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교사로 15년째 아이들을 가르치며, '문해력'에 대해 제대로 가르쳐 본 적도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저 "요새 애들은 왜 이렇게 학력이 떨어지지?"라는 말을 점심시간의 디저트처럼 읊조릴 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이후. 갓 3살이 된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기관도 다닐 수 없고, 문화센터도 갈 수 없는 막막한 그 시절, 아이의 말 트임이 늦될까 염려하는 와중에 '문해력'에 대해 알게 됐다.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문해력은 단순히 학교 다닐 때 교과서를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넘어서 일상생활의 모든 글을 읽고, 이해하고, 쓰며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능력이라고 넓게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학교에서의 국어는 교과서 안에서만 이뤄지지만 사회에서의 국어는 '모든 것'이기에 범위를 넓혀 생각하는 것이 맞다 싶다.
또래보다 늦게 걷고, 키도 작은 아이가 말 마저 느릴까 걱정되는 마음은 두려움이 되어 자꾸만 그림책이든 글밥책이든 사게 했다. 가급적 영상 노출은 줄이고 말을 걸어주고, 이야기를 만들어주려고 노력했다. 작은 집, 좁은 방 안에서 그렇게 나와 남편은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고, 스케치북에 뽀로로를 그려주며 꼬박 3년을 키웠다.
이제 아홉 살이 된 딸아이의 문해력이 다른 아이들보다 뛰어나냐, 그것은 아니다. 하나, 다행히도 뒤쳐지지는 않는다. 초 3~4학년 정도 아이들이 읽은 글밥 책을 읽어낼 줄 알며 모르는 단어는 나나 아빠에게 물어가며 의미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초등 엄마의 필수품이라는 <보리 국어사전>을 매일 같이 펼쳐 보는 편은 아니지만 생활 속에서 궁금한 단어를 수시로 물어보며 적용하려고 노력한다. 덕분에 아홉 살 수준의 어휘력, 문해력은 적절히 갖추지 않았나 싶다. (그래도 요새는 글보다는 게임을 더 많이 하려고 해서 걱정이긴 하다.)
마침 올해부터 맡게 된 '중1 대상 문해력 수업' 준비를 위해 펼친 <당신의 문해력>을 보니, 어쨌거나 열심히, 부단히 애써 온 우리의 영유아기 양육의 방향이 틀리지 않았음에 안도했다.
식당에 가서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가 울고불고 난리를 쳐도) 휴대폰은 절대 쥐어주지 않았으며 영상을 어쩔 수 없이 볼 때에도 '입놀이' 라며 나와 딸아이가 계속 영상 속 이야기를 재구성하며 놀았다. 차를 이동할 때에나 유모차에 탈 때도, 심지어 일본 디즈니 랜드에서 한 시간 반 동안 어트랙션을 기다려야 할 때에도 같이 이야기를 이어 말하는 놀이를 했지 영상을 보여주진 않았다. 나름의 철칙이었다.
그 과정 속에서 몇 번의 유혹이 찾아오긴 했으나 뚝심 있게 밀고 나갈 수 있었던 것은 학교 수업 현장에서 본 무수히 많은 '디지털 키즈'의 어두운 면 때문이었다.
2010년 이후, 급속도록 배급된 스마트폰은 어른조차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유혹에 빠져들게 했다. 유튜브로 시작된 영상의 즐거움은 이제 릴스, 쇼츠, 틱톡과 같은 숏폼으로 확대되고 있고,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샘솟는 도파민을 멈출 수 없어 하루에 최소 1시간 이상은 SNS 세상에 빠져들고 있다.
최근 5년 사이에 학교 현장에서 몇몇 걱정되는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다. 일단, 조금이라도 긴 호흡의 글을 읽어 내려가지 못하는 아이들이 절반이 넘으며, 한자어로 된 어휘를 모두 줄임말로 생각해 버리는 데다, 소설 속 인물의 갈등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그것이었다.
심지어 하나씩 차근차근 설명해주지 않으면 앞서 말한 내용을 까먹어버리기 일쑤니, 최대한 재미있고 흥미가 생길 수 있게 내용을 전달해야만 하는, (그러면서도 사실 애들이 이 내용을 기억은 할까? 하는 걱정까지 동시에 드는)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작년에 함께 근무했던 1학년 국어 선생님과 밥을 먹으며 들었던 이야기는 정말 충격이지 않을 수 없다. 황순원의 <소나기>를 읽다가 한 아이가 '소년'은 여자가 아니냐고 물어보는 통에 아주 잠시 정적이 되었다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참 여러 가지 감정이 밀려왔음은 부인할 수 없다. (예전에 임종은 조선시대 몇 대 임금이냐고 물어본 적도 있었다.)
때문에, 그런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조금은 정성스레 수업을 준비해야만 하는 책임감을 강하게 느끼는 요즘이다. 책을 읽으니 더더욱 확신이 든다. 모국어라는 이유로 등한시하는 국어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면, 아이들에게 읽고 이해하고 쓰는 능력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으면 이 아이들의 미래가 어두워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현장에서 부단히 애를 써야 함을.
특히 중학교 단계에서는 학습도구어로서의 어휘를 차근히 가르치고 그 이후에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읽는 경험을 꾸준히 제공해 줄 필요가 있다. '시점', '운율', '비유', '상징', '갈등'과 같은 기초적인 어휘를 제대로 모르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은 이제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니 말이다.
단순히 어휘력 게임만으로 수업을 채우고 싶지는 않다. <인생박물관>이라는 1학년 선정 도서를 함께 읽고 갈등을 파악해 보거나, 요리 레시피를 모둠별로 적어본 후 다른 모둠이 그 레시피를 해석하기, 복약지도서를 읽고(아이들이 가장 자주 쓰는 후시딘) 사용 방법 익히기와 같이 일상생활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글도 함께 해석해 볼 예정이다.
한 학기, 17시간 동안 아이들에게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가르쳐 줄 나는 벌써부터 마음이 들뜬다. 아직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었을 아이들에게, 아직 관련 분야를 한 번도 제대로 가르쳐 본 적 없는 나에게 이 시간은 분명 기회가 될 터이니.
첫 수업은 바로 '성격을 나타내는 어휘' 파트.
"걘 성격이 이상해."
"걘 성격이 좋아."
"걘 분조장이야. (분노조절장애의 줄임말로 실제로 많이 쓴다. 쓰지 말라고 지도하기는 하지만....)"
와 같이 똑같은 표현을 넘어서는 '성격을 나타내는 어휘: 순우리말'을 가르쳐볼 작정이다. 나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첫 단계라고나 할까? 어찌 될지 궁금하다.
부단히 준비한 나의 수업으로 아이들이 조금이나마 읽기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기를 바라며,
이제 글을 마치고 문해력 수업 준비를 마무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