하고?”



습관이 남아있었다. 학교에서 근무할 때에도 그랬다. 아이들이 내 말에 웃어주면 그게 그렇게 좋아 더 과장해 말하곤 했다. 말발 좋은 국어선생님. 수업이 지루하지 않은 선생님. 재밌는 선생님. 그 말에 열광했던 건 칭찬받고 싶은 어린 나였을 것이다. 이젠 그런 순수한 반응을 느낄 수 없던 내게 그의 반응은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인정하자. 나는 아주 많이 신이 나기 시작했다. 끝냈다고 생각했던 교사 시절의 내가 불뚝불뚝 나와 이제는 완전히 그 시절의 내가 되어버렸다.



“하하. 더한 것도 있었어요. 녀석이 좋아하는 음식은 망고였어요. 지금도 좋아하려나? 그걸 가지고 글을 썼는데 망고잼, 망고밥 등등 온갖가지 망고음식을 나열한 글을 제출하곤 했죠. 뭐 솔직히 말하면 급히 쓴 글이라 구조나 내용이 허술하긴 했지만 또래치곤 잘 써서 칭찬도 많이 해줬어요.”



“헐! 망고! 아직도 좋아하신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그 책에서 봤거든요! 신라호텔 망고빙수가 최애시라고.”



“그래서 한 번은 망고에이드를 사준 적이 있는데 그것도 아무거나 먹겠다고 한 걸, 자꾸 아무거나,라고 말하면 아무것도 안 사준다,라고 나무란 적도 있어요. 뭐 J는 그러면 ‘안 먹겠습니다.’하는 애긴 했지만.”



“열여섯의 J작가님이 뭔가 눈에 그려지는 것 같아요. 바로 곁에 같이 있는 느낌?”



“먹는 것뿐 아니라 위트도 있었죠. 저는 녀석에게 늘 친구가 없어 어떻게 하느냐고 놀렸지만 사실 꽤 친한 친구들도 있었어요. 같이 부회장을 했던 ‘산초’도 꽤 의지했던 것 같고, 잘 지냈어요. 물론 J는 산초와 자신은 비즈니스 관계라고 끝까지 부인했지만. 뭐 어떤 비즈니스 관계가 방학식 날 같이 밥을 먹나요. 그거 친구라고 제가 계속 인정 좀 하라고 놀리기도 했죠.”



J는 은근한 고집이 있었다. 마음을 나누는 친구는 많지 않았지만 누구와도 두루두루 잘 지냈다.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는 자기 자신인 것 같은 아이. 누구에게 배웠는지 모를 재치도 남달라 교실에서 발언을 하면 모두의 시선을 받는 몰입감도 있었다. 문득, 그날 그 때 수업이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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