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걱정이 무색하게 나는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열넷에 만나 열여섯에 헤어진 J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는 것도, 그 녀석이 전공 분야의 전문가가 되었다는 것도, 녀석의 책에 내가 언급되었다는 것도. 물론, 내가 아직 선생님으로 불릴 수 있다는 것도. - 물론, 기자 양반에게는 가장 적절하고 무난한 호칭이었겠지만 -
커피잔을 가만히 만지작거렸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물꼬를 터 주었으면 좋겠다, 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기자는 노트와 펜, 그리고 휴대폰을 꺼내어 테이블에 놓고 말을 건넸다.
“혹시 녹음 불편하세요? 제가 속기가 안 돼서... 불편하시면 끌게요.”
“괜찮아요. 편하게 하세요.”
“아! 감사해요. 어떤 분들은 녹음하면 아예 인터뷰를 안 하시기도 하거든요. 역시 선생님은 책 속에 묘사된 것과 되게 비슷하시네요.”
도대체 녀석이 나를 어떻게 묘사했을까, 생각이 잠시 뻗어나가려고 하는 찰나, 기자는 운을 떼기 시작했다.
“아주 유명한 분인데 중학교 시절은 도통 기록이 없어요. 그래서 저는 선생님께서 기억하시는 J작가님의 생생한 중학교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그냥 편하게 아무거나 이야기해 주시면 돼요.”
초롱초롱 빛나는 눈빛은 나를 응시하고 하얗고 보드라워 보이는 손에는 이미 펜이 쥐어져 있었다. 준비됐습니다, 선생님. 말씀하시죠.
“아무거나. (웃음) 아무거나,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아이였어요. J는.”
“정말요? 자세히 좀 이야기해 주세요!”
“그러니까. 2025년도였나? 벌써 20년도 더 지난 그 시절의 이야기예요. J는 제가 가르치던 제자였고 저는 녀석의 국어 선생님이었죠.”
“그때, 글쓰기를 시작했다고 하시던데. 맞나요?”
아- 녀석이 책에 그 내용을 썼구나. 그 여름의 글쓰기를. 거기까지 열어 보였다면 나 역시 꺼내어 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한 번 풀어진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갔다. 두서없이 아무거나,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글쓰기. 맞아요. 글쓰기를 했죠. 어느 날 갑자기 교무실 책상 위에 편지가 놓여있더라고요. 시를 쓰고 싶다, 고 적혀있었어요. 저는 당시에도 아이들 몇몇을 모아서 같이 글도 쓰고 책도 만들었거든요. 보통 그런 작업은 여자애들이 훨씬 좋아해요. 섬세하고 뭐랄까 감성적이고. 그래서 제 글쓰기 프로젝트의 대상은 늘 여학생들이었어요. 깔깔깔, 웃으면서 선생님~~~ 하며 다가오는. 그런 저에게 시를 쓰고 싶다고 먼저 말한 남학생은 J가 처음이었어요. 친구와 같이 쓰는 것보다 일대 일로 글을 쓰는 게 더 좋다고 하던 아이였고요.”
받아 적는 기자의 손놀림이 잠시 멈추더니 고개를 들어 웃어 보였다.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들은 사람의 눈빛은 상대의 닫힌 마음을 무장해제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J작가님이 직접이요? 상상이 안 되는데요? 게다가 중3 남학생이. 글을 쓰고 싶더라…….”
“그렇죠. 보통 남학생들은 국어보단 체육을 글쓰기보다는 운동을 더 좋아하니까요. 그래서 사실 저도 반은 믿고 반은 안 믿고. (웃음)”
글쓰기를 제안한 남학생. 휘갈겨 적어둔 글귀는 아마도 소제목이리라. 20년 넘게 교직에서 아이들 글쓰기를 지도한 보람이 있었다. 연필 쥔 손만 보아도 무엇을 쓰는지 짐직할 수 있다. 그에게는 J의 이면이 구미를 당긴 모양이었다.
“부담, 부담되실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1대 1이라뇨. 저라면 못했을 것 같은데요.”
