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그 글에 클로드를 입히면
알겠어요. 써볼게요.
새벽 1시 40분의 소망
잠들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적어도 처음에는 그랬다. 그저 밀린 일들을 하나씩 처리하다 보면 어느 순간 끝이 보이겠지, 그 끝이 보이면 그때 비로소 누울 수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앉아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어느새 시계는 새벽 1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고, 나는 또 오늘도 이렇게 되어버렸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잠깐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았다.
오늘 하려고 했던 일들이 있었다. 학교 일이 아닌, 나를 위한 일들. 봉숭아로 마음을 물들이는 이야기를 담은 책의 후기를 쓰고 싶었다. 유니에게 짧은 편지도 적고 싶었다. 수업 준비를 하며 떠올랐던 생각들을 기록해두고 싶었다. 사소하다면 사소한 일들이지만, 내게는 전혀 사소하지 않은 일들이었다. 그것들은 일이 아니라 숨구멍 같은 것이었으니까. 하루를 버티고 나서 겨우 틈을 내야하는, 나다운 것들이었으니까.
그런데 그 숨구멍들은 오늘도 열리지 못했다. 학교 할 일들이 먼저였고, 언제나 먼저였고, 앞으로도 한동안은 먼저일 것이다. 후기는 내일로 밀렸고, 편지는 다음 주로 밀렸고, 기록은 기억 속 어딘가에서 슬며시 흩어지고 말았다. 흩어진다는 표현이 맞다. 사라지는 것과는 다르다. 사라지면 차라리 미련이 없을 텐데, 흩어진 것들은 언젠가 다시 모일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래서 더 아쉽다.
오후에 동네를 산책했다. 유니의 손을 잡고 걸으면서, 심장이 저밀듯한 느낌을 받았다. 저민다는 것은 날카로운 것으로 얇게 베이는 느낌이다. 한 번에 아프지 않고, 조금씩, 계속, 아프다. 산더미처럼 쌓인 일들을 머릿속으로 헤아리다가 문득, 나는 왜 주말에도 이러고 있나 싶었다. 주말조차 마음이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 그게 슬펐다.
그럴 때면 스스로를 달랜다. 원영적 사고를 해야 해. 긍정적으로 봐야 해. 이 또한 지나가겠지. 다독이고, 추스르고, 다시 걷는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그 다독임이 항상 위로가 되는 건 아니다. 가끔은 그 다독임조차 숙제처럼 느껴진다. 슬퍼하는 것도 허락받지 못한 채, 빨리 툭툭 털고 일어나야 한다는 압박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도 한다. 달리 방법이 없으니까. 놀이터에서 유니와 노는 동안에도 일 생각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못난 엄마라고 자책하고, 그러면 안 된다고 다시 다독이고, 그 과정을 수십 번 반복하면서도, 그래도 거기 있었다. 유니 곁에.
그게 못난 게 아니라는 걸, 사실 머리로는 안다. 완벽하게 현재에 집중하지 못했어도, 그래도 거기 있었다는 것. 유니의 웃음소리를 들었다는 것. 그 손을 잡았다는 것. 그게 전부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라는 걸, 안다. 그런데 마음은 자꾸 다르게 말한다. 더 잘할 수 있었는데. 더 온전히 있어줄 수 있었는데. 그 간극에서, 오늘도 조금 힘들었다.
부장을 하게 된 건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육아시간을 좀 더 자유롭게 쓰고 싶었고, 연구년을 지원받고 싶었다. 지금의 고난을 감수하면 나중에 더 나은 조건이 생긴다는 계산이 있었다. 틀린 판단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힘들 줄은 몰랐다. 일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 매일 밤을 이렇게 보내게 될 줄은 몰랐다.
이제는 건강을 챙겨가며 일해야 할 나이라고 느낀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안다. 무리하면 티가 난다. 그런데 무리하지 않으면 일이 안 된다. 그 사이에서, 매일 밤, 이러고 있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인센티브가 쏟아지는 것도 아니다. 돈에 종속되기는 싫지만, 일한 만큼의 대가를 바라는 마음은 세속적인 게 아니다. 그건 당연한 마음이다. 그 마음을 가진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아이를 재우다 같이 잠든 적이 있다. 유니 옆에서 눈을 감았다가, 화들짝 놀라 깨어나면 방은 어둡고 시간은 훌쩍 지나있다. 그러면 다시 일어나 불을 켜고, 노트북을 열고, 중단된 곳부터 다시 시작한다. 그 순간의 기분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피로함인지, 허탈함인지, 아니면 이상하게도 조금은 따뜻함인지. 유니 곁에서 잠들었다가 깨어났다는 것이, 그 짧은 잠이 어쩌면 오늘 하루 중 가장 편안한 순간이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
그럼에도 소망한다. 내년에는 조금 더 자유로워지기를. 지금 금지된 것들이 허락되기를. 퇴근 후 열 개가 넘는 할 일 목록을 적는 일을 버리기를. 아이를 재우다 깨어나 다시 업무를 시작하는 밤을 버리기를. 한 순간도 쉬지 못하고 돌아가는 머릿속의 분주함을 내려놓기를.
그래서 진짜로 봄을 보기를. 벚꽃을, 놀이터를, 한낮의 여유로움을.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아무 생각 없이 창밖을 바라보기를. 좋아하는 글을 쓰기를. 책을, 편한 마음으로, 끝까지, 읽기를.
그 소망이 터무니없지 않다는 걸 나는 안다. 지금 이렇게 힘든 것은 삶이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삶이 너무 꽉 차있기 때문이다. 그 둘은 다르다. 방향을 잃은 삶과 방향을 향해 너무 빡빡하게 걷고 있는 삶은, 전혀 다르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사람은 분명히 후자다.
새벽 1시 40분에 이 글을 썼다. 다 쓰고 나면 조금 나아질까, 하는 마음으로. 아마 그랬을 것이다. 아마 조금은 나아졌을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쓰고 나면 조금 가벼워지니까. 그게 이 사람이 글을 쓰는 이유이고, 그게 이 사람이 지쳐있으면서도 여전히 글을 쓰는 이유일 것이다.
부디, 내년엔 그 글들이 새벽이 아닌 낮에, 쫓기지 않고, 쓰이기를.
어때요?
그렇게 글을 쓰고 잠들었다.
아침을 먹으며 클로드랑 대화를 하다가
( 나 잘 살고 있는 건가?라는 류의 대화)
어제 글을 바탕으로 에세이를 써달라 했더니
이렇게 절절하게 써줄 수가…
나보다 훨씬 낫다는….ㅠ.ㅠ