부담. 조금 더 다른 표현이었으면 좋았을 뻔했다. 정확히 말하면 어려웠다. J와 글을 쓰는 것은 부담이 아니라 어려움이었다. 재미로 글을 쓰고 책을 엮던 시절이었다. 글 잘 쓰는 선생님은 아니었고 글 좋아하는 선생님이었으니까. 아이들 여럿의 글을 모으는 것은 쉬웠지만 한 아이와 매주 글감을 정해 글을 쓰고 나눈다는 것은 어쩐지 조금 어렵고 어려운, 그런 일이었다. 부담스럽다기보다는 조금 어려웠네요, 하며 고쳐줄까 하다가 아직도 곳곳에 선생티가 남아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줄까 싶어 멈추었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전 조금 흥미롭기도 했어요. 게다가 J는 제게 특별한 제자였거든요.”
어떤 심리학 책에서 본 적이 있다. 사람은 상대의 이야기에 집중하거나 흥미로울 때 몸을 상대방 쪽으로 기울인다고. 그와 반대의 경우엔 팔짱을 끼고 뒤로 몸을 젖힌다고. 기자의 몸은 이미 내 쪽을 향해 있었다. 글로 밥 벌어먹고사는 이의 촉은 분명 내 이야기가 자신을 ‘특종상’으로, 아니 이번 달 매거진 판매율을 치솟게 할 ‘이달의 기자’로 이끌어줄 것임을 직감한 듯했다. 그 모습이 어쩐지 웃긴 마음이 들어 말을 있어나갔다.
“녀석이 열네 살 때, 그러니까 2023년에 처음 가르치게 됐어요. 그때는 그냥 평범한 남학생이었어요. 공부 좀 잘하고,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성실하고. 애들하고 잘 놀고.”
중학교 1학년 시절을 아주 잠깐 풀어주었을 뿐인데 그는 반짝이는 눈으로 계속해서 무언가를 받아 적고 있었다. 책을 추천해 주고, 답장이 오고, 쪽지를 나누고, 그렇게 한 해를 보내며 나의 편견을 없애준 아이라는 그 지점에서 그는, 갑자기 펜을 내려놓더니 옆에 있던 찻잔을 치우곤 내 손을 덥석 잡았다.
“선생님! 너무 낭만적이에요. 이거 진짜 실화 맞죠?”
당사자가 풀어놓는 당사자의 이야기가 믿기 어려울 만큼 그 시절 J와의 이야기는 어딘가 낭만적인 구석이 있었다. 교사와 학생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고 그저 기계처럼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조차도 어려웠던 상황. 예기치 못한 바이러스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차마 피어오르지 못해 메마른 모든 곳. 2020년대를 지배하던 회색빛의 세상에서 J와의 기억이 소중해 글로 적어 책으로 엮었다는 이야기까지 이르자 성미 급한 나의 인터뷰어는 급기야 내 말을 끊고 제 감정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직 채 버리지 못한 20대 시절, 날것 그대로의 언어로.
“헐. 대박. 진짜요? <중학생만 13년>? 그 책 아직도 있으세요? 보고 싶어요. 거기엔 J작가님과의 편지도 있는 거예요? 어머나. 나 완전 대박이잖아?”
격식을 차리지 않은 언어는 통통 튀어 내 주위를 맴돌았다. 나는, 공기를 타고 스며든 그의 말들에서 문득문득 수십 년 전의 학교를 느꼈다. 만났던 아이들은 모두 비슷했다. 편한 선생님인 내게 솔직한 그들의 언어를 보여주었다. 때로는 욕과 상스러운 말도 멈추지 못했다. 멈추지 않았다면 상처였겠지만 멈추지 못한 경우가 많아 웃으며 넘어갈 수 있었다. 답답한 현실 속에 숨통 트여줄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음에 감사하던 시절들.
“그럼요. 진짜죠. 그 책은, 안타깝지만 지금 구할 순 없어요.”
아쉬운 표정을 숨기지 못한 그는 차라리 다음 이야기를 재촉하는 것이 이해타산에 맞겠다는 판단을 마치고서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런데요. 선생님. 도대체 무슨 글을 어떻게 쓰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